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일산 신도시 초등생 폭행ㆍ납치미수 사건과 관련해 늑장 수사로 일관한 경찰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특정 형사사건과 관련해 관할 경찰서를 찾은 것을 두고 너무 ‘오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가할 생각도 없다.

다만 일선 경찰관들만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지금의 분위기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일선 경찰은 사건만 생기면 사후약방문으로 처리한다. 아직도 생명의 귀중함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이 대통령의 ‘질책’은 백번 옳다. 대통령 ‘불호령’이 떨어지자 6시간 만에 범인을 검거하는 경찰이, 사건 발생 5일이 되기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경찰관들만 ‘몰매’를 맞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문제가 있다. 이들에 대한 ‘변명’에 나서는 이유다.

▲ 한겨레 4월1일자 3면.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찰 수뇌부의 ‘시국치안’ 올인화는 문제 없나

사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경찰 수뇌부들은 대부분 ‘시국치안’을 강조해왔다. 어청수 경찰청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어 청장은 지난 2월 경찰청장 취임 직후부터 ‘불법 폭력 시위ㆍ집회 엄단’ 방침을 거듭 강조하면서, 불법 집회 참가자에 대한 즉결심판 제도 도입 검토부터 시작해 최근 논란을 빚은 체포전담반 대책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시국치안 방침과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달 28일 열린 등록금 관련 집회에 14,000명의 경찰병력을 배치한 것은 단적인 예다. 이날 집회 참가자는 대략 7,000명 정도였는데 집회 참가자보다 두 배나 많은 수의 경찰병력을 투입한 것을 두고 경찰의 ‘호들갑’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경찰 안팎에서 ‘민생치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 한국일보 4월1일자 10면.
오늘자(1일) 일부 언론이 지적한 것처럼 “경찰 주변에서는 지휘부가 ‘법과 질서 확립’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코드 맞추기에만 지나치게 신경 쓴다는 비판이 적지 않게”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실제 일산에서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이 일어난 지난달 26일은 경찰이 '아동 부녀자 납치실종사건 종합대책'을 발표한 날인데, 어청수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경제 살리기와 법질서 확립'이라는 경찰 주최 세미나에 참석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어 청장은 31일 또 이 대통령이 일산서를 전격 방문한 시각보다 훨씬 늦게 일산경찰서를 방문,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경찰 수뇌부가 겉으로 민생치안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국치안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민생치안에 구멍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4·9 총선을 앞두고 정보과 형사들까지 동원해 ‘유세사찰’을 벌이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경찰 수뇌부가 민생치안보다 정권 입맛 맞추기 급급하다는 비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일부 신문에 실린 일선 경찰관들의 ‘하소연’에 더욱 눈길이 가게 된다.

“선거 관련 업무도 늘고, 이런저런 경호 업무나 집회에도 동원되지만 인원은 그대로다. 일선 지구대에서는 술취한 사람들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인데, 위에서는 이런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모른다.” (서울 강남 지역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 / 한겨레)

“무슨 일이 터지면 경찰서가 아닌 지구대의 초기 대응 잘못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현장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제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휘부가 바뀐 뒤 현장 인원을 늘렸다지만 우리 지구대에는 변화가 없다. 그런데도 생활사범 특별단속, 아동 대상 범죄 집중 단속 등으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서울의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 / 한국일보)

물론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고 온당한 조치다. 하지만 거기에만 그쳐서는 곤란하다. 반쪽자리·부실 대책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찰 수뇌부와 관계 부처간 종합적인 민생치안 대책 마련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언론 보도의 초점도 이쪽으로 맞춰져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