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무조건적인 직고용은 공정의 탈을 쓴 ‘역차별’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반대하는 정규직 직원들의 주장입니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의 정규직과 취업준비생들도 같은 목소리입니다.

“시험을 봐서 입사해야 공정하다.”
“아무 노력 없이 정규직이 되는 게 화가 난다.”
“노조 밥그릇 싸움으로 취업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언론은 ‘제2의 인국공 사태’라며 서로의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를 합니다. 이들 언론 보도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비정규직 제로 정책으로 공공기관의 인건비가 상승했고, 둘째, 이로 인해 공공기관의 부채가 급증했으며, 셋째, 이 때문에 채용이 줄어 청년들의 취업 기회가 박탈됐다는 겁니다. 이런 언론의 프레임은 청년 취업난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매우 강한 동력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합리적 주장이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습니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1천명 넘는 고객센터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게 되면 회사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기존 직원들의 복리후생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지난 14일 강원도 원주 공단 본사 로비에서 김용익 공단 이사장과 대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언론보도를 한번 살펴볼까요?

중앙일보(6/11) - ‘탈원전 직격탄’ 7개 에너지 공기업, 4년 새 영업익 14조 급감

“민간의 고용 창출 능력이 떨어지자 공기업이 신규 채용을 늘렸고, 문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0)’ 공약대로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으로 전환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중앙일보(6/11) - ‘비정규직 제로’ 외치던 공기업들, 올해 신규 채용 39% 줄여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앞장섰던 공기업이 올해 신규 채용 규모를 대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도 채용 규모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용 부담 증가 및 조직 비대화 등으로 신규 인력을 채용할 여력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중앙일보(6/14) - [사설] 미래 세대에 빚 떠넘기는 공공기관, 방치 안된다

“특히 취업난의 암울한 현실에 고통받는 미래세대가 그 빚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현 정부 들어 공기업 실적이 급락한 1차 책임은 정권에 있다. 고용 증대와 정규직화 등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기업을 이용했다”

조선일보(6/15) - [사설] 건보공단 이사장이 단식, 文 정권 무능 무책임 상징하는 진풍경

”이 코미디는 근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비정규직 제로(0)’ 정책 때문이다. 힘들게 입사한 정규직들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일보(6/15) - 노조는 서로 싸우고 이사장은 단식 농성

“이번 사태의 근원에는 이른바 ‘인국공 사태’로 통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의 맹점이 자리잡고 있다”

매일경제(6/15) - 무리한 정규직화…勞 ‘떼법 투쟁’불렀다

“실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은 인건비 부담 등을 증가시키며 오히려 신규 채용 규모 자체를 제약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이 무리하게 추진되면서 350개 공공기관 가운데 15곳의 인건비가 현 정부 출범 이후 4년간 1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국민일보(6/16) - [사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초래한 건강보험공단 사태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 상승하고 신규 고용 여력이 감소해 부담이 되는 정책이다. 기존 근로자로서도 이익의 양보가 예상되므로 반발이 따를 수밖에 없다”

세계일보(6/16) - [사설] 비정규직 제로’ 정책 실패가 부른 이사장 단식 농성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무리한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산물이다. 더구나 이로 인해 공기업의 신규 채용이 줄어든다면 애꿎은 청년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동아일보(6/16) - [사설] 勞勞 고용갈등에 기이한 이사장 단식, 건보공단의 황당극

“고용된 이들은 처우가 개선됐지만 공공기관의 고용 여력 축소와 인건비 급증 등으로 신규 채용이 줄어 취업준비생들은 피해를 보고 있다”

매일경제(6/17) - [기자24시] 건보이사장 단식 사태가 남긴 뒷맛
“공공기관 인건비는 늘고 신규 채용은 위축되며, 조만간 닥칠 인력 구조 재편도 눈감았다”

매일경제(6/17) - 공기업, 무리한 정규직化에 文정부 들어 빚 44조 급증
“주요 공공기관들이 매년 실적 악화에 시달리면서도 정원을 늘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결과다”

그런데 말이죠. 이 언론보도는 모두 사실과 다릅니다. 다른 근거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들의 기사를 잘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공공기관(공기업 포함)의 부채가 급등한 이유를 찾아볼까요?

중앙일보는 위의 같은 기사 <‘탈원전 직격탄’ 7개 에너지 공기업, 4년 새 영업익 14조 급감>에서 한국철도공사는 만성적인 운임 손실로, 대한석탄공사·한국광물자원공사·해양환경공단은 해외 자원 개발 사업 실패로, 강원랜드·한국마사회·인천국제공항공사는 코로나19 여파로 적자로 돌아섰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같은 기사에서 민간의 고용 창출 능력이 떨어지자 공기업이 신규 채용을 늘렸다고 합니다. 중앙일보는 36개 공기업의 임직원 수는 4년 동안 18.2%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인건비도 늘었겠죠? 그럼 인건비 증가를 가져 온 ‘정원’은 누구일까요? 정규직으로 전환한 비정규직일까요? 매일경제의 윤지원 기자는 이들을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한 철밥통’이라고 부르더군요.

그게 아니죠. 현 정부는 지난 4년 동안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공부문의 채용 규모를 계속 확대됐습니다. 기획재정부는 6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코로나대응, 안전, 보건의료, 신규 설비 운영 등 필수 인력 소요를 충원하고 공공부문이 민간 고용시장에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게 정원을 늘렸다고 밝혔습니다.

잘 한 것 아닌가요? 앞으로도 더 적극적으로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대해야 합니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죠. 바늘구멍을 코끼리도 통과할 수 있도록 크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공공부문 일자리는 9%로 OECD 평균 21.3%(2017년 기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규직으로 전환한 비정규직은 이 ‘정원’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별도의 무기계약직 직군으로 분류되며 별도의 임금체계가 적용됩니다. 기존의 임금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에 정규직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을 뿐입니다. 정규직 정원과 비용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림자입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일반 정규직 1인당 평균 보수액은 8885만원이지만 무기계약직(정규직 전환된 비정규직)은 3627만원으로 40.8% 수준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반정규직의 1인당 평균 보수는 6540만원이고 무기계약직은 3092만원으로 47.3%에 지나지 않죠.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 무기계약직 보수도 42.9%, 49.1%에 불과합니다.

공공기관의 부채가 급증한 원인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인건비 증가 때문이라구요? 전혀 상관없는 거짓말입니다.

올해 공공기관의 채용 규모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줄었다는 주장은 어떨까요?

중앙일보는 36개 주요 공기업의 경우 지난해 신규 채용은 정규직 7638명, 무기계약직은 712명(정규직의 0.9%)으로 2019년에 비해 32% 감소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올해는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러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기사를 좀 더 자세하게 볼까요?

중앙일보는 같은 기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영난이 첫번째 원인이지만”이라고 채용 감소의 원인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다음 기사에서는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이다”라고 합니다. 이건 뭐죠? 그런데 왜 ‘비정규직 제로’가 나오나요?

한국마사회는 장기간 경마 중단으로 사상 처음 영업 적자를 냈고, 그랜드코리아레저도 관광 수요 급감으로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강원랜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LH는 해체가 거론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전력은 원유가 인상에 따른 원가 상승, 코레일은 코로나에 따른 승객 급감 등등 이 모두가 중앙일보의 기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올해 350개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 규모는 2만6500명 규모로 작년의 2만6000명보다 많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이 보도자료에서 정규직 전환자 인건비는 기존의 기간제 인건비, 용역 사업비 등을 활용하고 있고, 처우 개선에 필요한 비용은 용역업체 이윤, 관리비 절감 등을 활용할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언론은 오히려 이 문제를 지적해야죠. 이것 때문에 정규직 전환은 ‘희망고문’일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요?

‘비정규직 제로→인건비 상승→부채 증가→채용 축소’, 언론이 확대하는 이 프레임은 ‘직고용은 역차별’이라는 잘못된 ‘공정 프레임’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프레임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언론이 이 프레임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노동자의 하향평준화입니다. 자본의 무한 이윤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이들의 관심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망하면 언론이 가장 큰 책임입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