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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마나한 얘기 "중대재해법은 사전예방 중심으로"[비평] 보수언론, '로벤스 보고서' 선택적 인용 "처벌 과하다"…'사전예방'만 외치면 산재 줄어?
송창한 기자 | 승인 2021.06.11 16:24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사업재해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경영계와 보수언론에서는 엄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둔 재계는 '사전예방' 중심으로 보완입법해야 한다고, 보수언론은 기업·경영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총 등 재계는 중대재해법이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할 때부터 기업과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과중하다며 '사전예방' 중심의 보완입법을 건의해왔다. 그러나 산재사고 사전예방은 기업의 책무와 별개가 아니라는 점에서 "하나마나한 얘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일보 최훈 편집인은 8일 칼럼 <대기업은 함께 가야 할 국정의 동반자다>에서 "여당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대기업 압박에 장단을 맞췄다"며 "'재벌 개혁이 불평등의 만병통치약'이라는 복음은 어느새 진보진영의 신앙이 됐고, 내부에선 '왜 이리 개혁이 더디고 무디냐'는 추임새가 이어졌다"고 썼다. 

중앙일보 장정훈 산업1팀장은 2일 칼럼 <친기업 행보가 '쇼' 아닌 진심이기를>에서 "거대 여당이 장악한 국회는 기업규제 3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요청하는 경제계 목소리에 아예 귀 닫고 있고, 지칠 대로 지친 경총이나 대한상의는 허탈함과 무력감을 토로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조선일보 칼럼에서 박병원 전 경총 회장은 "반도체는 수많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의 토대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는 만큼 노동법, 화학물질관리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소부장 기업을 위협하고 있는 문제들을 차제에 다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10일 사설 <끼이고 깔리고 떨어지고, 산재로 스러지는 10대 20대 노동자>에서 "내년 1월부터는 이 같은 재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과 경영진을 엄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며 "하지만 사후처벌에만 중점을 둔 법으로 산재를 줄일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이어 동아일보는 "산재는 기본적인 안전 규정을 무시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숙련도에 맞는 작업을 할당받고, 업무를 숙지한 후 현장에 투입되며, 안전수칙에 따라 작업하는 예방적 산업문화가 정착되도록 지원하고 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11일 기사에서 영국 '로벤스 보고서'가 "법률의 비중을 낮춤으로써 산업안전의 당사자인 사업주와 근로자 등의 자발적인 노력을 촉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며 "산재 가운데 법규 위반이 원인인 사례는 20%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대부분 작업 습관, 현장 정리 정돈 상태, 개인의 실수나 착오 등에 기인한다고 봤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광범위한 전문가 의견 수렴이나 충분한 조사 없이 국회 통과 날짜를 정해 놓고 ‘중대재해 처벌에 대한 법’을 처리한 우리나라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보도 이후 '로벤스 보고서'는 조선일보, 한국경제 등에서 '산재는 기업인만 처벌한다고 줄지 않는다'는 논리의 근거로 쓰였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지난달 16일  한국경제에 <[시론]달라도 너무 다른 韓·英 '중대재해법'>을 기고했다. 

동아일보는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조합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지난 2일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도 중대재해처벌법과 연결시켰다. 동아일보는 지난 4일 사설에서 "이번 판정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하청 구조는 기업 간 자율적인 계약의 결과다. 기업 규모가 크다고 해서 적법한 계약 관계를 허물고 원청업체에 과중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썼다.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이선호군 산재사망대책위 간담회에서 고인의 아버지 이재훈씨(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지난 4월 평택항에서 작업 중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고 이선호 군, 지난 9일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로 인한 사망사건 등으로 기업과 경영책임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의 중대재해처벌법 재정비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선호 군 아버지 이재훈 씨는 지난달 20일 정의당과의 간담회에서 "중대재해법이 완전히 누더기가 돼버렸다고 들었다"며 "무조건 (감옥에)들어가 살아야 한다고 법에 정해지면 사업주가 자기 회사 안전관리요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정의당 강은미 의원에 따르면 광주 철거현장 붕괴 참사는 중대재해법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 의원은 "중대재해 정의에서 제조물은 제조되거나 가공된 동산을 말하고, 중대시민재해는 특정원료 또는 제조물·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 등으로 인한 재해를 의미한다"며 "이번 광주 건물붕괴 사고를 유발한 '철거'는 중대재해법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당초 사업장·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에서 종사자·이용자, 그 밖의 사람의 신체 안전이나 보건위생상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의무를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 제정 과정에서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뉘면서 사각지대가 발생했다는 게 강 의원 설명이다.

강 의원은 "기업조직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은 복잡하기 때문에 결국 사업주가 자신을 위해 노무제공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안전보건 의무를 지는 것이 필요하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에 붙는 수식어는 '누더기'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을 물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또한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나 법인은 최대 5배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하지만 애초 논의와 달리 5인 미만 사업장 사업주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 처벌은 3년 유예하기로 했다. 현재 중대재해 98.8%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경영책임자의 범위가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 이사'로 수정돼 사업주가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도 있다. 

11일 오전 광주 동구청 주차장에 마련된 학동4구역 재개발 붕괴사고 피해자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은 11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언론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을 염두에 두고 '처벌이 아닌 예방 중심의 자율적 관리를 해야한다'는 보도들을 내놨다"며 "당연히 예방은 중요하다. 그런데 계속 발생하는 산재사망을 어떻게 줄일 거냐는 문제가 처벌과 예방,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냐"고 비판했다. 

탁 소장은 "로벤스보고서 내용을 보면 예방에 있어 노사가 자율적으로 관리 시스템을 만들게 했다. 노동조합이 안전수칙과 기준을 만드는 데 권한을 가지고 적극 참여한 것"이라며 "우리 언론은 이것을 알면서도 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탁 소장은 "로벤스보고서는 노사가 만든 자율적 시스템,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법적 책임을 강화했다"며 "이 역시 언론은 의도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보건안전청은 산업재해에 대한 조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탁 소장은 '위험의 외주화' 구조 속에서 사전예방만을 강조한 주장은 "하나마나한 얘기"라고 꼬집었다. 탁 소장은 "사고 대부분이 50인 미만 사업장, 하청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안전기준에 대해 요구를 할 처지가 못되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예방은 온전히 사업주가 하게 되는데, 비용절감이 우선인 사업주가 알아서 예방한다고 하면 상황이 바뀌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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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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