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원을 목전에 둔 뿌리깊은 나무가 어쩐지 더딘 속도를 보이는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극적 결말을 이끌어내기 위한 숨고르기가 틀림없다. 작가는 기존 사건들의 전개를 순방향으로 끌어가면서 무심한 척 무시무시한 복선을 하나 툭 던져놓았다. 그것으로 일주일을 상상하고, 추리해보라는 도발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기꺼이 그 도발에 호응하여 추리를 해보았다. 따라서 이것은 스포일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추리일 뿐이다.

세종은 한글반포를 놓고 절묘한 책략을 만들었다. 밀본을 역당이 아닌 붕당으로 인정해서 제도권 안으로 끌어안겠다는 선언과 제안을 해놓은 상태다. 그것은 밀본 전부는 아니지만 이신적과 심종수에게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다. 크게 보면 밀본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그 수면 아래로는 정기준을 고립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평을 살해한 것을 역모나 강상죄가 아니라 살인죄로 다스리겠다고 한 것은 정기준까지도 포용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세종의 마음이었다.

밀본에는 신구세력이 존재한다. 첫째는 밀본지서에 서명한 구세력이다. 이들은 우의정 이신적을 비롯해 집현전 직제학 심종수 등 어쨌든 조정에 적을 둔 입신양명에 성공한 자들이다. 반면 밀본 신세력들은 성균관 유생들을 중심으로 한 아직 백수들이다. 또 다른 차이가 있다면 구세력은 정기준의 존재를 모르고 세월을 보내왔지만 신세력들은 정기준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밀본의 전위로 성장했다. 그래서 밀본 신세력들은 세종의 책략에 흔들릴 가능성이 적었다.

22회는 짝수회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싱거운 전개를 보였다. 창암골에서의 무력격돌도 없었으며, 윤평이 살육과 납치를 하는 동안 견적희, 심종수 그리고 강채윤까지 모두 뒷북만 쳤을 뿐이다. 그리고 소이를 비롯한 궁녀 3명이 모두 밀본의 본거지에 감금되고 말았다. 궁녀들을 쉽게 찾은 밀본과 달리 세종은 어디서도 밀본의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하는 무력함을 보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세종은 가장 가까이 있는 밀본원 이신적과 흥미로운 머리대결을 벌인다.

가정법 대화라고 어렵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가볍게 상황극을 벌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이신적을 진작부터 의심하던 세종은 이러저리 떠보다가 자리를 파하고 일어서 돌아가려는 이신적의 등 뒤로 폭탄발언을 한다. 정기준을 넘기라는 것이다. 그때 심종수는 정기준을 찾아가 밀본의 본래 대의를 따지며 밀본을 자신에게 넘기라는 식의 말을 한다. 여기까지가 대략의 내용이다. 그런 가운데 소이를 찾아 헤매는 채윤의 행적에서 밀본의 와해에 대한 아주 중요한 복선이 발견되었다.

연두였다. 더 정확히는 연두가 쓴 글자였다. 연두는 개파이가 그리워서 돌에 그의 이름을 쓸 정도였고, 개파이 역시 몸을 숨겨야 할 시기에 연두를 보러 산을 내려왔다. 그래서 연두 뒤를 따라온 채윤에게 일격을 가하고 연두를 업고 산 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개파이와 연두가 만나는 것은 한글 반포와 유포 작전을 성공하려는 세종과 그것을 막으려는 밀본의 숨 막히는 대결의 과정에 나오기는 다소 한가해 보이는 장면이었다. 불과 2회밖에 남지 않은 드라마에서 어린 소녀와 돌궐 전사의 애틋한 사연이 돌출된다는 것이 분명 어색하기 때문이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연두와 개파이가 등장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여기서부터는 추리와 상상력이 필요하다. 먼저 윤평이 거지떼들을 몰살시킨 것을 기억하고, 다시 정기준이 글자를 아는 모두를 죽여 없애라고 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럼 다시 연두를 업고 산을 달린 개파이의 행선지를 추리해보면 목적지는 밀본의 산채밖에 있을 수 없다. 거기서 정기준은 글을 쓰는 연두를 발견하고 죽이라고 한다. 그러자 개파이가 분노하여 밀본 산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이어 무휼의 내금위가 출동하는 전개를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런 추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강채윤은 번번히 출상술을 아끼다 윤평과 개파이를 놓쳐버렸다. 또한 세종이 이신적을 거의 회유에 성공했지만 이신적은 밀본 산채를 모른다. 이 상황에서 예고편에 보인 것처럼 소이가 풀러나기 위해서는 관군에 의한 토벌이 아닌 내부의 문제로 인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개파이의 분노로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정기준이 윤평에게 소이 일행을 죽이라고 한 명을 어기고 놓아줄 가능성도 생각해볼 만하다. 작가는 윤평이 소이를 마음에 둔 것으로 슬쩍 설정해둔 것을 기억해내자.

그리고 예고편에서 “나는 조선의 선비고 이것이 나의 길이다”라고 비장한 결심을 한 심종수의 결단은 밀본의 근거지를 관군에게 알리고자 하는 결심일 것 같다. 단지 그 결심은 다소 늦은 감이 있어 무휼의 내금위 출동은 한발 늦게 밀본 산채에 도착할 것이다. 결국 개파이의 난동과 관군의 난입이 시간차로 벌어지면서 밀본의 산채는 초토화되고 정기준만 겨우 몸을 피하게 되는 무협의 공식 같은 전개를 떠올릴 수 있다. 물론 거기서 마침내 무휼, 채윤, 개파이, 윤평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혈투 장면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반전은 또 한 번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세종과 정기준으로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다. 끝까지 선왕 태종과 다른 길을 가려던 세종의 일관된 결정에서 결말의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결과에 대해서는 오직 작가만이 알 뿐이다. 본방사수만이 해답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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