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2021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JTBC 다큐멘터리 <백 투 더 북스> 4부는 우리나라의 서점을 다룬다. 책을 산다고 하면 대형서점에 가거나 인터넷 주문이 예삿일이 된 시절, <백 투 더 북스>는 전국 곳곳의 작은 서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지난 3년 사이 독립서점이 3배나 증가했다. 개성 있는 독립서점들이 속속 생겨나며,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찾아 누리는 20~30대를 중심으로 독립서점은 인기 있는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독립서점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서점들도 새로운 트렌드에 맞춰 변모하고 있다. JTBC <백 투 더 북스> 4부 ‘서점, 그 이상의 서점’은 바로 이런 변화의 물결에 주목한다.

작은 서점들의 약진

JTBC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4회 한국편 ‘서점, 그 이상의 서점’

서점이 변화하고 있다. 양평동의 작은 책방 '프레센트.14'에 들어서면 책과 함께 좋은 향기가 손님을 맞는다. 그런데 이곳 책방의 책들은 독특하게도 포장이 되어있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지만 막상 무슨 책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독자들을 위해 서점 주인이 직접 읽고 뽑은 키워드만으로 정리된 책들이다.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책만이 아니다. 책과 어울리는 '향기'도 판다. 조향사 자격증을 가진 서점주가 책을 사면 거기에 어울리는 향수를 조합해 준다. 독자가 책에 맞는 향을 조합할 수도 있다.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서점도 있다. '오월의 푸른 하늘'이 자리한 곳은 서울에서 떨어진 이천이다. 시골 마을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한옥, 심지어 이곳에서 책을 보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

JTBC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4회 한국편 ‘서점, 그 이상의 서점’

일본에서 외롭게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책에서 위로를 받았던 서점주는 책을 읽어주시던 외할아버지의 추억을 살리기 위해 고향 마을에 책방을 열었다. 꼭 책을 사야 한다기보다는 나들이, 힐링을 위한 공간,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서점을 이곳 시골 마을에 연 것이다.

서점을 넘어 문화예술공간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순화동천'도 있다. 서울 중구 순화동 아파트 사이에 자리잡은 '순화동천'. 이곳은 한 출판사가 지난 40년 동안 출간했던 책을 모아놓은 박물관 같은 공간이다. 하지만 '순화동천'은 책을 전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주민들과 함께 인문학 강좌를 열기도 하고 공연 예술을 관람하며, 미술 전시 등 다양한 예술문화 행사를 통해 서점의 지평을 열어가는 중이다.

전통의 모색

JTBC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4회 한국편 ‘서점, 그 이상의 서점’

서점의 역사는 깊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도 피난지 부산으로 내려간 사람들은 책을 구했다. 노점에 책을 늘어놓고 팔던 것이 오늘날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 전통의 시작이다. 어려운 형편에 이곳에서 헌책을 사서 보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주역이 되었다고 헌책방 주인은 자부심을 내보인다.

책을 사서 공부하던 그 젊은이들이 발전의 주역에서 은퇴하게 되는 시절의 흐름 속에 보수동 헌책방도 함께 나이가 들어갔다. 찾는 발걸음도 뜸해졌다. 이에 책방 골목은 책을 파는 것을 넘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을 모색한다. 헌책방을 배경으로 흑백사진을 찍어주며 젊은이들의 레트로 감성에 호응하고자 한다.

1953년에 개업한 서울 혜화동의 '동양서림' 역시 변화하는 중이다. 옛 서점의 특색인 빼곡하게 채워진 공간을 책을 읽을 수 있는, 한결 여유로운 공간으로 리뉴얼했다. 또한 창고로 쓰던 2층을 고쳐서 특색있는 시집을 전시하는 독립서점 스타일로 변모시켰다. 아래층 구 서점과 위층 독립서점의 콜라보가 65년 전통의 동양서림이 선택한 방식이다. 한때는 사람들이 북적이던 혜화동 거리, 상권 변화와 함께 뜸해진 사람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 작가와의 만남, 낭독회, 독서 모임 등을 준비 중이다. 책을 사러가 아니라, 책과 함께하는 공간으로의 새로운 지향이다.

JTBC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4회 한국편 ‘서점, 그 이상의 서점’

그런 의미에서 '동아서점'의 변모는 성공적이다. 할아버지가 열고 아버지가 대를 이어 꾸려가던 서점은 2000년대 이후 손님이 줄어 영업점의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서점을 이어받은 아들과 며느리는 1956년 문을 열어 속초를 찾던 소설가와 시인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서점을 관광지의 ‘감성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도시 생활에 지쳐 바다를 찾아온 사람들이 홀로 찾아와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 카페와 같은 분위기, 그곳을 채운 손글씨와 그림의 감성적 정서가 오래된 서점이 아니라 감성 공간으로 '동아서점'을 트렌드로 만들어냈다.

진주 사람이라면 이곳을 거쳐 가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는 '진주문고'. 한 명의 아이를 기르기 위해 필요한 마을의 역할을 자처한 ‘전주문고’는 그 시간만큼의 10만 회원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아이를 맡기고 장도 보고 마실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서점보다는 ‘도서관'이라는 인식을 가능케 하는 자유로운 공간. 거기에 신문이나 뉴스 채널처럼 '이슈'에 맞춘 직원들의 신간 추천, 무엇보다 한밤 서점 옥상에서 열리는 낭독회처럼 삭막해져가는 지역의 새로운 문화적 모색에 앞장선다.

JTBC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4회 한국편 ‘서점, 그 이상의 서점’

이미 청소년 인문학 서점으로 명성이 자자한 부산의 '인디고 서원'은 그 인문학적 전통을 청소년 인문학 강의와 청소년들이 주역이 되어 만들어내는 잡지 '인디고잉'을 통해 확산시켰다.

'모든 책을 팔지 못한다면 좋은 책을 선별하여 팔겠다.' 2004년 정신적 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책의 정원을 만들고자 했던 ‘인디고 서원’ 대표의 말이다. 많은 작은 서점들의 취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독립서점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하루에 책 한 권을 팔지도 못하는 날이 있다는 서점주의 하소연도 새롭지 않다. 뜻을 가지고 문을 열었던 지역의 서점들이 문을 닫는 소식도 전해진다.

대전 수성구의 독립서점 '도시여행자'도 다르지 않은 운명에 처했다. 아날로그 감성의 대흥동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서점. 하지만 지역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자 더불어 임대료가 올라갔다. 그곳을 문화적 공간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던 젊은 점주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시여행자'라는 독립서점의 상징성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제 ‘도시여행자’를 이끌었던 점주는 두 번째 오픈을 준비한다. 시민들이 그들과 함께한다. 시민들과 함께 공간을 소유하고, 그 공간을 책을 파는 것을 넘어 문학 모임, 글쓰기 등 지적인 플랫폼으로 활용해 나갈 예정이다.

JTBC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 4회 한국편 ‘서점, 그 이상의 서점’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는 독립서점들, 그리고 기존 서점들의 변화는 우리 사회 문화적 감성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다. 종이로 된 책을 읽는 게 낯설어지는 세상에서 여전히 문자 문화의 선봉대는 각개 약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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