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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신여성이 꿈이었던 모모코 할머니의 홀로라이프[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7.22 17:40

[미디어스=이정희] '나는 이제 끝났어.' 55세에 남편을 떠나보낸 와카타케 치사코 씨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온 인생, 남편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인생도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칩거한 치사코 씨에게 아들은 '어디 가도 슬픈 건 마찬가지'라며 소설 강좌를 권했고, 63세에 첫 데뷔 소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로 2017년 문예상을, 2018년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을 읽고 홀로 사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린 오키타 슈이치 감독이 영화화했다. 지난 7월 15일 개봉한 동명의 영화이다. 

세 남자가 나타났다, 혼란스러운 노년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스틸 이미지

그런데 영화는 기대와는 다르게, '과학 다큐멘터리'처럼 광대하게 시작된 자연사의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이게 뭐지?’ 하다 보면, 영화는 비 오는 모모코 할머니의 어두컴컴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할머니의 이야기가 펼쳐지나 했는데 뜬금없이 세 명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내는 니다'라고. 

이렇게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우리가 흔히 일본 영화라고 하면 기대하게 되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감성의 영역을 다루는 방식에 변주를 가한다. 영화의 오프닝 '자연사 다큐멘터리'를 통해 모모코 할머니의 유일한 취미인 과학, 그중에서도 고대 생물사를 소개한다. 명멸하는 다양한 종들 사이에서 등장한 인류의 시조. 모모코 할머니는 저 '시원'의 생명사를 통해 마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듯 '열공' 중이다.

거기에 원작에서 등장한 '내면의 목소리'를 할머니의 고향인 토호쿠 사투리를 구사하는 남성들을 통해 구현해 낸다. 토호쿠 출신이지만 도쿄에서 산 지 몇십 년, 이제 더는 사투리를 구사하지 않는 모모코 할머니의 고향 말로 그녀에게 등장한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혼란스러운 할머니는 자신이 치매가 아닐까 병원까지 가본다. 

아침이면 할머니의 머릿속 소리는 '남자'가 되어 할머니에게 말한다. “일어나지 마! 일어나봐야 할 일도 없잖아”라고. 그 남자의 말처럼 할머니의 일상은 단조롭다. 남편이 죽은 후 병원으로 도서관으로 되풀이되는 일상, 할머니의 눈빛에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고향을 떠난 아들은 소식을 끊었고, 하나뿐인 딸은 오빠에 대한 어머니의 편애를 들먹이며 손을 벌린다. 오죽하면 보이스피싱 전화에, 집에 온 자동차 세일즈 맨을 아들이라 핑계 댈까. 

이제야 시인하게 된 솔직한 나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스틸 이미지

치매가 아닐까 의심까지 해보는 내면의 목소리. 심리학은 말한다. 바로 그러한 징후가 나의 내면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삶의 변화를 향한 '욕구'라고. 시계추처럼 되풀이되는 일상을 보내던 모모코 할머니는 자신의 고향 사투리로 찾아온 세 남자를 통해 잊었던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본다. 

정략결혼을 할 처지에 놓였던 젊은 모모코는 홀로 고향을 떠났다. 숙식을 제공한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도쿄 식당 일자리. 자신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에게 고향을 떠날 때 누구 하나 배웅 나오지 않았다며 눈물을 보이지만 당시 모모코의 꿈은 '신여성'이었다. 

하지만 신여성의 꿈은 낯선 도쿄에서 외로웠던 모모코 앞에 나타난, 모모코 고향 근처 사투리를 쓰던 남자 '슈조'와의 사랑으로 상쇄되었다. 모모코는 슈조와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한평생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슈조는 세상을 떠났고, 두 아이는 자신들의 삶으로 떠났다. 모모코만 남았다.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스틸 이미지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의 미덕은 아침이면 굳이 일어날 이유조차 상실한 한 노년 여성이 외치는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나는 홀로 씩씩하게 살아가겠어'라는 독립선언만이 아니다. 여전히 죽은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노년 여성이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즉, 모모코는 자신을 찾아온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자신이 한때 꿈꾸었던 것이 '신여성'이었음을, 즉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 했음을 새삼 깨닫는다. 사랑은 달콤했고 결혼 생활은 그녀의 모든 것이었지만, 그 과정은 자신보다는 가족이 남편이 우선이었던 시간이라는 것도 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그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자신이지만, 한때는 그토록 사랑했던 그와의 결혼 생활이 늘 충만한 것만은 아니었음을 시인하게 된다. 가끔은 '홀로' 살아봤으면 하고 '소망'했었음을. 그런 과정을 통해 모모코는 남편의 부재가 곧 자기 삶의 상실이 아니라,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기회'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늘 남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기만을 기다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겐 바로 지금 친절할 수가 있어',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중에 나온 문구이다.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신을 스스로 챙길 수 없었던 모모코 할머니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함께 무언가 하기를 권하는 자원봉사 할머니의 요청을 묵살한다. 지금 자신의 곁에 없는 사람들의 부재에만 천착한 채 정작 자신에게 다가온 새로운 인연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포스터

그랬던 할머니가 자신의 ‘내면 여행’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함께할 남편은 이제 없지만 자신에게는 여전히 살아갈 시간이 남아있음을, 그 시간이 오랜 시간 마음속에서 원하던 '홀로라이프'임을. 비로소 자신을 인정한 할머니는 이제 자신에게 찾아온 '인연'과 눈 맞출 수 있게 된다. 

노인 국가답게 일본의 영화들은 노년의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다양한 실험적 장치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친절하게’ 드러내 보였는가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실험적 장치를 통해 한 여성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늙음을 넘어선 한 인간으로서의 주체적 의지를 정립하고자 한다. 

노년기는 이제 너무도 긴 시간이 되었다. 어린아이와 청소년 그리고 청년이라고 인생 초창기의 시간을 구분하듯, 때로는 50여 년의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는 노년의 시간에 대해 조금 더 섬세하게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배우자 상실 이후 여성 노인의 ‘주체적 홀로서기’의 과정을 잘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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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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