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행이면 필유아사. 셋이 같이 길을 걸으면 그 안에 꼭 내 스승이 있다는 뜻이다. 세상 누구에게나 배울 것이 있다는 말도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말하기도 할 것이다.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어떨까? 가수를 꿈꾸는 위대한 탄생 도전자들에게 멘토는 절대적인 존재다. 멘토스쿨에 들어왔지만 생방송 무대까지 갈 마지막 결정권을 쥐고 있는 멘토를 바라보는 멘티들의 입장은 어쩌면 신 이상으로 간절한 대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정작 도전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멘토의 자리는 결코 마음 편한 자리가 아니었다. 앞서 이승환이 탈락하는 멘티들 때문에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듯이 멘토스쿨의 졸업식장에서 멘토는 독이 든 술잔을 마시는 심정일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것을 카메라가 주는 평소 이상의 휴머니즘으로 비뚤어지게 보는 이도 있다.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주 없는 것을 억지로 흉내 내는 정도라면 시청자에게 발각되고 말 것이다.

위대한 탄생2의 멘토들은 아주 연기를 잘하거나 아니라면 아주 착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반전을 보이는 사람은 작곡가 윤일상이다. 예선에서는 냉정한 독설(자기 말로는 직설)을 보이며 작곡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던 윤일상은 멘토스쿨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자기 멘티들에게 아주 각별한 태도를 보였다. 어떤 말도 독설이 될 수 없는 애정이 묻어나는 충고와 격려가 눈에 띄었다.

16일 밤은 그런 윤일상 멘토스쿨의 최종 탈락자를 정하는 날이다.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하나인 샘 카터와 50키로 그리고 정서경 셋 중에 하나를 떨어뜨려야 하는 날이다. 윤일상은 히트 작곡가답게 너른 가수 인맥을 동원했다. 김정민, 이현우, 조규찬 그리고 바다까지 윤일상 멘토스쿨의 졸업식은 이들의 등장만으로도 화려했다. 쟁쟁한 선배가수들의 위세도 멘티들을 움츠러들게 했겠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는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을 것이다.

샘 카터는 윤일상이 작곡한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를 아주 잘 불렀다. 고음에 가서도 자기의 장점을 흩트리지 않고 듣는 사람을 꼼짝 못하고 집중케 했다. 심사평도 칭찬 일색이었고 셋 중에 단연 1위로 생방송 무대를 예약했다. 남은 사람은 정서경과 50키로였다. 정서경은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불렀다. 그러나 여전히 음역이 좁은 정서경의 한계는 아주 매력적인 음색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기회를 주기에는 무리였다. 정서경이 고음불가라면 대중은 고음집착이라는 점이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50키로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정서경이 현재 상태로는 생방송 무대를 소화해낼 수 없다는 것이 윤일상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 결정은 심사를 하기 이전부터 하고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윤일상은 냉정한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서경에게는 그 결과가 탈락만의 의미는 아니었다. 윤일상은 노래를 마친 정서경에게 합격보다 어쩌면 더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윤일상은 정서경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러기 위해 하루도 열심히 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정서경에게 “고맙고...또 고맙다”라고 했다.

스승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지 모를 일이다. 제자의 성장한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스승의 마음인 것 같았다. 마지막 말을 매끄럽지 못하게 끝낸 윤일상의 눈빛도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고맙고 또 고맙다"는 윤일상의 진심이 담긴 한마디는 정서경을 울게 했다. 스승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석가와 제자 가섭존자는 미소로 마음을 주고받았다는데 윤일상과 정서경은 아릿한 눈물 한 방울로 끈끈한 정을 나누는 모습이 흐뭇했다.

그리고 최종결과를 알리면서 목이 멘 듯 “앞으로 더 잘 가르쳐줄게”하는 윤일상의 모습은 이 둘의 관계가 방송이 만들어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짜 스승과 제자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예능에 불과한 위대한 탄생이 각박해진 세상에 스승과 제자라는 아름다운 관계의 본래를 보여주는 것은 참 기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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