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1년 5개월동안 축구대표팀을 맡았던 조광래 감독을 대한축구협회가 경질하기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축구협회는 최근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조 감독을 경질하고 후임 감독을 물색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8월 대표팀을 맡은 뒤 숱한 일들이 많았던 조광래호가 1년 반도 안 된 시점에 닻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 조광래 감독ⓒ연합뉴스

화려했던 출발, 새 가능성 보여줬던 아시안컵

조광래호의 시작은 화려했습니다. 기존 한국 축구의 틀을 깨는 전술 운영으로 승승장구했고, 결국 지난 1월 열린 아시안컵에서 화려한 패스 축구, 공격 축구로 3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일본에 진 것이 뼈아팠지만 지동원, 구자철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빛났고,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박지성, 이영표의 투혼도 빛났습니다. 3-4위전까지 6경기동안 13골을 넣으며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공격 지향 축구를 구사한 것도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남아공월드컵 때와는 다른 색깔의 새로운 축구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무엇보다 큰 수확이었습니다.

인기도 많았습니다. 귀국해서 인천공항에 입국했을 때는 역대 축구대표팀 귀국 환영 행사 최다 인파가 몰렸을 정도로 인기도 대단했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6월, 세르비아와 가나 등 FIFA(국제축구연맹)랭킹 10위권에 있는 팀들을 잇달아 물리치며 절정에 달한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멈출 줄 몰랐던 하락세, 결국 전격 경질

하지만 8월 이후 조광래호는 급격하게 무너졌습니다. 일본과의 원정 친선전 0-3 완패는 그야말로 굴욕적이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40여년 만에 나온 일본전 최다 점수차 패배는 많은 축구팬들을 화나게 했습니다. 이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에서 졸전을 거듭했던 조광래호는 급기야 FIFA 랭킹 146위였던 레바논에 1-2로 패하는 이른바 '베이루트 쇼크'를 맛보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여론은 갈수록 악화됐고, 경질하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베이루트 쇼크' 이후 정확히 3주 만에 대한축구협회는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습니다. 초겨울 밤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경질이었습니다.

조광래 감독의 경질은 최근 대표팀 내 여러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더 이상 안되겠다'는 기류가 흘러나와 결정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전 패배 이후 갈수록 나빠진 대표팀 전력과 팀 내 분위기, 그런 가운데서 정형화된 베스트11과 일관성 없는 팀 운영 등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특히 레바논전 패배 이후에도 조 감독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내년 2월 쿠웨이트와의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에 부상에서 막 회복할 지 못 할지도 불투명한 이청용을 쓰겠다는 발언을 해 또 한 번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또한 경기력 저하로 감각이 떨어져 있는 해외파를 무리하게 차출하려 했던 것도 많은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대표 선수 부친은 조광래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에 항의를 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기술위원도 몰랐던 경질, 후폭풍은 있을 것

조광래 감독에 대한 동정여론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조광래 감독을 경질했고,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 있습니다. 내년 2월에 열리는 쿠웨이트전까지 조광래 체제를 끌고 갔을 수도 있지만 4개월 뒤부터 곧바로 최종예선이 치러지는 만큼 가능한 이른 시간에 분위기를 새롭게 바꾸고 가자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워낙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었기에 팬들 뿐 아니라 축구협회 내부에서도 많이 놀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지금껏 감독 교체 또는 재신임 논의가 기술위원회 협의를 통해 이뤄진 것과는 달리 기술위원들조차 몰랐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져서 이에 대한 논란, 뒷말은 무성하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야말로 지난 8월 이후 내리막길을 걸어온 조광래 감독이었고, 마지막에도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고 말았습니다.

'용두사미'가 돼 결국 한국 축구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조광래호 축구대표팀. 개혁과 실험의 연속이었고 그에 대한 지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눈앞에 성과, 그리고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던 책임이 더해져 씁쓸하게 끝마치고 말았습니다. 초기에 받았던 많은 기대만큼이나 워낙 많은 실망감을 안겨줘 고개를 떨궜던 조광래 감독 입장에서는 축구인 인생에도 큰 아픔을 얻고 상처만 입은 채 대표팀 사령탑 자리를 내놓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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