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게 유명해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그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정치적인 생명력을 만들어주는 호재이죠. 어떻게든 언론 인터뷰 하나라도 나오려고 애를 쓰고, 끊임없이 각종 행사에 얼굴을 내비치는 것, 각종 매체를 향해 여러 사회적 이슈들에 다양한 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죠. 인지도가 곧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인은 그 생존 전략은 연예인과 분명 많은 부분 닮아 있어요.

강용석 현재까지 국회의원이 개그콘서트의 최효종을 고소하겠다고 한 것은 자기 나름의 문제 해결 방식이었을 겁니다.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에 따른 의원직 상실은 물론, 정치 생명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꼼수였었죠. 스스로의 존재감을 증명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그것이 극히 부정적인 것이라고 해도) 다시 한 번 확산시키는 것과 함께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 해결을 위한 방편을 마련하려 한 것이죠. 자신의 발언이 집단적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면, 최효종의 개그 역시도 국회의원 전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아주 간단한 논리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이 사건 하나로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이 그를 주목하고 이 사건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만 보면 무척이나 효과적인 언론플레이었던 셈이에요.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그가 노린 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것을 위해 무시하거나 모른 척 했던 가치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다른 어떠한 것도 다 상관없는 것처럼 여기는 뻔뻔함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것이죠. 그야말로 나만 정당하고, 내가 살아야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강의원 자신이 올린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듯이 같이 시청했던 아들의 입에서 그래도 아빠는 성희롱을 한 거지 성추행은 아니었다는 어처구니없는 편들기 말을 했다는 것만 봐도, 자신이 공격과 압박을 해놓고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뻔뻔하기 그지없어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죠.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법을 통해 그 불합리함을 소명하고,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해도 도통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만 같고, 그래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음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법의 심판이 준엄하다고 해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지혜를 모아서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고, 이런 억울함의 호소는 보다 나은 방식으로의 변화를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아주 관대하게 받아들이면서, 그의 주장대로 성추행 관련 발언이 정말 억울한 것이었다고 칩시다. 집단적 명예훼손이란 법리적 해석이 너무 광범위하고 불합리한 것이라고 해봅시다. 그렇다고 하면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대중문화가 취해야만 하는 표현의 범위를 축소시킬 우려가 너무나도 큰 압박을 고소라는 형태로 공공연하고 시행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요? 그 문제를 끊임없이 재론하면서 한 개인에게 주었던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요? 정치적 영역에 대해 끊임없이 감시하고 때로는 풍자하며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비판의 자유는 무슨 권리로 공격한 것인가요?

그래놓고는 아나운서협회가 자신에게 청구한 위자료 소송이 기각되었으니, 자신도 최효종에게 했던 고소를 취하할 생각이라도 당당하게 말했다는군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나름 훌륭한 언론플레이었음을 자화자찬하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소요의 비용, 최효종 개인과 해당 프로그램에게 가했던 심리적 폭력에 대해선 그냥 안타까운 일, 개인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게 전부입니다. 세상에 뭐 이런 사람이 세금을 국비로 받아먹으면서 국회의원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거죠?

특정 지역을 싸잡아서 같은 수준으로 비하하며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이번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요. 마포구 주민 여러분, 사람을 잘 가려서, 제대로 뽑으라는 말입니다. 한나라당 분들, 공천할 사람이 그리 없었나요? 이미 임기도 다 끝이 난 셈이고, 어차피 재선의 희망은 물론 공천해줄 정당도 찾기 힘드니 이런 소동은 자기를 보호할 수만 있다면 남이 뭐라 하든 맘대로 하는 광란의 자기만족극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사람은 그렇게 행동하며 그렇게 살겠죠. 하지만 이런 사상 최악의 언론플레이를 만들어 준 것은 그에게 국회의원이란 배지를 달아주고 그 발언에 무게를 실어준 우리, 국민입니다. 손가락질을 한 우리의 손으로 그를 뽑아주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우린 제2, 제3의 강용석을 만나게 될 겁니다. 설마 이런 사람이 또 나타나겠냐구요? 우린 이미 지난 4년여 동안 충분히 보아왔잖아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사람들이 윗분들 중에선 너무나도 많아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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