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가수다 10라운드 1차 경연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인순이 때문이다. 인순이는 김돈규의 나만의 슬픔을 선택했다. 빗소리를 음향소스가 아니라 무대 한쪽에서 직접 물을 떨어뜨려 효과를 내고, 반주는 현악사중주와 피아노가 맡았다. 보통의 가요 무대에서는 보기 힘든 구성이다. 인터뷰를 통해서 인순이는 언플러그드 어쿠스틱 해석을 보이고 싶었다고는 하지만 막상 음악은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된 그런 어쿠스틱이 아니었다.

그럼 인순이의 음악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인순이는 왜 나가수에 참여한 이후 최저 순위인 7위를 하게 된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인순이의 음악은 난해했다. 화성에 익숙한 대중의 귀에 현대음악 분위기가 느껴지는 낯선 음악은 어렵고 지루했다. 심지어 음정이 틀린 것으로 들릴 정도였다. 과연 가요가 저렇게 해도 될까 싶더니 결국 청중평가단은 인순이의 도전과 실험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순위 발표가 끝나고 인순이는 애초에 순위는 크게 생각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당연했다. 중간 중간 비조성음악적인 선율이 혼란스럽게 작동하는 이 음악으로 높은 순위를 바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순이는 순위가 아닌 순수함을 원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인순이는 지금껏 나가수에서 낮은 순위를 받은 적이 없다. 그만큼 라이브에 강하고 청중평가단이 원하는 가창력과 풍부한 성량 그리고 세련된 무대매너까지 3박자를 갖춘 가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의 인순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준 것이기는 하지만 나가수라는 특별한 무대에서 기존의 모습을 고수하는 것은 최고참 가수로서 마뜩찮은 면이 있었을 것이다.

인순이는 그동안 항상 상위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인상적인 무대를 보이지는 못했다. 어찌 보면 인순이가 인순이 스타일로 후배가수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불공정할 수도 있다. 그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인순이 스스로는 느낄 수 있는 자의식이다.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그래서 인순이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은 물론 나가수의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음악적 시도였다.

순위로만 보자면 실패다. 그러나 인순이가 가졌던 고민과 결단을 생각한다면 꼴찌도 실패도 아닌 실험이다. 물론 아주 성공적인 실험은 아니었다는 것이 아쉬움을 남긴다. 우선 인순이 자신이 그런 비조성적인 음악에 익숙해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조금 더 멀리 간 장르의 음악을 해보고 싶었다고 밝혔지만 가도 너무 멀리 가서 스스로도 다 따라가지 못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조성음악도 아니고 비조성음악도 아닌 다소 애매한 음악이 돼버렸다.

기왕에 파격을 시도할 것이라면 완전한 현대음악을 선보였더라면 순위 결과는 같았을지라도 그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다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신선하기는 했다. 오래 경력을 가진 대중가수의 자신의 경험과 스타일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음악을 해보겠다고 결심한 그 자체만으로도 가뜩이나 지루해진 나가수에 새로운 자극이 되어주었다. 성과는 적었지만 그래도 가수 인순이 스스로에게는 나가수 안에 갇혀진 자신을 위한 문을 열라는 몸짓은 확인할 수 있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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