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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의 실체는 이것! 당신 안에 분노의 조종자가 있다[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6.19 11:07

[미디어스=이정희] 어머니 미숙 씨가 모처럼 아들과 술 한 잔 나누며 속 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잠시 후 어머니는 폭발한다. 

“살기가 싫어! 답답해, 답답해!” 발작하듯, 어린애가 떼쓰듯 어머니의 분노가 온 집안을 휩쓸고 간다. 어머니는 말한다. 그렇게 분노가 솟구쳐오를 땐 내 정신이 아니라고. 누가 나를 누르고 있는 거 같다고. 곧 터질 것 같아 가만있으면 죽을 것 같다고.

EBS 다큐프라임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 2부 '분노의 조종자 내면아이' 편

미숙 씨 정도는 아니더라도 살면서 나도 모르는 분노로 인해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랬지’ 하지만, 그 순간만은 내 안의 그 무엇인가가 울컥 솟아오른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우리 안의 '내면아이'에게서 찾는다. 

'분노 사회'라는 개념이 나올 정도로 개인의 분노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 분노를 일으키는 심리적 원인 '내면아이'에 주목한 것이다. 그 내면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 2부 '분노의 조종자 내면아이' 편에서 다룬다. 

분노 조정자, 내면아이 

EBS 다큐프라임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 2부 '분노의 조종자 내면아이' 편

어린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보호자의 지지를 통해 정신적 안정감과 자존감을 형성한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그런 지지를 받지 못하면 내면은 구멍 뚫린 컵처럼 되어,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허기에 시달리게 된다.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거부당하고, 통제당하고, 두려움에 떨던 그 시절의 기억은 성장한 후에도 고스란히 남아 분노가 되어 솟구쳐 오른다. 

“아빠, 나 미숙이야. 아빠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미숙 씨의 경우,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어린아이가 그녀의 분노 안에 숨어 있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딸 미숙 씨에게만은 유독 다정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오빠들은 아버지가 편애한 미숙 씨를 구박했다. 

가장인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아버지 몫까지 고생하셔야 했다. 그녀가 그리워하는 건 '방패막'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주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부재가 상징하는 건 그 누구도 나를 돌봐주지 않았던 시절의 고립감이다. 그 고립감이 이제 나이 든 미숙 씨의 현실 상황과 맞물리며 그녀에게 '분노'를 폭발시킨다. 

신체화

EBS 다큐프라임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 2부 '분노의 조종자 내면아이' 편

내면아이는 그저 분노로만 솟구쳐오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신체적 증상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마거릿 폴과 에리카J. 초피크의 심리 상담실에 만삭의 임산부 같은 한 여성이 찾아왔다. 

좌절할 때마다 소화가 되지 않던 캐럴은 급기야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단다. 심리상담사의 주문에 따라 호흡을 따라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간 캐럴은 자기 안에서 오르내리는 분노와 마주한다. 

분노의 연원은 깊었다. '다른 사람의 말에는 귀 기울이면서 내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아'라고 화를 내는 캐럴의 분노를 따라가다 보니, 엄마에게서 떨어져 입양되기까지 홀로 있어야 했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어떤 선택권도 없고, 힘도 없고, 어른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했던 그 시절의 내면아이가 성인이 된 캐럴의 배를 부풀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른이 된 캐럴이 어린 시절의 캐럴에게 말을 건네도록 한다. “난 정말 너를 사랑하고 있단다. 언제나 너와 함께 있지.” 세상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나의 '내면아이'를 사랑해 주고 귀 기울여 줌으로써 치유는 시작된다. 

전이

EBS 다큐프라임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 2부 '분노의 조종자 내면아이' 편

앞서 미숙 씨가 분노가 솟구쳐오를 때마다 가족들에게 쏟아붓듯, 치유되지 않는 내면의 상처는 본인은 물론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상처를 '전이'시킨다.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이건 아닌데....' 영옥 씨는 아들을 너무나 사랑한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하지만 분노가 솟구쳐 오른 상황에서 아이가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퍼붓게 된다. 장소 불문 길바닥에서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아이를 두들겨 팼다. 

아이에게 비친 부모님은 어떨까? 심리상담 과정에서 아이는 아빠를 뱀으로, 엄마를 지네로 선택했다. '열받으면 되게 무서운' 두 동물, 그에 비해 자신은 약한 존재였다. 그런데, 자신이 당한 폭력을, 모델링하여 눌러 참고 있는 아이의 속마음은 '힘이 세져서 둘 다 이기고 싶은' 거였다.

대를 이어 갈지 모를 분노, 그 실마리는 영옥 씨의 '내면아이'이다. 딸 여섯에 막내아들 중 여섯 번째 딸, 그녀는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존재감을 상실했다. 엄마는 모질었고, 아버지는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꿈을 짓밟았다. 부모님이 남동생한테 하는 걸 보면 ‘나는 저렇게 자식을 안 키워야지’ 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상처가 덧날 때마다 아이에게 퍼붓고 있었다. 엄마가 나한테 하듯이 모질게 대하고 있었다. 

EBS 다큐프라임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 2부 '분노의 조종자 내면아이' 편

상담 과정에서 미숙 씨도, 영옥 씨도 그녀들의 '내면아이'에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배우자의 한 마디에 시름을 내려놓는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려주는 남편에 표정이 밝아진다. 어린 시절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를 지금의 가족이 주는 공감과 위로를 통해 치유 받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다. 이제는 더 이상 어른들에게 휘둘리는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니라는 ‘자각’에서 시작된다.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주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가 어린 시절의 나까지도 품어 안을 수 있는 자존감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나의 아픔까지 수용하고 품어 안으며 자신을 사랑하게 될 때 치유는 완성된다. 

가족은 한국 사회에서 기본 단위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 개개인이 가진 질곡의 시작이기도 하다. 가족으로 인한 묵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 내면의 상처를 다스리기 위한 심리학적 장치가 바로 '내면아이'이다. 이해할 수 없는 폭발적 분노, 그 시작은 어린 시절 상처받은 아이로부터이다. 

EBS 다큐프라임 3부작 <당신이 화내는 진짜 이유>는 2014년 작품이지만, 여전히 시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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