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기업의 '선택의 자유'가 제한돼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밝혔다. 재계는 21대 국회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의를 '기업 옥죄기'라고 반대하고 있다.

20일 매일경제가 공개한 인터뷰 영상에서 윤 전 총장은 '임대차 3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시장에 매물이 안 나오고, 매물이 안 나오면 가격은 오르게 돼 있다"면서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을 세게 시행하는 바람에 회사 경영진이나 동료직원들이 선택의 자유가 대폭 제한된다고 그러면 차별은 없어진다. 그런데 일자리도 없어진다"고 말했다. 대담을 진행한 서양원 매일경제 전무는 "그렇다"고 호응했다.

<매일경제 스페셜 인터뷰-윤석열 대통령 후보> 영상화면 갈무리 (유튜브채널 '매일경제 레이더P')

최근 주요 경제지들을 통해 나타나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재계 목소리는 '기업 옥죄기'다. 차별금지법이 차별금지사유 중 하나로 '고용형태'를 적시하고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도입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다. 노동자가 고용·인사·성과급·해고 등에 불만을 품고 차별피해를 주장해 소송을 남발하고 학력에 따른 차별이 금지되기 때문에 능력기준에 따른 인사가 불가능해 결과적으로 기업의 채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은 일자리 문제 해결방안을 묻는 질문에 사실상 '쉬운 해고'를 주장, 차별금지법이 없는 미국의 사례를 언급했다. 윤 전 총장은 "미국법은 사람을 해고할 때 정당한 사유(Just Cause)가 필요없다. 민권법(Civil Rights Act)에 따른 차별만 아니면 언제든 해고가 가능하다"며 "민권법에 따른 차별이라면 우리같이 해고무효소송을 하지 않는다. 그냥 손해배상 소송을 거는데 손배는 엄청나게 인정해준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회사에서 해고되면 그 회사는 떠나는 건데, 차별을 받았다면 민권법이 근로자의 자존심과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것"이라며 "게으르거나, 저성과자나, 회사가 어려움에 처해 인력을 감축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경우, 기존 사업을 없애고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쪽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할 때 거기에 맞춰 (해고 시)정당한 보상을 할 수 있도록 바꿔주는 게 돼야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6월 22일자 한국경제신문 1면·3면 기사 갈무리

하지만 차별금지법의 핵심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고용에 있어 다르게 구분하는 것은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석·박사도 동일임금을 받아야 하느냐'는 주장은 과도한 주장이다.

차별피해로 인한 소송은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을 먼저 거치도록 했다. 인권위에서 차별로 인정된 사건 중 피진정인(기업 등)이 인권위 결정에 불응하고,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될 경우 소송절차가 이뤄진다. 차별피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고의성, 지속성, 반복성,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차별피해의 규모 등을 고려해 '악의적 차별'이 인정될 경우에 해당된다. 특히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평등법의 경우 피해입증 책임을 원고와 피고에게 양분했다.

인권위는 차별피해에 대한 소송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기업에게 가혹한 조치로 소송남용 우려가 있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해 "소송지원이나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조치는 그동안 심각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당연시되어온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하나의 조치로서, 경제력 10위 권에 진입해 있는 우리나라에서 건전하고 투명한 기업문화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권위는 "우리사회에서 차별 소송은 매우 적은 상황으로, 향후 다양한 차별 소송을 통한 판례의 축적은 차별의 판단 및 시정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별을 금지해야 기업의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는 조언도 나온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27일 시사인에 게재한 <차별금지는 윤리를 넘어 '조직의 생존 문제'>에서 "차별금지법은 차별행위에 대해 사후적인 구제 조치를 취하는 법이기도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기능은 기업·대학 등 각 개별 조직에 차별금지와 다양성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각 조직들이 스스로 정책을 수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젠더 다양성과 인종·문화적 다양성이 높은 상위 25% 기업이 다양성이 낮은 하위 25% 기업보다 수익률이 각각 25%, 36% 높다는 '매킨지 보고서' 내용을 인용하며 차별금지와 다양성 증진을 위한 기업의 책무를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이 사례로 든 미국의 경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어 피해자가 '절차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권법은 인종·성별·국적·종교에 한정해 고용차별을 금지한다. 미국에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방지하는 연방 차별금지법이 있지만 각각 적용기준이 상이하다.

지난해 10월 30일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 <‘차별’ 구제, 미국과 독일의 ‘차이’는?>에서 데이비드 B. 오펜하이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미국에서는 1960~70년대에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방지하는 많은 연방 차별금지법을 제도화했다"며 "어떤 면에선 이 모든 것이 미국법이 차별 피해자에게 폭넓은 구제책을 제공함을 뜻한다. 그러나 미국에는 직장 내 차별에 대한 여러 가지, 그리고 종종 상충되는 법적 구제책이 있는 탓에 차별 피해자는 구제받는 과정에서 법적·행정적 절차의 늪에 빠져들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데이비드 B. 오펜하이머 교수는 "예를 들어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하고 해고(또는 강제 퇴사)된 직원은 실업보험 청구를 권고받지만, 행정기관이나 법원에 직장 내 차별이나 괴롭힘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라는 조언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며 "공소시효가 짧은 탓에 차별 피해자가 자신이 몰랐던 다른 구제책이 더 효과적이었음을 너무 늦게 알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차별 피해자는 정신적 상처에 대한 노동자 보상 청구를 권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활용할 수 있는 구제책을 선택하는 경우, 때로 다른 대안들을 포기해야 한다"며 "일반인이나 노조 법률자문은 물론이고 변호사조차 수많은 구제책을 두고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모든 구제책에 대해 충분한 조언을 얻기란 쉽지 않다"고 썼다.

지난 5월 24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민주노총, 이주노동자조합,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 등은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 10만행동'을 선포했다. (사진=미디어스)

한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일국의 대통령을 꿈꾸면서도 인권보장과 다원주의가 국가 번영에 얼마나 큰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전근대적 사고에 안타까움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장 의원은 "어제 저는 나이젤 아담스 영국 아시아담당 국무상과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오찬을 가졌다. 평등법이 제정되던 당시 영국에서도 재계 일각에서 윤 전 총장이 갖고 계신 것과 비슷한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며 "하지만 평등법이 제정된 후 시행 10년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평등법 때문에 고용에 있어 기업의 자유가 침해된 기업은 단 하나도 없다고 아담스 국무상은 단언했다"고 전했다.

이어 장 의원은 "오히려 평등법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더 다양한 인력풀 속에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했다. 참고로 아담스 국무상은 영국 보수당 정치인"이라며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유력 대선주자로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왜곡은 당장 멈추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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