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종종 소도살을 금지하거나 심지어 쇠고기 식육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었다. 지금의 상식으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소가 농경사회 조선의 주된 노동력을 제공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다. 헌데 여기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쇠고기 식육 금지는 표면적으로는 모든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사대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백성에게 쇠고기란 그림의 떡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한글창제를 앞두고 중요한 정치적 거래를 앞둔 세종과 밀본은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한가놈이 발견한 한글의 엄청난 기능을 알고는 가리온(정기준)은 화들짝 놀라 세종과 이신적 등 중신들의 거래를 막아야 한다고 소리치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가리온은 아주 중요한 말을 한다. 그것은 또한 밀본 다시 말해서 사대부의 조선에는 백성이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글자는 무기다. 칼보다, 창보다, 유황보다 무서운 무기다. 사대부가 사대부인 이유는 양반집에 태어나서가 아니라, 그런 혈통 때문이 아니라 글을 알기 때문에 사대부인 것이야. 그게 사대부의 권력이요, 힘의 근거다. 헌데 이 글자라면 모두가 글자를 읽고 쓰게 된다면 조선의 질서가 모두 무너질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가리온의 말이 아니라 한글을 반대했던 모든 사대부의 속셈이다.

가리온이 말한 조선의 질서란 사대부가 지배하는 질서이며, 사대부에게 독점된 권력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앞서 광화문 앞에서 시위하는 유생들과 끝장토론을 하러 나온 세종은 유림대표 혜강과의 논쟁에서 사대부가 주장하는 언로의 보장이 갖는 허구를 논리정연하게 깨뜨렸다. 언관이 생긴 이후 오히려 백성들의 말은 왕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의 뜻이 관료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편집됐다는 것을 통렬하게 지적했다.

거기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물론 실제 조선이었다면 결코 그렇게 입을 닫고 있지 않았겠지만 세종이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신사적인 유생들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기로 하자. 허지만 이 말은 나중에 가리온의 입에서 정확하게 확인됐다. 사대부의 모순을 가리온은 뻔뻔하게도 특권인 양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에게 사는 즐거움 생생지락을 주고 싶다는 세종과 단지 지랄인 뿐인 밀본은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것이다.

밀본은 조선의 뿌리가 사대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조선을 지배한 이데올로기이기는 했지만 치명적인 오류였다. 진짜 뿌리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대부도, 왕도 아닌 백성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를 부르는 일종의 은어에는 육식자라는 것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고기를 먹는 자는 곧 지배계급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기준이 하고 많은 신분 중에서 하필 백정이 된 것은 대단히 아이러니한 일이다.

정기준은 태종의 칼을 피해 백정 가리온이 됐다. 그렇지만 17년 세월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에도 정기준은 끝내 가리온이 되지 못했다. 육식자를 위해 소를 잡는 일을 해오면서도 세종에 대한 원한과 정도준의 혈육이라는 혈통주의에 빠져서 나라의 근본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한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물론 그동안 도담댁 등 밀본의 조직이 그를 떠받쳤겠지만 가장 천한 백성들 중심에서 살면서도 정기준은 아무 것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 지랄이 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의 원인이다.

채윤은 세종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백성들에게 사는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말을 했냐는 것이다. 채윤은 다소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런 게 있다는 거 처음 알았습니다”라고 했다. 채윤은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행복한 인물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에게는 부러운 인물이기도 하다. 채윤은 백성의 생생지락이 꿈인 왕 세종과 함께했으니 행복한 시대를 산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추운 날씨에 시민에게 물대포를 퍼붓는 21세기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왕 세종은 백성의 생생지락을 위해 임금인 자신의 마음은 지옥에 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뿌리깊은 나무에는 현실풍자가 없다. 그렇지만 조선의 요순시대를 연 세종의 면면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되고 있다. 그래서 즐겁고 또 그래서 슬프기도 한 것이 이 드라마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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