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정치권이 불붙인 ‘여성 징병제’ 논란과 관련해 “면밀한 분석이 없다면 소모적 논쟁만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징병제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 없이 남성 징집률이 높다는 이유로 ‘여성 징병제’를 주장하는 것은 보복과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4·7 재·보궐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병역 제도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김병기 의원은 제대군인을 국방 유공자에 걸맞게 예우해야 한다고 했다. 전용기 의원은 군 가산점 제도를 재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박용진 의원은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고, 남녀 모두 기초군사훈련을 받도록 하는 ‘남녀평등복무제’를 시행하자고 했다.

박 의원 주장 이후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병역의 의무를 남성에게만 지게 하는 것은 매우 후진적이고 여성비하적인 발상”이라며 “여자는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듬직한 전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5월 11일 기준 27만 5천 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여성 징병제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군인권센터, 나라살림 연구소, 참여연대는 11일 '병역제도 개편 이슈 라운드테이블'을 공동주최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여성 징병제’는 설익은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김 사무국장은 “여성을 군대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상 보복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될 것이다. 국방부는 뒷짐만 지는 게 아니라 정말 여성 징병제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얼마나 필요한지 등 논의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수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근무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이야기했던 게 작년”이라며 “여성을 징집하면 근무지, 합숙 등의 복무 여건을 마련할 수 있나. 근본적인 논의 없이 ‘여성을 징병해야 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고 밝혔다. 황 팀장은 “핵심은 군에 징집된 병사들의 처우 개선”이라며 “임금 현실화가 기본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병사 월급을 최저임금의 50%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모병제를 논의하기 이전에 기존 군대 체질 개선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 사무국장은 “징병제 체제에서도 가고 싶지 않은 군대인데, 모병제로 바뀐다고 생각이 달라질까”라며 “문민통제 강화, 감시체계 구축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 모병제 논의는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김 사무국장은 현 군대 체제에서 모병제가 도입되면 군대가 폐쇄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징병제 체제에서의 병사들은 소속감이 낮아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끌고 나간다”며 “하지만 모병제가 실시되면 군대는 폐쇄적으로 변한다. 군대가 위험한 무력 집단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병역제도 개편 이슈 라운드테이블 ‘징병제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수영 팀장은 인구감소에 따른 군 병력 감축이 불가피하다며 모병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황 팀장은 “한국의 인구 대비 군 병력은 세계 평균보다 많다”며 “군인을 30만 수준으로 감축하고 유급지원병·부사관을 늘려야 한다. 또한 근본적인 신뢰 구축을 위해 군비를 줄여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부소장은 모병제가 실시되면 국방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부소장은 “모병제는 국방예산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며 “모병제로 군에 입대한 병력의 정년과 군인연금 등이 문제로 꼽힌다. 제대군인 취업률이 50%~60%에 그치는 상황에서 재취업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부소장은 “국방예산은 통제가 부족해 방만하게 집행된다”며 “합리적인 운영이 확보되지 않으면 국방비가 끊임없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광식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원래 대선 국면이 되면 징병제 차별 논란이 불거진다”며 “최근 군 가산점 제도, 병사 군인연금 지급, 여성 징병제 논의가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이 모두에게 공공성을 제공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국민이 병역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제적 부담 수준, 인구 추이 등 여러 요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모병제에 대한 정책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국민에게 공개한 뒤 차분하게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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