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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생물의 천국 ‘갈라파고스’, 엘니뇨보다 무서운 진짜 적은[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6.09 16:35

[미디어스=이정희]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책 『총, 균, 쇠』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생물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 때문이다. 마치 메뚜기떼가 휩쓸고 지나간 곳의 작물이 초토화되듯이 인간이 활동 영역을 넓히며 토착 생물들이 사라져갔다. 

남아메리카 대륙 육지에서 1000km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 이 인간 문명에서 고립된, 용암퇴적물로 뒤덮인 섬에는 대륙에서 멸종된 동물들이 그 고유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1835년 갈라파고스에 들른 영국의 과학자 찰스 다윈이 이곳 생물들을 연구, 현대 문명의 기틀이 되는 <종의 기원>을 쓰게 되었다. 

EBS 다큐프라임 ‘진화와 공존의 섬 갈라파고스’ 편

1832년 에콰도르가 영유권을 선포한 갈라파고스 제도. 지구상에서 가장 수명이 길다고 알려진 갈라파고스 황소 거북의 이름을 딴 이곳은 가장 큰 이사벨라 섬을 비롯한 20여 개의 섬과 100여 개의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700여 종의 고등 식물 중 스칼레시아 숲 등 40%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갈라파고스 방울새, 바다 이구아나 등 대부분의 파충류와 텃새들 역시 갈라파고스 고유종들이다. 동일한 선조가 있다 하더라도 갈라파고스 환경에 따라 진화되었다. 이런 인류 고유의 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갈라파고스 제도의 97%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관광지가 되어가는 갈라파고스 

하지만 갈라파고스가 그 고유한 자연유산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것에 비례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에콰도르 해안으로부터 1000km나 떨어져 있지만 이제 갈라파고스에는 사람이 사는 곳에 있는 것이 다 있다. 

도로가 뚫리고 섬과 섬 사이에 비행기가 다니고 배가 운행된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을 것 같은 곳에도 도로가 뚫리고, 그곳을 질주하는 자전거는 이 섬의 최고참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이가 경험해보지 못한 '천적'이 되었다. 당연히 한 해 수천 마리가 로드킬로 희생되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진화와 공존의 섬 갈라파고스’ 편

1990년대 이후 이주민이 꾸준히 늘어 이제 주민들의 수만 약 3만 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관광업과 숙박업에 종사한다. 섬마다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이 경쟁적으로 지어지고 있다. 용암지대의 돌가루는 고급 건축자재로 돌변한다. 그 채취 작업은 국립공원 안에서 이루어진다. 바닷물이 고여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던 투명한 색의 염전은 마을의 폐수가 스며들어 붉게 변했다. 

갈라파고스 제도가 한 해 소화할 수 있는 관광객의 수는 12,000명 정도이다. 하지만 현재 갈라파고스 제도를 찾는 사람들은 연평균 22만 명에 이른다. 매년 7%씩 증가하는 중이다. 소화 가능한 능력의 20배, 이 관광객들 인해 갈라파고스 제도의 자연은 힘을 잃어 가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 선착장에 내리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건 동물들이다. 바다 이구아나, 바다사자 등은 사람이 다가와도 끄덕도 하지 않는다.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이 동물들은 사람을 위험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늦은 거리의 소음을 피해 벤치에서 잠을 청한 바다사자가 도시의 빛 공해에 몸을 뒤척인다. 

EBS 다큐프라임 ‘진화와 공존의 섬 갈라파고스’ 편

그저 예쁘다고 환호할 일이 아니다. 대부분 절벽에 둘러싸인 섬은 바다사자가 살기에 부적합하다. 그나마 평지 해변이 바다사자가 서식할 수 있는 곳인데 그곳은 사람이 점령했다. 그러니 함께 살아갈 수밖에. 

그러나 공존의 대가는 때론 참혹하다. 쓰레기를 장난감 삼아 노는 아기 바다사자들은 낚싯줄에 걸리고 올가미에 걸린다. 바다로 연결되는 하천이 늘어나며 폐수로 물고기가 떠오를 정도로 산소가 부족한 바다. 지난 5년 사이 사고 등 다양한 이유로 바다사자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바다사자와 함께 눈에 많이 띄는 것이 바다이구아나들이다. 이들은 먹을 것이 있는 마을로 향한다. 마을의 쓰레기더미를 뒤지면 굳이 힘들게 먹이를 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용암바위와 대조적인 색깔로 눈에 띄는, 붉은 게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갈라파고스 바다의 거친 파도가 그들의 시련이었지만 이젠 사람들의 발길을 피해 눈치껏 먹이를 구하는 것이 그들의 새로운 숙명이 되었다. 

자연의 힘을 잃어가는 갈라파고스 

EBS 다큐프라임 ‘진화와 공존의 섬 갈라파고스’ 편

갈라파고스 주민과 관광객이 증가하며 섬 밖의 식생들이 유입되었다. 갈라파고스 집집마다,  거리에서 쉽게 마주치는 오렌지 역시 외부 작물이다. 이렇게 유입된 외부 식물이 800여 종을 넘었다. 그리고 이런 외래종과 함께 기생파리, 개미 등이 들어왔다. 천적이 없는 땅에서 외래종은 공격적으로 번식했고 그들과 함께 갖은 감염원도 번식중이다. 

식생만이 아니다. 수풀이 우거진 광활한 목초지를 차지한 건 사람들을 위한 소들이다. 소 역시 갈라파고스 고유의 동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데리고 온 개,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구더기에 감염된 어린 새의 치사율 100%에서 보여지듯이 고유의 환경에서 천적이 없이 살아온 갈라파고스 생물들은 '감염'에 무방비하다. 잉카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천연두는 그저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니다. 자연의 힘을 잃어가는 갈라파고스, 다양한 생물의 천국이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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