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변인을 통해 밝힌 "큰 정치를 하겠다" 등의 입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정정했다. 이 역시 측근을 통해 전달됐다.

25일 중앙일보는 기사 <[단독]"쇼정치 안 한다" 尹, 29일 대선출마 장소에 숨겨진 뜻>에서 윤 전 총장이 지금은 사퇴한 이동훈 대변인(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큰 정치' '민생 투어' 등을 '메시지 오류 사례'로 주변에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7일 이 전 대변인은 윤 전 총장 발언이라며 기자들에게 "국민 통합해서 국가적 과제 해결할 수 있는 큰 정치만 생각하겠다. 내 갈 길만 가겠다. 내 할 일만 하겠다. 여야의 협공에는 일정 대응하지 않겠다. 국민이 가리키는 대로 큰 정치를 하겠다"고 전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내에 있는 우당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전시물을 관람한 뒤 취재진에 둘러싸인 모습(사진=연합뉴스)

이날 중앙일보는 "윤 전 총장은 최근 국민의힘 입당 문제 외에 몇 가지 '메시지 오류 사례'를 주변에 언급했는데, 그 중에는 지난 17일 대변인이 공지한 '큰 정치만 생각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윤 전 총장은 '내가 무슨 큰 정치냐. 사실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주변에 해명했다고 한다"며 "윤 전 총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국민의 부름으로 이제 막 정치 첫발을 떼는데 큰 정치 운운하는 게 국민보기에 오만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게 윤 전 총장의 인식'이라고 전했다"고 썼다.

또한 중앙일보는 윤 전 총장이 '민심 투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지인들에게 '내가 출마선언 후 민심 투어니 전국 투어니 한다는데 무슨 골프 투어도 아니고, 그런 쇼 정치는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민심 투어'도 이 전 대변인이 전한 말이다.

중앙일보 25일 <[단독]"쇼정치 안 한다" 尹, 29일 대선출마 장소에 숨겨진 뜻>

중앙일보 보도 역시 윤 전 총장 측근의 전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잠행 아닌 잠행'이 이어진 지난 3개월 동안 언론에선 '측근발 단독보도'가 양산됐다. 이는 '간보기 정치' '전언 정치' 비판을 받아왔다. 측근의 언론 대응을 또다른 측근이 바로잡는 양상도 나타났다.

윤 전 총장은 지난 3월 검찰총장 퇴임 이후 언론 앞에 나서지 않고 있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사전투표장에 등장한 것, 지난 9일 우당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것이 공개 행보의 전부다.

윤 전 총장이 서울시장 사전투표를 할 것이라는 소식은 조선일보·채널A 등의 '측근 단독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후 윤 전 총장은 전문가들을 만나며 청년 일자리, 반도체, 골목상권 등의 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측근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렸다. 언론이 윤 전 총장 행보에 대해 사후 확인을 요청하면 측근들이 확인해주거나, 측근들이 윤 전 총장 행보 관련 메시지를 특정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단독 보도가 이뤄져 왔다.

다만 윤 전 총장은 때때로 일부 언론에 한정해 현안 관련 입장을 직접 밝혔다. 우당 기념관 참석 당시 쇄도하는 언론 질문에 침묵한 윤 전 총장은 직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LH사태' 특검 필요성을 주장했다. 또 이 전 대변인이 자신의 국민의힘 입당을 긍정하자 윤 전 총장은 곧바로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 국민의힘 입당을 거론하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중앙일보가 전한 윤 전 총장의 발언이 사실이라고 해도 의문은 남는다. '큰 정치', '민심 투어' 등은 이 전 대변인 사퇴의 도화선이 된 윤 전 총장 국민의힘 입당 발언과 같은 시기에 나온 것이다.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지만 당시 윤 전 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국민의힘 입당 발언을 바로잡았을 뿐 '큰 정치', '민심 투어' 등의 입장을 바로잡지 않았다.

뒤늦게 윤 전 총장이 '메시지 오류' 거론에 나선 이유를 중앙일보는 "윤 전 총장은 검사 시절 거침없는 직설화법으로 이목을 샀다. 하지만 사임 후 한동안 잠행 모드를 이어갔으며 최근엔 국민의힘 입당을 둘러싼 혼선과 ‘전언정치’ 논란 끝에 대변인이 사임하기까지 했다"며 "이런 혼선을 거울 삼아 대선 출마과정에서의 핵심 메시지는 본인이 직접 내겠다는 의지를 주변에 피력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윤 전 총장 측은 중앙일보에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 1, 2위를 다툰다고 경거망동하거나 오만·거만해선 안 된다"며 "대선주자로서의 공개 행보의 테마도 ‘겸손하게,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고 했다.

진보·보수 성향을 막론하고 언론은 대변인 조기 사퇴로 윤 전 총장 '전언정치'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국민일보는 16일 사설<윤석열의 '전언정치',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에서 "한마디로 본인이 식당·메뉴·식사시간까지 다 정해놓고 유권자한테는 ‘주는 대로 먹으라’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22일 사설 <윤석열, 이젠 전언정치 접고 '왜' '어떤' 정치할지 밝혀야>에서 "총장 퇴임 후 100일이 지났다. 이젠 '국민이 불러서 나왔다' '국민이 가리키는 길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도의 막연한 차원을 넘어 좀 더 분명한 자신의 답을 내놔야 한다"고 요구했다.

같은 날 한겨레 이세영 논설위원은 칼럼 <윤석열과 전언정치>에서 "오늘날엔 존엄을 과시하거나 무능을 은폐하고 싶은 정치인일수록 제 모습을 드러내는 일에 인색하다. 대중 앞에 나설 용기가 없거나, 자신을 드러낼 준비 자체가 덜 된 이들도 마찬가지"라며 "이 경우 원시종교의 신이 영매를 통해 신탁을 내리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대리인의 전언 메시지에 의존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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