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주 52시간제를 비판하며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20대 게임 개발자가 일명 '크런치 모드'로 돌연 사망,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지 4년 만에 야권 유력 대선주자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다. 그간 보수·경제지는 주 52시간제로 인해 산업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보도와 칼럼을 이어왔다.

매일경제 7월 20일 <[인터뷰] 윤석열 "주 52시간 실패한 정책…기업 노사간 합의 맡겨야">

20일 매일경제 지면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 '주52시간제에 대해 기업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는 서양원 매일경제신문 전무 질문에 윤 전 총장은 "실패한 정책이다.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52시간 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라며 "게임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근로조건은 정부의 일방적 규제보다 당사자 합의가 가장 우선돼야 한다"며 "연간 단위, 혹은 최소한 6개월 단위로라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면 기업 창의성과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근로자들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연근무제의 일종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년까지 늘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윤 전 총장의 '주120시간' 주장은 주 5일 노동 기준 매일 24시간씩, 휴일 없이 주 7일 노동 시 하루 6~7시간의 수면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일하라는 주문이다. 이는 기존에 보수진영에서 나와 비판받은 주장을 웃도는 주장이다. 2019년 12월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 52시간 근무제를 반대한다. 근로자와 기업 모두 10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은 10시간, 100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은 100시간동안 일할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무렵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서울대 특강에서 "한국은 52시간보다 더 일해야 하는 나라"라고 말했다. 이에 "그 자유, 민 의원님이나 가지세요", "과로로 죽을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인가" 등의 비판이 일었다.

2017년 근로복지공단은 게입업계 장시간 노동 관행인 '크런치 모드(Crunch Mode)'로 숨진 넷마블 자회사 20대 게임 개발자 A씨의 업무상 재해 사망(산업재해)을 인정했다. '크런치 모드'는 소프트웨어 개발 마감 시한을 맞추기 위해 수면, 영양 섭취, 위생, 기타 사회활동 등을 포기하고 연장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게임 개발자의 장시간 노동, 특히 게임 테스트 기간(빌드시기)에 이뤄지는 초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가 처음으로 산재로 인정된 사례다.

A씨의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근로복지공단 판정서에 따르면 A씨는 심근경색 발병 전 12주동안 불규칙한 야근과 초과 근무를 지속해야 했다. 특히 발병 4주 전 1주일은 78시간, 발병 7주 전 1주일은 89시간을 노동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대 젊은 나이에 건강검진 내용 상 특별한 기저질환도 확인할 수 없는 점을 검토할 때 고인의 업무와 사망과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이에 '구로 등대'로 불렸던 넷마블은 '장시간 근로개선안'을 발표, 야근과 주말근무를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게임업계와 보수·경제지에서는 주 52시간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구로 등대'를 다시 켜라는 주장 등을 제기했다. 게임기업의 수익저하와 경쟁력이 주된 이유였다. 2018년 5월 31일 조선일보 산업부장은 칼럼 <'구로 등대' 넷마블의 1년>에서 "넷마블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후 신작 없이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있다며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도 회사가 쇠락하기 시작하면 빈둥거리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라고 주장했다. 직원의 과로사로 인해 노동환경을 개선중인 넷마블이 준비없이 워라벨을 시작해 경쟁력이 떨어졌고, 때문에 '농업적 근면성'을 갖춰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서울경제는 2108년 8월 9일 기사 <게임주 '주52 시간 근무' 직격탄>에서 "게임주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부작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넷마블을 비롯한 대형 게임회사들은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신작 출시가 지연되며 실적 부진의 늪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2018년 8월 10일 기사 <'주52시간 역풍'에 신작 지연… 넷마블, 상장 후 최저가로 추락>기사에서 "넷마블의 등불도 이제 오후 8시면 꺼진다.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이라며 "결과는 새 게임 출시 지연과 주가 급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1월 23일 기사 <넷마블, 3년 공들인 신작 출시 지연… “52시간제 영향 없지않아”>에서 "게임업계의 특성상 신작 출시 시기가 임박하면 막판에 여러 개발자가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는데 주 52시간 근로제에 손이 묶인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2월 넷마블은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 올해 임직원 연봉 800만원 인상 계획을 밝혔다.

매일경제는 이달부터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체에 주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 관련 비판 기사와 칼럼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사설] 코로나 충격 영세기업에 주52시간제로 치명적 타격 줄 셈인가>(6월 8일), <경제단체 유예요구 외면한 정부…50인 미만도 주 52시간 강행>(6월 16일), <또 세금으로 '땜질'… 정부, 주52시간 유예 요구 끝내 묵살>(6월 24일), <"52시간에 막혀 A급개발자도 일못할판…연구소 해외로 옮길수도">(7월 6일), <한국 스타트업 '52시간 족쇄'…美 실리콘밸리선 "그게 뭐죠?">(7월 7일) 등이다.

매일경제 김인수 논설위원은 13일 칼럼 <자발적으로 일해도 불법인 나라>에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해도 주 52시간을 넘기면 위법입니다"라는 한 벤처 사업가의 '하소연'을 소개했다. 김 논설위원은 "우리는 경영의 기본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회사의 미션을 세우고, 그 미션에 심장이 뛰는 직원들을 뽑아야 한다"며 "그 미션대로 경영한다면 직원들은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 그런 회사에는 주 52시간 규제가 필요 없다"고 했다.

지난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가 발간한 나라경제 5월호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67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2137시간) 다음으로 가장 길었다. OECD 평균 연간 노동시간은 1726시간이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과로에 따른 한국사회 경제적 질병 부담은 연간 5조원에서 7조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