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감독 경질로 공석이 된 축구대표팀 감독이 외국인 감독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여론도 그렇고 축구협회 역시 기술위원회 회의를 통해 외국인 감독을 선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2007년 7월 사임한 핌 베어벡 감독 이후 4년 반 만에 외국인 축구대표팀 감독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한국 감독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 감독도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을 맡아 2차례나 월드컵에 나섰던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이 에이전트를 통해 관심을 보였고, 중국대표팀을 맡았던 아리에 한 감독 역시 한국 감독직에 도전장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이미 FC 서울 감독을 3년이나 맡았던 세뇰 귀네슈 감독도 물망에 오르고 있으며, 이름만 들어도 기대감을 가질 만한 A급 감독들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반가운 외국인 감독 후보의 등장

▲ 한국대표팀 감독직에 관심을 갖고 있는 스벤 에릭손 전 잉글랜드 감독 ⓒ연합뉴스
일단 외국인 대표팀 감독의 재등장은 반가운 일입니다. 특히 축구협회 입장에서 '자의반 타의반'이라 해도 기존에 거론되지 않은 신선한 인물이 후보로 나오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현재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감독들 대부분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에릭손 감독은 월드컵 8강을 두 차례 경험했으며, 귀네슈 감독은 UEFA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는 명장입니다. 또 아리에 한 감독은 중국을 비롯해 카메룬, 중동 등을 경험해 아시아 축구를 잘 아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마다 장점, 특징이 있고, 나름대로 뚜렷한 축구 철학이 있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한국 축구의 체질 개선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여러 가지 환경 자체가 걸림돌이다

그러나 과연 외국인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아 '성공한 감독'이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합니다. 감독의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국 축구의 특수한 환경 때문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외국인 감독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은 것이 일단 가장 큰 문제입니다. 또한 외국인 감독이 한국 축구, 한국 문화를 익히고 적응해 자신의 지도 철학을 발휘할 충분한 시간을 줄지도 미지수입니다. 기본적으로 후보군에 오르내리는 감독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어야 하는데 현재 그런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어 안타깝습니다.

감독 선임 권한을 갖고 있는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3차예선 쿠웨이트전, 월드컵 최종예선, 월드컵 본선 등 3단계를 나눠 선임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적이 좋으면 월드컵 본선까지 그대로 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3단계 모두 서로 다른 감독이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나름대로 일리는 있습니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성적이 좋다 해도 내용적으로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봤을 때 본선에서의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게 옳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또 감독에게 어느 정도 목표 의식, 동기 부여를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3년 이상 장기간 맡아 꾸준하게 만들어 가는 대표팀 운영에 익숙한 현 외국인 감독 후보군이 제대로 적응해 한국대표팀을 지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비싼 몸값을 주고 데려왔다면 어느 정도 많은 시간을 줘서 성적 뿐 아니라 체질 개선에도 힘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후보 가운데 귀네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한국 축구에 대해 뚜렷하게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1년이라는 시간에 성적과 내용 모두를 요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모한 도박'을 감행하라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적에만 집착한 방침을 고수한다면 또다시 과거 안좋았던 사례의 전철을 밟을까 걱정입니다. 2003년 대표팀을 맡았다 1년 만에 사퇴한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 2006년 독일월드컵 직후 대표팀을 맡았다 역시 1년 만에 물러난 핌 베어벡 감독 등의 사례처럼 말입니다.

워낙 전격적으로 감독을 경질하고 선임 작업을 하다 보니 외국인 감독이 일할 만한 장치, 환경이 거의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물론 코칭스태프, 통역사 등의 환경이야 새 감독의 성향에 따라 선임하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전임 외국인 감독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선수 차출 문제를 비롯해 축구협회의 직간접적 영향력 행사 등 외부적인 요소들을 감당하면서 외국인 감독이 제 몫을 다 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바꿀 것은 과감하게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현재 축구협회의 모습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지금으로서는 어려워 보입니다.

▲ 한국 감독 후보군에 여전히 오르내리고 있는 세뇰 귀네슈 전 FC 서울 감독 ⓒ연합뉴스
감독 선임만큼이나 역량 발휘할만한 환경도 신경쓰라

이달 안, 올해가 가기 전에 감독 선임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2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촉박하고 시선을 돌린 만큼 외국인 감독 중에서 한 명을 골라야 하겠고 축구협회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A급이든, 외국인이든, 국내파든 누가 되더라도 감독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또다시 한국 축구는 뒷걸음질칠 것입니다. 감독 선임 작업만큼이나 감독이 본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 보완, 개선 노력도 보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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