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강훈과 윤지혜가 키스를 했다. 모든 조건을 갖춘 서준석(조동혁)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윤지혜(최정원)는 자신을 거의 인간취급도 해주지 않는 이강훈(신하균)을 좋아하고 있는 자신을 속이지 못했다. 그런데 벌써 풍선껌키스로 이름까지 붙여진 이강훈과 윤지혜의 전격 키스씬을 본격 러브라인의 출발지점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니 키스씬에 임하는 이강훈 자체가 로맨스에 몰두하는 자세라고 보기에는 의심 가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충격적이고도 도발적인 윤지혜의 고백과 그리고 이어진 기습키스가 모든 것을 잃어가는 이강훈에게 도피처가 되어줄 수는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또한 다음 회 예고가 이어지면서 동화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얼굴로 풍선껌을 불던 최정원에게 이 키스가 아픔의 시작일 것 같은 불안감도 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재벌2세녀 장유진(김수현)의 존재 때문이다. 물론 장유진에게도 이강훈은 위험한 남자다.

이강훈이 위험한 이유는 지나치게 자존심이 세다는 것이다. 의사로서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하지만 그것을 돈과 명예로 바꾸고자 하는 것보다는 그저 자기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보상심리에 사로잡힌 인물로 보인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자신을 이용하라는 재벌2세녀 장유진의 솔깃한 제안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외골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은 동기인 서준석이 미국대학으로 유학을 가고, 이강훈은 국내에 남아 천하대 조교수가 된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였다.

이강훈에게 너무도 절실한 목표가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돌파구로 타 대학 조교수 임용에 지원을 했지만 그조차도 여의치는 않을 상황이다. 어쩌면 서준석에 대한 복수의 하나로 윤지혜를 빼앗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강훈도 윤지혜에 대한 마음이 진심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강훈이 갖고자 했던 모든 것이자 유일한 것인 조교수의 꿈이 사라지면서 이 남자에게 가슴을 열어 연애에 빠질 여유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풍선껌 키스. 불다가 입에서 놓치면 훅 꺼져버리는 것이 풍선이다. 껌은 더하다 조금만 크게 불면 윤지혜가 그랬듯이 터져버리고 만다. 사탕도 아니고, 커피 크림도 아닌 풍선껌을 오브제가 된 배경에는 이 키스가 그저 달콤해질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을 읽게 된다. 게다가 윤지혜의 고백을 듣고도 얼굴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았던 이강훈이기에 그 불안은 더욱 커지게 된다.

한편, 사탕키스 이후 거품키스까지 드라마 키스신들이 입 안에 것을 주고받거나 뭘 묻히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이 풍선껌 키스는 로맨틱하다고 하기에는 이강훈의 사전 동작들이 매우 특이하다. 이강훈을 좋아하는 자기 자신이 너무도 어이없다는 전형적인 사랑밖에 난 몰라 식의 고백을 털어놓고 불안에 떠는 윤지혜에게 이강훈은 평소의 표정 그대로 윤지혜에게 뭔가 비난이라도 할 것처럼 손을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키스를 할 거라면 그까짓 껌조각이 붙어있건 말건 바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 손으로 윤지혜 입가에 뭍은 껌을 떼어내고는 결국 키스를 하고 말았다. 물론 그것이 결벽증적인 행동은 아니다. 전혀 고백 따위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듯 이강훈다운 태도를 보이다가 느닷없는 키스의 반전을 보였다. 보기에는 건조한 동작이었지만 파스타의 붕어키스를 언뜻 떠올리게도 하는 망설임과 설렘이 두 사람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어쨌든 키스의 독창성을 위해 작가와 감독들이 참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브레인의 이 풍선껌 키스는 뭐 이런 키스가 다 있나 싶은 놀라움을 주었다. 그뿐 아니라 이 키스가 어쩐지 불행을 예고하는 것 아닌가 하는 슬픈 예감도 갖게 하기에 보통 키스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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