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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벌레 고독, 사(史)[주관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이야기]
김은희 | 승인 2021.05.20 07:59

[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10년 전까지 이모는 S 여대 근처에서 하숙을 쳤다.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모의 하숙집에 살았다. S 여대를 다니는 여대생도 있었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도 있었고, 지방에서 올라온 회사원도 있었고, 일용직 노동자도 있었고, 취업 준비생도 있었다. 이모의 하숙집에 사는 사람들은 하숙비가 다른 하숙집보다 싸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하며 살았다. 

대학교 근방을 중심으로 원룸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대학교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깨끗하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원룸을 선호했다. 이모 하숙집은 오래된 건물로 원룸에 경쟁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일층은 이모가 사는 주인집이며 이층과 삼층이 복도를 중심으로 하숙방이 양옆으로 있었다. 이모의 하숙집 이층에 책벌레가 들어왔다. 

몇 달째 방이 비어서 골치 아파하고 있을 때였다. 멀끔하게 생긴 30대 후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집을 보겠다며 찾아왔다. 대학 강사라고 했다. 가장 큰 방이 마음에 든다며 계약을 하고 갔다. 첫 달 하숙비를 내고 바로 짐을 들였다. 이삿짐의 절반이 책이었다. 이사를 하고 며칠 지나고부터 두문불출하며 책만 읽었다. 그래서 그를 책벌레라고 불렀다.

이모들은 봄이 되면 나들이를 오듯 어머니 집으로 먹을 것을 들고 모였다. 놀러 온 이모가 하숙생에 대해 말하다가 책벌레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집에 이상한 사람이 하숙 들어왔어.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책벌레는 프랑스 파리 8대학 중 한 곳에서 문학-전공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 추정-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버지는 하우스 농사를 지어 학비를 댔는데 남은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책과 학위증 한 장이 다였다.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왔지만 강의 자리는 얻지 못했다. 책을 싸서 아버지가 있는 시골로 내려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책벌레가 서울 안의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줄 알고 있었다. 

책벌레는 석 달째 하숙비를 내지 않았고 무전 투숙하고 있었다. 책벌레는 이모가 잠든 시간과 없는 시간에만 일층으로 내려왔다. 대부분 시간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방 안에서 책만 보았다. 대체로 자정을 전후로 살금살금 내려와서 가지고 온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조금 꺼내서 이층으로 다시 살금살금 올라갔다. 책벌레에 대해 알아보니 근방의 하숙집을 이렇게 떠돈 지 좀 되었다고 했다. 여러 집을 떠돌아 소문을 아직 모르는 이모집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석 달이 지났다. 책벌레는 여전히 이층 제일 큰 방에서 돈 한 푼 내지 않고 살았다.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지 않았고, 외출한 척 숨을 죽이고 있었다. 문에 메모를 붙여 놓아도 답이 없었다. 결국 이모는 짐을 빼야겠다, 마음먹고 날짜를 명시했다. 이모의 결정은 너무나 당연하고 오히려 좀 늦은 감도 있었다. 

짐을 빼기로 한 날, 안으로 잠겨 있던 방문이 쉽게 열렸다. 누울 자리만 빼고 책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이삿짐센터에서 잠깐 일을 했다는 이모의 이웃 친구는 빠르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방에서 책이 빠져나갔다. 이후 책벌레가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듣지 못했다. 

책벌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남 이야기 같지 않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문학을 공부했지만 졸업할 때 남은 건 졸업장과 학위밖에 없었다. 십 년을 넘게 공부한 문학이란 학문은 사회에 나와보니 마땅히 써먹을 데도 없었고, 전공을 살려 취업할 곳도 마땅히 없었다. 등단하여 시든, 소설이든, 희곡이든 쓰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등단 자체가 바늘구멍을 낙타가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니 더 현실적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스스로 고독하게 만들지 말라고 하였지만, 방에 앉아 있는 시간은 고독하고, 죄를 짓고 유배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책벌레 이야기가 아팠다. 그가 잘 풀렸다면 대학교 강사 자리를 얻었을 것이고, 아님 학원 강사가 되었을 것이고 이도 아니면 정말 유배의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외롭게 쓸쓸하게 고립된 책벌레에게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면, 관계망을 형성하고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생각한다. 책벌레가 어떻게 되었는지 듣지 못했으니, 그가 분명 행복한 길을 찾았을 것이라고.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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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postboat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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