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지만 미션을 기억하는 이는 많다. 로버트 드 니로와 제레미 아이언스의 명연기가 감명을 주었던 영화다. 특히 이 영화의 OST는 본래 가사가 없는 연주곡(Gabriel’s Oboe)이었다가 후일 가사가 붙어 넬라 판타지아라는 노래로 다시 태어났으며 작년 남자의 자격을 통해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노래 때문에라도 다시 이 미션이라는 영화를 찾아본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 미션의 마지막 장면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가슴 벅찬 감동을 주었다.

영화 미션의 엔딩은 대포와 총을 쏴대는 포르투갈 군대를 향해 신부와 원주민 아이들이 십자가를 앞세우며 비폭력 저항의 행진을 하는 장면이었다. 가장 근대적 문명을 폭력화한 서양의 이기주의에 대항해 노예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신부와 아이들의 숭고한 모습은 쉽게 잊혀질 수 없는 감동을 남겼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2011년 뿌리깊은 나무에서 그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거지와 아이들에게 훈민정음를 쉽게 익힐 수 있는 노래를 가르쳐 동네방네 부르고 다니게 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는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세종이 밀본과 사대부에 대항하기 위한 최종병기는 직접적으로는 궁녀4인방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이었다. 역병보다 무서운 민심이었다. 위로부터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스스로 익혀 퍼뜨리려는 것이다. 세종의 수많은 자식들을 지켜보느라 눈알이 시뻘개졌을 밀본을 바보로 만드는 통쾌한 역습이었다. 이 노래는 경서도 민요로 굿거리장단에 맞춰 불렀으나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아이들이 부르게 쉽게 좀 더 빠르게 편곡한 것으로 보인다.

국문 뒤풀이

가나다라마바사아 자차 잊었구나 기역 니은 디귿 리을
기역자로 집을 짓고 지긋지긋이 살잿더니
가갸 거겨 가이없는 이내 몸이 거지없이 되었구나.
고교 구규 고생하던 우리 낭군 구간하기가 짝이 없구나.
나냐 너녀 나귀 등에 솔질하여 송금안장을 지어타고 팔도강산을 유람을 할까.
노뇨 누뉴 노세 노세 젊어서 졸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다댜 더뎌 도중에 늙은몸이 다시 갱소년 어려워라.
라랴 러려 날아가는 원앙새야 널과 날과 짝을 짓잔다.
로료 류류 노류장화는 인개유지 ㄴ데 처처에 있건마는
마먀 머며 마자 마자 마잿더니 님의 생각을 또 하는구나
모묘 무뮤 모지도다 모지도다 한양낭군이 모지도다.
바뱌 버벼 밥을 먹다 돌아다보니 님이 없어서 못 먹겠구나.
보뵤 부뷰 보고지고 보고지고 님의 화용을 보고지고
사샤 서셔 사자고 굳은 언약 언약이 지중치 못하였구나.
소쇼 수슈 소슬단풍 찬바람에 울고가는 저 기럭아 님의 소식을 전하여 주렴아.
아야 어여 아예덤석 잡았던 손목 어이없이 놓쳤구나.

오요 우유 오동복판 거문고에 새줄얹어 타노라니 백학이 제지음하고 우줄울줄 춤을춘다.
자쟈 저져 자로 종종 오시던 님이 어이 그다지 못 오시나.
조죠 주쥬 조별낭군은 내 낭군인데 한 번 가시고 날 아니찾나.
차챠 처쳐 차라리 몰랐더라면 뉘가 뉜줄 몰랐을 것을.
초쵸 추츄 초당에 곤히 든잠 학의 소리 놀라깨니 울던학은 간곳 없고 들리나니 물소리 로다.
카캬 커켜 용천검 드는 칼로 이내 일신을 버혀를 다오.
코쿄 쿠큐 콜작콜작 울던눈물 이내 옷깃을 다 적 셨구나.
타탸 터텨 타도타도 원타도에 누구를 바라고 나 여기 왔나.
토툐 투튜 토지지신 감동하사 님 생기게 하여주오.
파퍄 퍼펴 파요파요 보고파요 님의 옥천당 보고만 파요.
포표 푸퓨 폭포수 흐르는 물에 풍기둥덩실 빠졌더라면 이꼴 저꼴을 아니볼걸.
하햐 허혀 한양낭군은 내 낭군인데 일자 서신이 돈절하구나.
호효 후휴 후회지심 마잿더니 다시 또 생각을 하는구나.
과궈 놔눠 역리과찬 지나는 길에 과문불입이 원 말씀이요 돠둬 롸뤄.

아들 광평대군을 잃은 충격에 패닉에 빠졌던 세종은 채윤의 말에 정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길고 긴 말이었지만 핵심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백성은 자기 배 곯아가며 나라를 책임지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런 백성이 욕망하게 되는 것이 무슨 큰 문제냐는 항변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문자를 만들고자 했던 세종의 마음이 백성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사실에 흔들리지 말라는 애정 참 깊은 말이었다. 한편으로는 잔인한 일이기도 했지만 세종은 숙적 정기준과의 논쟁 그리고 아들의 죽음에 대한 충격 모두에서 길게 빠져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정기준이 광평대군을 죽인 것은 문자반포를 어떻게든 막겠다는 선전포고의 의미였다. 세종은 그런 밀본에 맞서 병법을 여러 가지 응용한 복잡한 해법을 만들었다. 대외적으로는 암도진창의 계였다. 정면공격과 기습공격을 동시에 가한다는 것이다. 정면공격은 공개적으로 문자반포를 강행하는 것이었다. 광평을 시켜 외부에서 하려 했던 석보상절을 반대하는 학사들을 투옥시키면서까지 집현전에서 작업케 하고, 태종의 심복 조말생에게 밀본 수사의 전권을 맡겼다.

조말생이 밀본수사를 맡는다는 것은 밀본에게는 특별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조말생은 세종의 측근들을 집중적으로 잡아들여 고신을 가했다. 태종의 철권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조말생의 활약은 밀본과 조정 중신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소이를 비롯한 글자방 궁녀 4인방을 죄를 물어 관노로 강등시켜 지방관아로 쫓아낸 조말생의 처결에 별다른 의심이 따르지 않았다. 마침내 궁궐 밖에서 세종의 밀명을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종의 전략은 임도진창이 아니라 성동격서였다. 문자반포를 공개적으로 진행하고, 조말생을 앞세워 밀본수사를 하는 것으로 눈길을 끌고는 한글을 퍼뜨릴 궁녀4인방을 궁 밖으로 은밀히 빼돌린 것이다. 궁녀들과 문자창제 작업을 해온 것을 상상조차 못한 밀본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궁녀들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도 아이들의 노래가 많은 백성들의 입을 통해서 더 멀리 퍼지고서야 밀본과 정기준은 세종의 수에 다시 한 번 치를 떨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기준과 다른 세종의 해법이었다. 백성들에게 책임을 떠넘긴 세종의 믿음이었다. 백성들도 얼마든지 글자를 깨우쳐 읽고, 쓰고 또 생각하는 열의를 가질 거라는 세종의 바람이었다.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세종과 밀본의 싸움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에 필요 이상으로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역사는 사극의 치명적인 스포일러다. 우리는 세종이 결국 이기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긴장도, 울분도 참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현실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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