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포츠 경기에선 처음 합을 겨룰 때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통과 의례가 있습니다. 바로 그날의 기준을 정하는 것. 야구 경기에서 그날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이 어떠한지, 축구와 농구 경기같이 몸싸움이 수반되는 경기에선 주심이 어느 정도까지의 접촉을 허용하는지와 같은, 허용 가능한 범위를 정하고 그 틀 안에서 적합한 정도의 플레이를 하는 것이죠. 대부분의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과 항의는 바로 이런 기준이 명확하지 못하고 들쑥날쑥하면서 선수들에게 혼란을 줄 때 일어납니다. 어떨 때는 이렇고, 저럴 때는 또 다른 판정을 내린다면 선수들 스스로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어요?
왜 갑자기 스포츠 이야기냐구요? 저에겐 이번 주 라디오스타가 바로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무릎팍도사의 갑작스러운 폐지, 황금어장의 새로운 주인 자리를 꿰찬 라디오스타가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난 이번 주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이 바로 이런 기준 정하기처럼 보이더군요. 얼마나 더 강한, 자극적인, 소재를 가리지 않는 것들을 다룰 수 있는지를 재보는 범위 만들기. 공중파 토크쇼가 보여줄 수 있는 표현의 극한에 도전하는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발언의 연속이었습니다. 맥락 없이 따로 떨어뜨려놓기만 하면 모두가 입만 열면 방송 사고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표현은 또 어떤가요. 좀처럼 방송에서 말하지 않는 단어들 투성이입니다. MC들에게 적합할 것 같은 베드신 유형을 따지기도 하고, 같은 방송사 프로그램의 저조한 시청률을 농담의 소재로 만들죠. 각종 소문, 추문을 가리지 않고 물어보고 깔깔거리며 웃습니다. 강한 심장이 있어야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센 이야기들로 가득한 토크쇼라며 홍보하는 강심장은 라디오스타 앞에선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소프트한 신변잡기 이야기에 불과해요. 현재 공중파 방송 중에서 가장 극한의 표현과 소재를 다루고 있는 토크쇼는 단연 라디오스타입니다.
마냥 긍정할 수는 없는 내용이긴 합니다. 강한 개성의 배우인 김영호가 베드신 전문 배우로 그려지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모든 관련 기사와 화제가 전라 노출이 되어버린 김혜선의 홍보 전략도 지겹고 보기 싫습니다. 동시대 여성MC 중에서 가장 출중한 능력을 가진 송은이의 재능이 외로운 솔로 여성의 이미지에 가려지는 것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런 반짝거리는 면모들은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다루어 질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라디오스타에서는 좀 더 노골적이고 질퍽해도, 가끔은 풀어지고 털어놓아도 좋다는, 아니 이곳에서밖에 볼 수 없고 다룰 수 없는 내용이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