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진민정 칼럼] 우연히 프랑스의 프리랜서 기자, 소피 유스타쉬(Sophie Eustache)의 최근 저서, «Bâtonner, comment l'argent détruit le journalisme(기사 베끼기, 어떻게 돈이 저널리즘을 파괴하는가)»라는 책을 접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언론이 덜 벌기 위해 더 많은 기사를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언론의 ‘우라까이’, 즉 타 언론사의 기사 일부를 대충 바꾸거나 조합해 마치 새로운 기사처럼 표절하는 행위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구에서도 통신사 기사를 베끼는 행위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온라인 기사를 작성하는 웹 저널리스트들에게 우라까이는 거의 의무처럼 인식되고 있다. 온라인에서 뉴스 정보의 수익은 클릭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사당 조회수와 클릭수가 많을수록 광고 수익이 증가한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가설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유스타쉬는 역설적으로 이런 언론사일수록 문을 닫거나 아니면 기자들을 해고하는 일이 더 빈번하다고 주장한다.

서구의 많은 언론사들은 실시간으로 각 기사에 대한 클릭 현황을 파악하고 뉴스룸에서 이를 생중계하고 있다. 프랑스의 거대 뉴스룸에서는 사이트 방문자수, 가장 많은 클릭수를 기록한 기사뿐만 아니라 방문자 수가 가장 적은 기사도 실시간으로 알리고 있다. 때로는 가장 많은 클릭수를 기록한 기사를 쓴 저널리스트에게 보상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 기사가 단순 스트레이트성 기사인지 아니면 심층 보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저널리스트들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한다.

유스타쉬에 따르면 프랑스 웹 저널리스트들이 하루에 생산하는 기사 수는 평균 6-8개다. 물론 우리나라 온라인 기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정상적인 취재활동과 검증 작업을 거치면서 작성할 수 있는 기사들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그 정보가 얼마나 믿을만한 정보인지, 얼마나 구체적으로 맥락을 제공하는 정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클릭을 불러일으키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독자들에게 정보가 아닌 것을 제공하면서 정보의 홍수에 빠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가디언의 편집국장, 캐서린 바이너에 의하면 이러한 상황은 ‘저널리즘의 원칙’을 배반하게 만든다.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고 언론사의 재정적 위기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광고 수익은 종이신문의 수익의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몇몇 무가지를 제외하고 많은 매체가 온라인에서 유료로 전환했지만, 독자들은 아직 온라인 뉴스에 돈을 지불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기사라면 더더욱 유료화의 장벽을 넘기 힘들다. 물론 모든 언론인이 그러한 관행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용과 시간을 들인 장기적인 탐사보도가 종종 클릭 경쟁 시스템에 의해 가시성을 잃고 희생되고 있다.

이로 인해 언론사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저널리스트들 스스로 자신들의 기대와 전혀 다른 저널리즘 작업 환경 때문에 현장을 떠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2019년에는 프레스 카드를 받은 프랑스 저널리스트 중 6%가 이 직업을 그만뒀다.

반면, 기사량을 줄이고 분석과 심층 보도를 늘리면서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언론사도 있다. 대표적으로 르몽드와 가디언이 그런 사례다. 르몽드는 저널리스트들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더 좋은 기사를 생산할 수 있도록 2018년부터 기사량을 25% 줄였다. 그러자 그 이듬해 유료독자수가 11% 증가했다. 가디언은 르몽드보다 먼저 이 전략을 선택했다. 2016년, 롱폼 저널리즘에 전념하기 위해 기사량을 줄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후 독자수는 두 배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기사량을 줄이고 퀄리티를 높이면서 위기를 타개한 사례는 꽤 많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조직들이 독자에 의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저널리스트가 제대로 자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 반면, 광고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클릭을 유도할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유럽에서는 시민이 구독·후원하고 운영에 참여하는 비영리 언론 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가디언의 ‘스콧 트러스트 기금’에서 영감을 받아 르몽드, 리베라시옹, 메디아파르트 등이 비영리 기금이나 협회를 통해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언론인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빼앗는 시스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진짜 저널리즘'에 승부를 걸 수 있도록, 한때는 이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 여겨왔던 비영리 언론 모델이 클릭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대안적 모델의 실험이 확산하는 이유는, 유스타쉬에 따르면, “의심할 여지 없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문제는 언론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저널리스트들을 클릭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비즈니스 모델에 맞서 언론에 대한 민주적 재전유(reappropriation)가 시급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 진민정 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09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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