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 2011-12 시즌이 개막한 지도 벌써 100일 가량 지났습니다. 이번 시즌 한국인 유럽파 선수는 지동원, 박주영 등이 가세해 어느 때보다 훨씬 많아졌고 그 때문에 기대감도 남달랐습니다. 하지만 현재 팀내 입지가 확고한 선수는 스코틀랜드 셀틱의 기성용, 스위스 FC 바젤의 박주호 정도만 거론될 뿐입니다. 나머지 선수들 가운데서는 잉글랜드 맨유의 박지성, 독일 함부르크 SV의 손흥민처럼 꾸준하게 교체 출전이나 로테이션 등을 통해 실전 감각을 키우고 있는 선수도 있는 반면 잉글랜드 아스널 박주영처럼 아예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선수도 있습니다.

가장 성과가 좋았던 선수, 기성용 - 박지성, 박주호, 손흥민도 무난

▲ 셀틱 기성용 ⓒ연합뉴스
개막 100일 동안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은 선수는 기성용입니다. 기성용은 지금까지 5골-5도움을 기록하며 지난해 자신이 기록한 4골-5도움 기록을 넘어선 성적을 10월에 일찌감치 깼습니다. 좋은 활약 덕에 베스트11에도 고정으로 남았고, 특히 닐 레넌 셀틱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선수로 기성용을 거론하고 있을 정도로 입지가 올라갔습니다. 그의 장기인 날카로운 킥과 패스 능력이 더 올라가기도 했지만 수비에서도 압박 능력이 좋아지면서 셀틱 중원의 핵심 선수로 완전히 떠올랐습니다. 최근 체력, 건강 문제로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회복만 한다면 충분히 올 시즌 10골-10도움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깨는 것도 도전해 봐도 좋을 정도로 기량이 많이 물올랐다는 평가입니다.

박지성도 큰 부상 없이 꾸준하게 출전 기회를 얻으면서 존재감을 알리고 있습니다. 대표팀 은퇴로 소속팀에만 몰입할 수 있게 된 박지성은 왕성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공격력을 앞세워 12경기 1골-4도움을 기록하고 무난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더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 팀 리빌딩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꾸준하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박지성의 활약에 더 기대를 걸어도 좋을 듯합니다. 또한 스위스 FC 바젤의 박주호의 경우에도 베스트11에 꾸준하게 출전 기회를 잡고 있으며,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도 주전 선수로 경험을 쌓는 등 매경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어 앞으로 활약도 더 기대해 볼 만합니다.

손흥민의 경우 한동안 국가대표 차출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비교적 무난한 성적을 내며 '슈퍼소닉'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묵묵하게 소속팀에서 제 몫을 다하며 13경기 출전 3골 1도움의 준수한 성적을 냈습니다. 그밖에 정조국은 프랑스리그 낭시로 이적해 최근 9경기 연속 출장하고 있을 정도로 서서히 입지를 넓혀가고 있으며, 네덜란드리그에 극적으로 살아남은 흐로닝언의 석현준 역시 10월 한 달 동안 3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존재감을 높여나갔습니다. 이들은 그나마 시즌 출발을 비교적 잘 보낸 선수들입니다.

존재감 없어진 박주영... 구자철, 차두리 등도 위태

반면 그보다 다소 떨어진 모습을 보인 선수들이 있습니다. 새 팀에 자리를 튼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새 캡틴박' 박주영입니다. 그는 프랑스리그 AS모나코에서 뛰다 극적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아스널로 이적해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8월 입성 이후 아직 단 한 경기도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칼링컵 2경기, 챔피언스리그 1경기에 나섰고, 칼링컵에서 데뷔골을 넣은 게 다행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주전 공격수 판 페르시의 활약 때문에 박주영이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박주영 스스로 뭔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앞으로도 쉽게 출전 기회를 얻기는 당분간 어려워 보입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2년차에 접어든 구자철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즌 초반 내내 구자철은 이렇다 할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그 때문에 실전 감각도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지난 1월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위용은 온데간데없었고 갖고 있던 장점 뿐 아니라 자신감마저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현지 언론으로부터 '펠릭스 마가트 감독의 방출 대상자에 구자철이 있다'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입지가 좁아졌습니다. 그나마 최근 2경기 연속 선발 출장해 볼프스부르크의 변화의 중심에 서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입지가 탄탄하다고 보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차미네이터' 차두리는 부상 때문에 이렇다 할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케이스입니다. 허벅지 뒷근육 햄스트링으로 9월 이후 4주 동안 출전하지 못했고 최근에도 그 여파로 제대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자신의 SNS를 통해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심경을 토로하면서 대표팀 은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올 시즌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선덜랜드의 지동원은 아직 적응 과정에 있고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선수'라며 신뢰를 얻고 있기는 하지만 출전 기회가 예상했던 것보다 적어 실전 감각이 떨어져 있는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프랑스 발랑시엔의 남태희 역시 출전 기회는 얻고 있어도 교체 출전하거나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던 초반이었습니다.

▲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경기에서 박주영이 후반 선취골을 넣고 구자철과 환호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범한 입지 '무조건 기회를 잡아라'

일단 유럽파들의 전체적인 '개막 100일' 입지는 썩 나쁘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던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다만 출전 기회가 꾸준하게 이어진 선수들이 많지 않아 이것이 선수 개인의 기량, 나아가 대표팀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는 것이 잇달아 확인되고 있습니다. 최근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인 유럽파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이유도 바로 이러한 입지 축소로 인한 출전 기회 저하가 실전 감각 저하로 이어지면서 전체적인 경기력에 영향을 주고, 실제로 뚜렷하게 이런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유럽파들의 앞으로 2011-12 시즌 전망이 불투명한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시즌 전체의 1/3만 소화한 상황입니다. 또한 한국 선수가 소속된 대부분의 팀이 현재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회는 남아있습니다. 최근 구자철이 꾸준하게 선발 투입되고 있고, 지동원이나 박주영 역시 감독들이 여전히 중요한 선수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감독이 주는 기회, 변화의 틀 속에서 얼마만큼 잘 살려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나올지 모르는 기회를 얼마나 잘 잡느냐가 한 시즌 농사를 잘 짓느냐, 못 짓느냐의 성패를 좌우할 것입니다.

'부상 조심' 자기 관리는 더 철저하게

체력적인 문제, 부상 등을 조심할 필요도 있습니다. 박지성, 이청용 등의 사례를 통해 이미 이 부분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오히려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만큼 결코 쉬이 넘길 수는 없습니다. 특히 입지가 탄탄하지 못한 선수들 입장에서는 체력적인 문제마저 어려움을 겪을 경우, 팀 전력에서 아예 제외되는 불운을 겪고 남은 시즌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어느 해보다 몸 관리가 중요한 한 시즌이 된 유럽파가 됐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본격적인 시즌 중반에 접어드는 12월-1월 사이에 각 선수들은 아주 중요한 시기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순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리그, 컵대회, 챔피언스리그 등 각종 경기들이 줄지어 서 있는 이 시기를 잘 보내 최대한 좋은 자리에 올라서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런 시기에 자기 관리를 잘 하고 기회를 얻어 좋은 활약을 펼치는 자만이 마지막까지 살아남고 팀내 주축 선수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표팀 내 부진한 모습으로 어느 때보다 아쉬운 면이 한둘이 아니었던 유럽파 한국 선수들. 그래도 아직 시즌은 2/3나 남아 있습니다. 반전의 기회를 잡고 거침없이 올라서는 유럽파들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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