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네이버 사원 A 씨의 극단적 선택으로 주요 IT업계의 부조리한 노동 관행이 드러나고 있다. 김유경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IT 기업에 수평적인 문화가 있다는 생각은 착시현상"이라며 IT업계는 급성장 과정에서 정상적인 조직문화가 갖춰지지 않아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IT 기업이 권위적인 조직문화에 잠식당하면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지난달 25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업무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메모가 발견됐다. 네이버 노조는 A 씨가 생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위계에 의한 괴롭힘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네이버 이사회는 최인혁 최고운영책임자와 가해자로 지목된 B 씨에게 직무 정지를 권고했다.

네이버, 넥슨 사옥이 위치해 있는 판교 테크노벨리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네이버는 A 씨 사망 이틀 뒤 회사 인트라넷 ‘커넥트’에서 A 씨의 계정을 삭제했다. ‘커넥트’ 계정에는 A 씨 출입기록, 업무지시, 이메일 등이 담겨있다. 네이버 노조는 “A 씨와 관련된 사내 기록을 보존하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또한 네이버 노조는 7일 네이버 사옥 앞에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카카오·넥슨의 부조리한 관행도 드러났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4월 카카오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등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일부 직원에게 주 52시간 이상 근무를 시키고, 임산부에게 시간 외 근무를 지시했다. 또한 카카오는 일부 직원과 퇴직자에게 연장근로수당, 연차유급휴가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넥슨은 업무 재배치를 기다리고 있는 직원을 대기발령하고, 임금 25%를 삭감했다.

이와 관련해 김유경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4일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보통 IT 기업에 수평적인 문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착시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김 노무사는 “IT 기업은 20년 사이 급성장했다”며 “지속적으로 성장해 정상적인 기업문화를 갖추는 과정은 생략됐고 성과 위주의 사업이 이뤄졌다. 그런 상황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김유경 노무사는 “IT업계는 굉장히 좁아서 개인 평판에 민감하다”며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한 것이 알려지면 이직을 하거나 경력을 쌓는 데 치명적이다.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번 사망사고를 통해 터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노무사는 “문제가 부각됐을 때 실질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행정당국 역시 조치만 내리는 게 아니라, 사후 점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4일 사설 <IT업계 조직문화 위기 보여주는 ‘직원 감시’ 의혹>에서 “일부 IT 기업들이 직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며 “사실이라면 도를 넘은 직원 감시일 뿐 아니라 불법성까지 따져봐야 하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IT 기업 내부고발 관련 게시글이 삭제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IT 기업이 블라인드를 실시간 모니터링해 자사에 비판적인 게시글이 올라오면 삭제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블라인드는 특정 게시글에 3번 이상 신고가 들어오면 게시글을 자동으로 삭제한다. 한겨레는 “이런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에 직원들의 강한 불신을 사는 조직문화가 있지 않은지 심각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상징하던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조직문화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던 직원이 숨지는 비극까지 벌어졌다”며 “창업 초기의 혁신적인 조직문화가 수직적이고 폐쇄적으로 바뀐 탓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고 했다. 한겨레는 “두 기업의 위상을 생각하면 IT업계 전반의 문제로 봐야 한다”며 “IT 기업이 권위적인 조직문화에 잠식당하면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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