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대선 구도는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다. 유권자들은 어느 정파에 속했든 적어도 이 정권보다 나은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과 세력에게 표를 줄 것이다. 그런데 요 며칠은 스스로 그걸 증명하기보다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퇴행만 거듭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언에 대한 윤석열 전 검찰의 색깔론적 반응은 황당한 수준이다. 문제가 된 발언은 이재명 지사가 지난 1일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 이육사 시인의 딸인 이옥비 여사를 만나는 일정에서 나왔다. 전체 맥락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이 제대로 안 돼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푸대접 받고 있으니 개선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런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미 점령군”이라는 지엽적 표현에 집중해 사상검증적 공격을 제기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전 총장은 “대한민국이 미국 식민지라는 북한의 인식과 다를 게 없다”고 했다고도 한다.

먼저 사실관계를 따져보자. 해방 이후 미 군정기 미군의 지위가 ‘점령군’이었음은 사실에 가깝다. 맥아더 사령관 자신이 그렇게 표현하기도 했고, 직전까지 한국은 일제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미군은 일본에 대해서도 GHQ 체제를 통해 점령군으로서 군정을 실시했다. 한반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점령군’이란 표현에 과도하게 부정적인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 미국이 군정을 통해 해방 직후 혼란을 안정시키고 단독 정부 수립을 지원하는 과도기적 역할을 한 것 역시 어느 정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점령군’이란 표현에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이라는 과도한 누명을 씌우고 있다.

친일 청산에 대한 견해를 문제 삼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등은 이승만 전 대통령 등이 독립운동가 출신이라는 점에서 윤석열 전 총장의 헛발질을 정당화하고 있는데, 이런 시도는 논점이탈일 뿐이다. 정부를 이룬 개별인사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느냐 여부가 아니라 그 정권이 친일청산을 제대로 했는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친일청산이 미비하다는 인식은 이미 60년대에도 존재했는데, 이때까지는 반-기득권적 의식의 여러 표현에 가까웠다. 이게 구체적인 민족 의식으로 표출된 것은 박정희 정권의 등장 시기고 본격적인 정파 대립구도의 소재가 된 계기는 1965년 한일수교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표현을 곧바로 “북한의 인식”과 등치시키는 것은 무리수다.

보수언론은 ‘80년대 운동권적 현실인식’을 거론하는데, 이재명 지사의 발언이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 주둔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였다면 그런 해석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는 이후 해명에서 본 것처럼 해방 직후와 6.25 전쟁 이후 미군의 역할을 분리하고 있다. 앞서 봤듯 애초 발언 취지도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지위에 방점이 찍힌 거였다. 따라서 적어도 이 문제를 두고 ‘색깔론’을 제기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윤석열 전 총장의 그간 스탠스로 보면 이재명 지사와의 대립각은 ‘법치의 회복과 민생 경제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지 설익은 이념적 접근을 할 때가 아니다’란 메시지로 만드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게 아니라 이런 무리수를 감행한 정치적 이유는 뭘까?

골프대회 로고가 인쇄된 우산을 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연합뉴스)

이른바 ‘X파일’ 논란, 배우자 김건희 씨의 언론 인터뷰, 장모의 요양급여 부정수급 사건에 대한 1심 판결 등은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검증 국면을 조기에 불러왔다. 이게 지지층의 불안으로 이어질 조짐에 국민의힘 입당론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인재영입위원장인 권영세 의원과 접촉했음에도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 것은 중도와 호남 유권자들의 여론을 의식한 행보로 보이는데, 오히려 이 때문에 국민의힘 지지층은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의제에 힘을 실으면서 ‘간보기’ 행보의 기간을 늘려 보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정치적 계산이야 그럴 수 있는데, 방식이 구태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이재명 지사에게 색깔론을 제기하는 이런 방식은 윤석열 전 총장 본인이 집권세력에 당한 일을 영역만 바꿔 그대로 반복하는 게 아닌가? 둘째, 윤석열 전 총장은 이 정권의 행태를 뒷받침하는 ‘코어지지층’이 문제라면서 탈진보와 중도 및 보수를 묶는 압도적 정권교체를 주장하고 있는데, 정작 윤석열 전 총장이 쓴 방식은 반대 쪽의 또다른 ‘코어지지층’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이전 정권에서 김기춘-우병우식 법치주의(?)를 뒷받침한 유권자 층이다. 문제를 바로잡는 게 아니라 반대쪽에서 똑같은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 점에서 이재명 지사에 대한 색깔론적 공격은 이 정권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겠다는 윤석열 전 총장의 출마 명분과 정당성을 훼손하는 게 될 수밖에 없다.

보수정치가 이런 식으로 구식 사상검증으로 기울고 있다면, 집권 여당은 이 순간을 미래지향적 의제를 내놓고 국민들에게 어필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여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자기들끼리만 알아 듣는 얘기로 전락하고 있다. 김경율 회계사 국민면접관 배제 논란은 결정적 계기다.

반발하는 후보와 지도부 일부는 절차적 문제를 들어 김경율 회계사 면접관 위촉의 부당함을 지적했지만, 여당 지지층 외의 국민들이 볼 때는 조국 전 장관 문제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집권 여당의 비극적 상태를 보여주는 사건일 뿐이다. 가장 크게 반발한 이낙연, 정세균 두 후보는 김경율 회계사가 그간 정확히 무슨 주장을 어떻게 해왔는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김경율 회계사가 거짓 주장을 해 갈등을 초래했다든지 하는 평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당 사람과 그 지지층은 “공모는 없었다”, “권력형 범죄는 아니었다”는 말만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데 검찰 기소의 부실함을 지적하는 것이거나 윤석열 전 총장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한다. 그러나 조범동 씨가 저지른 죄에 대한 판결을 근거로 조국 전 장관과 그 배우자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실 왜곡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조국 전 장관 문제의 핵심은 검찰의 과잉 수사나 잘못된 기소 등이라고 볼 수 없다. 윤석열 전 총장 징계 국면과 최근까지 이어진 검찰 인사를 통한 ‘개혁’의 덕분으로, 이건 이미 부차적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에 관한 집권 세력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지금 이 시점에서 볼 때 ‘조국 법무부 장관’이 맞는 선택이었느냐에 대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권력형 범죄가 아니고 배우자의 그냥 범죄는 용인 가능한 것인가? 배우자가 법적 문제를 안고 투자한 펀드 운용사가 ’조국 펀드’가 아니고 ‘조국 5촌 펀드’이면 관계가 없는 것인가? 김경율 회계사 문제는 여전히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못하는 집권 여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양쪽이 이러니 정권재창출 또는 정권교체에 대해 아무런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 어느 쪽이 집권하든 가치와 개념을 자기들 유리한 대로 갖다 붙이고 지지층 동원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왜곡하는 행태는 계속 이어질 것이란 불길한 느낌이다. 사실 이것은 이 시기 현실 정치의 숙명에 가까운 것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희망을 가져보고자 하는 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희망을 갈구하는 메시지로 마무리를 하겠다. 제발 남은 기간 동안 다음 정권은 좀 다를 것이라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어느 쪽이든 좀 보여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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