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도 욕을 먹고, 어떤 말을 해도 논란이 되는 시간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과 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꿈보다 해석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매몰찬 손가락질하는 지옥 같은 시간. 그런 처지가 되어 버린 이유도 여러 가지이고, 그 정도도 천차만별이지만 한번 빠지면 쉽사리 빠져 나오기 힘든 안티와 비호감의 시기가 그것이죠. 1박2일의 가장 커다란 구멍이자 눈엣가시처럼 취급받던, 김종민 역시도 그런 기나긴 침체기를 보냈었습니다.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뭘 해도 빵빵 터졌던 다른 멤버와는 확연하게 다른, 그런 일방적인 비난과 야유를 받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그의 부진은 환경의 탓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안 좋은 요소들이 한꺼번에 겹친 결과였죠. 2년의 공백기동안 완전히 변해버린 촬영방식과 기법의 발전. 그 당시만 해도 존속 자체도 불투명했던 위태위태한 위치에서 국민예능으로 불리며 일요일 저녁 예능 전쟁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된 위상의 변화. 군복무 이전까지 담당했던 에이스 역할과 그렇기에 만만치 않았던 시청자들의 기대 수위. 이미 완벽한 합을 이루고 있는 멤버들 틈새로 끼어들어가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야만 했던 부담감. 그나마 좀 익숙해질 만하면 하차했던 다른 멤버들과 구성의 변화. 차분하게 적응하고 자리잡기에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조건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캐릭터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못했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 맺기 역시도 지지부진하게 머물러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번 이런 침체에 빠지다보니 행동은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어떤 시도도 억지스러운 무리수가 되거나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이 되기 일쑤였죠. 이윽고 방송이 끝날 때마다 그의 하차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방송 게시판과 관련 기사들을 도배하기 시작했고, 그의 부진은 다른 예능 프로그램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군 복부 이후 연예인의 예능 복귀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예시처럼 언급되었습니다. 이대로 김종민의 예능인으로서의 생명력은 그냥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죠.
구도의 변화 덕이 큽니다. 강호동의 하차 이후 재정비된 5인 체제에서 김종민은 집단 MC 체제에서 꼭 한 명은 있어야 할 역할. 당하고 놀림 받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착하고 순박한 바보 형 동생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맡아주고 있습니다. 무한도전의 정준하, 남자의 자격의 이윤석, 런닝맨의 지석진-이광수 콤비처럼 무언가 이야기의 매듭이 풀리지 않을 때 자신을 비하하거나 희생하면서 숨통을 틔워주는 포지션을 맡고 있는 것이죠. 더듬거리는 말, 상상하지 못하는 엉뚱함, 무식함과 똑똑함을 넘나드는 모호한 재미. 그러면서도 그 안에 품고 있는 선의와 배려 때문에 놀리기는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착한 바보.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김종민만의 매력과 성품이 이제야 드러나고 있어요.
아쉽습니다. 정말 아쉽습니다. 이런 김종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무대는 이제 1박2일밖에는 남아있지 않아요. 그뿐만 아닙니다. 겨우 껍질을 벗은 순둥이 엄태웅의 활약도, 막내 1인자라는 전무후무한 위상에 도전하는 이승기의 성장도, 정리와 협상의 장점을 가다듬으려는 이수근의 진화, 점점 날카로워지는 은지원의 재치도 모두가 아쉽습니다. 김종민은 이제야 박수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오랜 시간동안 그를 향해 응원하고,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덜어주고 싶어요. 1박2일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좀처럼 찾기 어렵지만, 계속 이어져야만 되는 이유는 쉬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종민의 놀라운, 흐뭇한 변신과 발전은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