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의 이강훈(신하균)은 중히 여기는 우리 정서에 대단히 부적절한 주인공 캐릭터다. 재벌2세에다가 마음까지 착해야 한국 드라마의 주인공인데 이강훈은 가난한 집 아들에다가 인술은 안중에도 없는 출세지향의 속물근성 강한 인물이다. 드라마로 봐서 그나마 봐줄 만하지 현실에서 가족이 아파 병원에 가서 만났더라면 욕부터 나왔을지도 모를 의사가 분명하다. 자신의 출세줄을 잡고 있는 고재학 과장이라면 간이라도 빼줄 듯하지만 그 외 인물에게는 싸가지도 이런 싸가지가 따로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볼수록 빠져들고 그의 처지에 공감하게 된다. 특히 지난 4회까지는 이강훈의 출세지향적 외향을 주로 그렸지만 5회 들어 그가 왜 엄마에게 차갑게 대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말해주면서 더 애잔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이강훈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시청자가 경계를 풀게 해준 것은 그에게서 풍기는 강한 루저의 느낌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 최고 의과대학의 수재에게 루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집안 좋은 동기 서준석(조동혁)과의 경쟁에서 적어도 실력만은 앞선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상황에서 조교수 자리를 빼앗기는 결정타를 맞고 만다. 둘 사이에 서준석은 외국 유학을 가기로 했던 약속을 깬 결과이기에 이강훈이 받은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조교수 탈락으로 독이 올라 있는 상황에 엄마(송옥숙)의 빚쟁이가 병원에 찾아와 난리를 치는 바람에 망신살까지 끼게 됐으니 자의식 강한 이강훈으로서는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그렇지만 우리 정서에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을 좋게 보기는 어렵다. 이강훈은 파출부 일을 다니며 생활하는 홀어머니에게 대단히 쌀쌀맞고 못된 아들이다. 그런데 거기에 사연이 있었다. 자세히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강훈이 어릴 적 엄마는 집을 나간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엄마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 이강훈이 갖는 감정은 상처와 분노가 앞서는 것은 다소 전형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맨발에 낡은 구두를 끌고 돌아가는 엄마의 모습에 아파하는 모습에서 강훈의 감정은 상처와 분노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못된 아들이자 기피하고 싶은 이 의사에 대한 오해가 살짝 풀리고 연민이 갈 무렵 이강훈에게 더 큰 불행이 찾아왔다. 누구에게 지고는 못사는 성격의 이강훈이기에 서준석에게 앙심을 품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게다가 도덕적인 인품을 갖지 못한 이강훈은 새로 조교수에 임용된 서준석의 첫 번째 학회 발표에서 공개적인 망신을 주는 상당히 부적절한 보복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그 일로 인해 김상철(정진영) 교수가 이강훈을 서준석과 함께 조교수로 특별임용하려던 것이 무산된 것이다.

헌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강훈이 서준석을 일부러 골탕먹이기 위해 연구를 한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논문 프린트가 남아있었고, 그것을 서준석이 먼저 찾게 된다면 이강훈은 의학계에서 매장될 정도의 위기를 맞게 될 상황이다. 본래 불행은 몰려다니는 법이다. 조교수에 탈락하였고 아직은 이강훈이 확신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고재학 과장으로부터도 이미 배신당한 상태다. 이강훈에게 갑자기 밀어닥친 불행의 홍수는 한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고도 남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황이다.

이제는 이강훈의 인간됨됨이를 따져서 뭘 어쩔 상황이 아니다. 소위 일등 신랑감인 ‘사’자 들어가는 직업의 대표인 의사 이강훈이 불쌍해 보이게 됐다.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단단히 묶여 있는 한국사회에서 소위 빽 없는 사람들은 사실이건 아니건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강훈 역시도 능력은 뛰어나지만 결국 배경의 희생자가 된 것이니 힘없고 빽 없는 우리들은 이강훈 뒤로 줄을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강훈의 비뚤어진 복수심마저도 은근히 성공하기를 바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코 바람직한 의사라고는 할 수 없는 이 부도덕한 인물이지만 결국 여기저기에 치이고 당하는 것을 보면서 오장육부에서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보통은 밉상이어야 할 이강훈이 자꾸만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것은 이강훈이라는 인물이 겪는 일들이 무늬만 다를 뿐 소시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1%의 개미지옥에 빠진 99%라는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