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유영주 칼럼] 어깨 위에 내려앉은 귀신이 떠나지 않는다. 송신기가 귀신처럼 달라붙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가만히 있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는데, 알아차리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무시, 반발, 친밀, 동정, 침묵, 사랑, 연민… 거의 모든 정념을 시험한다. 주도하기도 양보하기도, 타협하기도 대립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인생이 꼬이는 것이다.

가로 44센티, 세로 4센티, 길이 26센티. 10키로그램, 최대출력 10와트. 적당한 크기에 소음도 없는 J회사 제품. 2016년 3월 15일 방송국 첫 출근하면서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두어 달 후 방송국을 전남대 정문 근처로 옮겼다. 송신기와 안테나는 북구청 기존 공간에 남겨두었다. 존재감이 없었다. 주송신기, 예비송신기, 2채널 콘솔, 4기가 500메가 중고컴퓨터, 정전전원장치가 전부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서 송신장비들이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소리 매체 라디오방송 사업, 소리가 안 나면 하던 일을 놓아야 한다. 원격 접속해서 안 되면 바로 달려가야 한다. 경우와 빈도가 예측불허였다. 송신기가, 콘솔이, 컴퓨터가 번갈아가며 또는 동시에 문제를 일으킨다.

광주시민방송 송신소 안테나, 지난 2월 북구청에서 방송국 인근 건물로 옮겨왔다.(사진 제공 광주시민방송)

송신장비들이 소리를 못 내보내는 다양한 경우와 빈도를 접하면서 어느 날 어느 순간 탄성이 났다. 신세계다. 생물이다. 전원이 꺼지는 것은 건물 내 정전이나 공사로 두꺼비집을 내리는 경우여서 전원만 켜주면 해결된다. 컴퓨터 다운도 발품만 팔면 된다. 이런 건 발품이 문제지 난이도는 없다.

1년쯤 되었을까 송신기와 컴퓨터가 멀쩡한데 소리가 안 나는 일이 있었다. 콘솔이었다. 2채널짜리 콘솔. 초기 한시적으로 사용한다고 연결해놨는데 수명 탓인지 불량 탓인지 교체해야 했다. 몇만 원대 2채널 콘솔을 20만 원대 6채널 콘솔로 바꾸면서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아야 했다. 허가 받는 지상파방송국 송신장비에 2채널 콘솔이라니.

이번엔 송신기, 콘솔, 컴퓨터가 다 멀쩡한데 소리가 안 났다. 다 해체하고 케이블 바꿔 연결하는데도 안 났다.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어렵게 통신정보업체를 수소문해 기사분한테 점검을 맡겼다. 옥상 안테나가 문제였다. 이음새에 물이 차고 녹이 슬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안테나가 녹이 다 슬어요? 기사분도 딱해하는 표정을 짓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안테나를 새로 제작해야 한다고 2백만 원 든다고 했다. 기사분은 재료비 40만 원만 받고 만들어 주었다.

1와트 송출되던 당시 어느 날, 소리가 평소 가청범위인 2키로미터 반경에는 안 나고 북구청 앞마당에서만 들리는 희한한 일이 있었다. 3, 4일간 계속되었다. 껐다 켜도 안 되고 해체했다 연결해도 안 되고. 수습하지 못한 채 속만 태우는데 5일째 되는 날 멀쩡한 상태가 되었다. 한 번은 주송신기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았다. 예비송신기로 연결하니 해결됐다. 이래서 예비송신기가 있는 거구나.

얼마 후 2018년 겨울, 3년마다 받는 정기검사. 전파관리소 직원 3명이 방문했다. 송출 중인 예비송신기는 합격을 받았다. 주송신기는 고장 상태였다. 직원들은 고장 상태로 검사를 받느냐며 기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분들 표정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날까지 송신기 2대가 정상 작동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불합격. 장비를 J회사에 보내 수리를 맡겨 수리비 57만 원, 몇 개월 후 수수료 100만 원에 재검사 수수료 33만 원을 더 부담하고 겨우 검사를 통과했다.

2021년 2월 말, 북구청에 있던 송신장비와 안테나를 방송국 근처 아파트 옥상으로 옮겼다. 출력도 3와트로 커졌고 송신점도 더 높아졌다. 콘솔과 컴퓨터도 새 걸로 교체했다. 소리가 잘 나온다. 그런데 최근 주기적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금요일 아침만 되면 송출프로그램이 다운되는 현상이다. 인터넷 회사에 문의하지만 문제없다고 한다. 금요일 아침마다 발품을 파는데 참말로 귀신이 이런 귀신이 없다.

하소연할 데가 없으니 어디서 잘 하지도 않는, 공동체라디오방송 하는 사람만 겪는 귀신스러운 일. 공방협 7개사가 모이면 동병상련 이심전심 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어깨 위에 송신기를 올려놓은 채 일상의 생활을 감내하는 사람들, 공동체라디오방송에는 불가피하게 이 사람 1명이 존재한다. 안병천, 정선욱, 송덕호는 17년째, 그리고 글을 쓰는 나도 6년째. 이 씨름을 마다하지 않게끔 하는 동기가 있으니 그게 바로 공동체라디오방송 편성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전국 20개 신규 공동체라디오방송 사업자를 선정했다. ‘우리가 만드는 우리동네 라디오’ ‘주민 참여형 미디어시대 개막’, 멋진 수사로다. 청취자의 방송접근권 확대, 방송의 공공성 다양성 구현, 지역 공론의 장 형성, 취약계층 사회통합과 지역문화 발전 등은 우리 나라 공동체라디오방송의 규범적 이념이다. 역시 멋진 문구들이다. 기존 7개사와 신규 20개사는 실제 이 역할을 멋지게 해나가리라 믿는다.

신규 20개 방송사업자는 허가받은 날로부터 1년 이내 준공심사를 받아 첫 방송을 송출하게 된다. 연내 3~4개, 2022년 9-10개, 2023년 2~3개, 기타 미정으로 파악된다. 대략 2022년 중순쯤 첫 편성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안병천, 정선욱, 송덕호처럼 송신기와 씨름하는 사람 20명이 새로 탄생한다. 27명 활동가의 출현, 신규 공동체라디오방송 20개 허가의 의의와 진면목은 여기에 있다.

관련 칼럼 : 공동체라디오방송 추진보고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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