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들의 경선연기 논란은 결국 현행을 유지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당무위 소집을 강행해 송영길 지도부를 사실상 ‘식물’로 만들 기세던 ‘비이재명’ 후보들은 최고위의 결정을 수용하기로 했다.

이들은 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는가? 경선 연기의 명분을 자기 지지층 외에는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시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전체 응답자,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호남, 진보, 중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경선을 현행대로 치르라는 응답이 높은 걸로 확인된다.

결국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역동적인 경선이 불가능하다든지 야당과 경선 시기를 맞춰야 한다는 등의 논거는 설득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논리들은 출마한 대권주자들끼리나 먹히는 거였다. 일반 유권자 및 지지자의 의향과 관계없이 경선 시기를 알아서 정하면 된다는 게 아니다. 경선을 연기할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들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논쟁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경선연기론자들이 백기를 들 수밖에 없게 만든 숨은 조력자 중 한 명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다. 추미애 전 장관은 경선을 현행대로 치를 것을 주장했다. 당 대표를 지낸 인사이고 이해찬 전 대표 역시 현행 당헌 당규의 정당성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보면 이상할 것은 없는 얘기다. 그러나 당내의 역학구도로 보면 의구심이 남는 게 사실이다. ‘강성 친문’의 지지를 받는 추미애 전 장관이 결과적으로 이재명 지사와 의견을 같이하는 쪽에 서면서 ‘이재명 대 반이재명’의 구도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경선연기론자들은 송영길 대표가 편향됐다든지 특정 성향의 주자에 유리한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든지 하는 반론을 설득력 있게 내세우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연합뉴스 사료사진 윤석열 전 검찰 총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하여간 이재명 지사는 ‘반이재명 전선’의 1차 저지선을 성공적으로 돌파하면서 당내 경선에서 대세론을 타게 됐다. 따라서 ‘반이재명 전선’의 맥락은 더 강화될 것이다. 당장 정세균 전 총리와 이광재 의원이 손을 잡고 정책연대를 강화하겠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정세균 전 총리는 또 언론 인터뷰에서 6인이 경쟁하게 되는 경선은 한 후보의 과반 득표를 어렵게 해 결선투표로 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선투표에서 자연스럽게 일종의 반이재명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의 경선 과정도 이재명이냐 아니냐의 구도로 가리라는 예상을 분명히 할 수 있는 대목이다.

1위 후보를 견제하는 후보들의 합종연횡은 선거에선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게 어떤 맥락으로 이뤄지는지도 유권자들이 평가할 대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재명 대 반이재명의 싸움이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되거나 여당 지지자들만 이해하는 의제를 둘러싼 대립 구도로 소모되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점에서 정세균 전 총리나 이낙연 전 대표가 이재명판 ‘기본소득’의 현실적 한계를 짚는다거나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와 관련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여기서 흥미로워 보이는 건 ‘이재명 반대’가 ‘우클릭’으로 귀결되는 상황이다. 이재명 지사는 어찌됐건 정책적 수사의 차원에선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장 좌측에 위치한 것처럼 비춰진다. 따라서 이재명 지사와 차별화를 위해 ‘우클릭’이 필요하다는 정치공학적 판단이 나올 수 있는데 박용진 의원의 사례는 이 전형이라 할 만하다.

박용진 의원은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법인세 감세를 통해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은 이명박 정권의 ‘낙수효과’를 떠올리게 한다. 감세의 효과를 투자 고용 배당의 확대와 임금 상승의 선순환으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초이노믹스’에 가까워 보인다.

박용진 의원은 재정 확대와 “세금 많이 걷어 마구 나눠주겠다”는 데 대해선 ‘일본화’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도 했는데, 전형적인 보수정치의 논리다. 실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개발주의(일본열도개조론)와 부실한 금융시스템이 만든 거품이 플라자 합의 이후 불황을 만나면서 시작됐고 정권이 제대로 대응을 못하다 거품을 한꺼번에 터뜨리면서 심각성이 커진 것이지 방만한 복지 확대 등이 원인이 된 게 아니다. 오히려 불황 극복의 희망을 보여줬다고들 하는 ‘아베노믹스’는 통화 완화와 재정 확대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있다(법인세는 깎아줬다).

박용진 의원은 증제는 진보, 감세는 보수라는 진영논리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건 근본적 철학의 문제다. 박용진이라는 인물이 자칭 ‘진보’에서 ‘보수’로 완전히 넘어갔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러한 ‘재벌 저격수’의 ‘우클릭’은 철학의 변화라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이재명이냐 아니냐의 전선에서 공학적 판단의 결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경선이 철학과 가치의 차이를 드러내는 과정이 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재명 지사는 좌클릭하니 나는 우클릭 해야겠다는 수준이 아니라, 이재명 지사의 주장과 철학 자체가 제대로 된 것인지를 검증하는 게 우선이다. 가령 이재명의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이 맞는 것인가? 이재명표 ‘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가? 과연 지역화폐는 현금지급보다 경제성이 있는가? 이재명-진보 대 반이재명-보수라는 허구적 구도의 정치게임은 이러한 쟁점을 가릴 것이다. ‘이재명은 진짜 진보가 아니다’라기보다는 ‘이재명-진보가 틀렸기에 보수적 해법이 필요하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보여주는 바는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적 수사와는 별개로 애초에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정치 집단의 정책적 뿌리가 보수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일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보수정치에서도 관측되는 것 같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9일 정치 참여와 대권도전을 선언할 걸로 보인다. ‘보인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건 윤석열 전 총장이 갈 길을 알려주겠다고만 했지 ‘갈 길’이 뭔지를 아직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 ‘간보기 정치’를 끝내고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하는데, 이 궁금증의 핵심은 윤석열 전 총장이 이미 정치를 할 것인지 여부가 아니다. 정치를 왜 하겠다는 것인지, 어떤 경로를 거쳐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것인지 등이다. 윤석열 전 총장이 여기에 명확한 답을 할 수 있을까?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윤석열 전 총장은 정책적으로는 보수이나 정치세력으로서 국민의힘 합류에는 동의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두 가지 얘기 중 하나는 해야 한다. 비-국민의힘으로서의 어떤 세력을 만들어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하든지(단일화 등은 나중 문제이다), 국민의힘에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입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든지. 그런데 이른바 ‘이준석 현상’과 역대 제3세력 후보가 겪은 고난 때문에 양쪽 모두 시원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뒤집어 말하면 ‘간보기’는 고뇌라기보다는 ‘양당과 제3후보를 모두 반대해야 하는’ 처지로서의 정치공학적 기회주의인 것이다.

과거 대선은 후보가 ‘시대정신’과 조응할 때에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김영삼은 군부독재와의 결별, 김대중은 정권교체, 노무현은 정치개혁, 이명박은 ‘부자되세요’, 박근혜는 공적 존재로서 국가주의의 귀환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정신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내년 대선은 지금까지로 보면 시대정신을 동반한다기보다는 온갖 정치공학으로만 점철된 상태로 치를 가능성이 커보인다. 이 경우, 다음 선거가 아닌 그 다음 선거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 불안한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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