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LG는 또 다시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5년 임기로 계약했던 박종훈 감독은 2년 만에 자진 사퇴했습니다. 하지만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질적인 약점인 내야진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은 서동욱이라는 신데렐라를 발견했습니다.

서동욱은 2003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KIA에 2차 1라운드 4순위로 지명되어 1억 8천만 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유망주였습니다. 박경수, 지석훈, 나주환과 함께 고교 무대를 평정한 내야수로 각광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서동욱은 KIA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3년 간 도합 100경기 남짓을 출장하는 데 그쳤고 2005년 말 3:3 트레이드를 통해 LG 유니폼으로 갈아입었습니다.

트레이드 이후 상무에서 군 복무를 시작해 2007년 스위치 히터로 전업한 서동욱은 2008년 LG에 복귀했으나 2010년까지 3년 동안 1군 무대에서 모두 50경기에도 출장하지 못하며 2군에 주로 머물렀습니다. 2008년 9월 25일 문학 SK전에서 좌우 타석 홈런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확실한 1군 선수로는 자리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서동욱은 2011 시즌 시범 경기부터 1군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정규 시즌 개막 이후에는 8개 구단 선수 중 가장 많은 포지션을 소화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자리잡았습니다. LG 내외야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속출했기 때문입니다. 이진영, 이택근, 이대형, 박경수, 오지환 등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이탈하자 서동욱은 1루수, 2루수, 3루수, 좌익수, 우익수를 종횡무진 소화했습니다. 투포수의 배터리와 유격수, 중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거친 것입니다.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기 위해 많은 수의 글러브와 미트를 휴대하는 서동욱의 큼지막한 가방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박종훈 감독은 ‘서동욱이 없었다면 선발 라인업을 구성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존재감을 인정했습니다. 7개의 실책을 범했지만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한 것에 비하면 많은 것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 8월 13일 잠실 롯데전 4회말 데뷔 첫 만루 홈런을 터뜨린 서동욱
출장 경기 수가 누적되면서 1군 경험이 쌓이자 서동욱은 타격에서도 자질을 발휘했습니다. 112경기에 출장해 303타수를 소화하며 타율 0.267 홈런 7개의 기록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은 것입니다. 올 시즌에도 적용될 것으로 알려진 신연봉제에 의하면 2011년 3,200만 원의 연봉을 받은 서동욱이 억대 연봉자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부족함이 없지는 않습니다.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오른쪽 타석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좌투수를 상대로 고작 0.097의 타율에 그쳤습니다. 우투수와 언더핸드 투수를 상대로 각각 0.305와 0.389의 고타율을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집니다. LG의 4강 탈락이 확정된 이후 서동욱은 팔꿈치 수술을 위해 시즌을 완주하지 못했습니다.

김기태 감독은 내년 시즌에는 멀티 포지션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원칙을 밝힌 바 있습니다. 따라서 서동욱은 2011 시즌과 같이 많은 포지션을 소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단 상황에 따라서는 1루수와 2루수를 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1루에는 SK에서 친정팀으로 돌아온 최동수와 2루에서는 김일경, 김태완과 경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년이면 서동욱은 프로 10년차가 되지만 1군 무대 풀타임은 2011 시즌이 처음이기에 실질적인 2년차 징크스를 맞이할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상대 배터리도 서동욱을 보다 의식하고 견제할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애당초 우타자였던 만큼 팔꿈치 수술 이후 재활에 성공한다면 타율이 더욱 향상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야 포지션도 고정된다면 보다 안정적인 수비력을 갖출 것으로 기대됩니다.

LG는 선수들의 개인 능력에 비해 팀 성적은 나오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팀워크가 모래알 같다는 혹평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군에서 다년 간 고생하고 1군에 올라와 많은 포지션을 소화한 서동욱과 같이 성실한 선수가 보다 많이 배출된다면 LG는 암흑기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팀에 꼭 필요했던 서동욱이야말로 2011년 LG의 숨은 MVP입니다.

2008년 LG의 숨은 MVP 김정민
2009년 LG의 숨은 MVP 김광수
2010년 LG의 숨은 MVP 이상열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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