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강타자의 기준으로 첫손에 꼽히는 것은 3할 타율입니다. 10번 타석에 나와 3번 안타를 기록해야 달성할 수 있는 3할 타율에 오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2011 시즌 3할 타율에 오른 선수는 8개 구단 통틀어 단 14명에 불과합니다. 산술적으로 각 팀 당 채 2명이 되지 않으며 어떤 구단은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것이 3할 타자입니다.

따라서 어떤 타자가 달성한 3할 타율을 ‘무의미하다’고 규정한다면 야구에 대해 무지하다거나 혹은 매몰찬 평가절하라는 비판을 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LG 박용택이 2011 시즌 달성한 3할 타율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박용택은 2011 시즌을 앞두고 장타자로의 변신을 선언하며 근육을 불렸습니다. 외야수들의 포지션 중복과 자신의 취약한 어깨로 인해 박용택이 지명타자에 전념할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에 저는 지난 2월 ‘LG 박용택, 변신은 선수 생명 걸린 도박(바로 가기)’에서 장타자로의 변신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몸을 불린 박용택은 특유의 ‘쫄바지’를 버려 시범 경기부터 화제를 모으더니 페넌트 레이스 개막 직후부터 홈런을 폭발시키며 변신에 성공한 듯했습니다. 4월 한 달 동안 타율 0.346 6홈런 20타점으로 맹활약한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박용택이 30홈런 100타점을 여유 있게 달성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5월까지 타율 0.325 9홈런 37타점으로 LG의 상승세를 이끌던 박용택의 페이스는 6월 이후 급속히 냉각되었습니다. 6월 한 달 동안 홈런은 단 1개, 8타점에 그쳤고 볼넷과 삼진 비율도 나빠졌습니다. 월간 타율도 0.227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득점권에서 박용택의 방망이는 헛돌아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주장 박용택이 부진에 빠지자 LG도 덩달아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LG 부진의 책임을 모두 박용택에게 전가할 수 없지만 주장이자 중심 타자로서 책임이 작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박용택은 7월과 8월에도 부진을 면치 못했고 LG의 추락은 바닥을 몰랐습니다. 8월말 박용택은 2군행을 통보받았습니다.

▲ 9월 8일 잠실 두산전에서 7회말 동점 솔로 홈런을 터뜨렸지만 무거운 표정의 박용택. 여름 내내 부진했던 박용택은 LG의 포스트 시즌 탈락이 확정되자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9월에 접어들어 LG가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를 사실상 확정짓자 박용택은 1군에 복귀해 다시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9월 이후 시즌 종료까지 타율 0.368로 타격감을 되찾은 박용택은 0.302의 타율로 3년 연속 3할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박용택의 2011 시즌 행보를 돌이켜보면 소속팀 LG의 행보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시즌 초반에는 놀라운 성적으로 기대감을 증폭시켰으나 6월 이후 대폭락으로 시즌 전체를 완전히 망쳤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따라서 박용택의 3할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2011 시즌이 박용택에게 굴욕적이었던 것은 단지 타율이나 팀 성적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난 8월 성적 부진에 분노한 팬들이 소위 ‘청문회’를 벌이자 주장 박용택은 ‘부담스럽다’고 발언해 빈축을 샀습니다.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가 확정되면서 2년 동안 주장을 맡은 박용택이 자신을 비롯한 선수단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적에 대한 부담이 없는 프로 선수란 존재하지 않으며 장기간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응원하다 못해 지친 팬들을 코앞에 두고 입에 올리기에는 너무나 부적절한 발언이었습니다.

박용택에게 있어 2011 시즌은 연봉 옵션을 채우는 것 외에는 무의미한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즌 종료 후 박용택은 무리한 근육 불리기로 인해 시즌 내내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장타자 변신은 박용택에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던 것입니다.

예민한 심성의 박용택은 너무나 부담스러웠던 주장 완장을 내려놓았습니다. 내년 시즌에는 박용택이 홈런이 아니라 안타나 희생타로도 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인성과 이택근이 떠나 약화된 팀 타선에서 박용택의 역할은 내년 시즌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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