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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조’, 견고하고 광활한 악에 대처하는 ‘방법’이 남긴 숙제[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5.03 15:00

[미디어스=이정희] tvN 주말드라마 <빈센조>가 20부의 여정을 마쳤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14.6%(비지상파 유료가구 기준)로 자체 최고 성적, 줄곧 10% 내외의 순조로운 고공행진을 펼쳤다(닐슨 코리아 기준). 시청률만이 아니라 콘텐츠 영향력 면에서 엠넷 <킹덤: 레전더리 워>에 이어 전체 2위, 드라마 자체적으로는 1위를 고수해왔다(CPI. CONTENT POWER INDEX).

드라마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마피아 콘실리에리 빈센조 까사노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자신의 패밀리에 적대적인 상대 마피아의 포도밭에 항공기를 동원하여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살라 버리는 마피아식 단죄. 이어 자신을 습격한 암살범들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모조리 죽여버리는 빈센조 까사노. 그의 마피아식 복수로 막을 연 드라마는 <빈센조>의 정체성이 바로 '악은 악으로 응징한다'임을 밝힌다. 

빈센조의 정의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

20부 최종회에서 빈센조는 마침내 그의 손아귀에 잡힌 장준우 바벨 회장(옥택연 분)에게 말한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겠노라고. 그리고 마피아 콘실리에리 빈센조의 다짐답게, 20부 내내 광란의 질주를 벌이던 '잔인무도한 악' 장준우에게 러시아 마피아식 고문 보복 살인을 감행한다. 그에 앞서 이미 감옥에 간 최명희(김여진 분)를 빼내 이탈리아에서 했던 식으로 화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했다. 

<빈센조>는 '정의'를 말한다. 20회 마지막, 모든 미션을 완수한 빈센조는 자신을 따르던 국정원 직원 안기석(임철수 분)에게 이 사회에서 정의의 나약함을 짚는다. 정의로우려 하지만 말만 앞서는 정의는 그가 넘긴 '기요틴 파일'처럼 우리 사회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악을 처단하기엔 취약하다는 것이다. 

빈센조의 말처럼 드라마는 극 초반 사회정의를 실현하려 했던 홍유찬 변호사(유재명 분)의 잔혹한 죽음을 시작으로 바벨제약 연구원들의 죽음, 억울한 옥살이로 병까지 얻은 빈센조 어머니 오경자 씨(윤복인 분)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이라는 거악의 자기 이해 과정에서 희생양이 되었다.

바벨의 실질적 오너 장준우는 일찍이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을 죽인 것부터 시작하여 '사이코패스'적 행각을 지속하며 법과 사회적 규범의 틀을 부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이해에 맞춰 타인의 생명을 장난감처럼 쓸어버리는 쓰레기 자본에 법무법인 우상을 비롯하여, 남부지검으로 상징되는 검찰, 나아가 정계에 이르는 커넥션이 '악'의 군단이 되어 치밀하게 뒷받침해준다.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

이미 타락한 법적 정의,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나약한 사회적 정의로 인해 드라마는 빈센조의 마피아식 정의의 타당성을 설득해낸다. 통쾌하게, 피도 눈물도 없이 빈센조는 극중 적하 스님(리우진 분)의 해석처럼 4천왕 중 다문천왕이 되어 '악의 정의'를 실현한다. 

그리하여 가장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빈센조>는 역설적으로 우리 시대의 ‘정의’에 대한 고민을 안긴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 한때 우리 사회에서 붐을 일으켰던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수많은 딜레마의 상황을 제시한다. 기차를 몰고 가는 기관사가 철로 위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열차를 세워야 하는가, 열차를 급정거하면 열차에 탄 승객들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데. 이런 식이다. 

수많은 딜레마의 상황을 통해 한 사회에서 공정과 정의의 문제가 얼마나 쉽지 않은 과정인가를 보여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달리, 드라마 <빈센조>는 강력한 정의를 소리높여 외친다. 

숙제가 된 정의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

그런데 과연 빈센조는 정말 정의로운가? 그의 처절한 복수는 정의로운가? 그가 맡긴 기요틴 파일을 수임한 국정원은 검찰과 손을 잡지 않은 채 단독으로 파일의 '정의'를 실행하겠다고 한다. 드라마 속 국정원의 인물들은 정의롭게 그려진다. 특히 마지막 회, 국정원 국장이 된 안기석은 빈센조를 콘실리에리라 부르며 '칭송'한다. 

드라마에서 보인 정의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정의이다.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 콘실리에리 출신이지만 홍유찬 변호사를 만나 개과천선, 바벨에 대항하여 자신의 정의를 실현해간다. 마찬가지로 속물 변호사였던 홍차영(전여빈 분) 역시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가 봉사하던 우상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어간다. 

또한 금가프라자의 상인들은 각자도생의 삶을 살았지만, 자신들의 터전을 막무가내로 밀어내려는 바벨에 대항하여 싸우는 과정에서 빈센조와 뜻을 맞춰 '정의로운 시민'으로 거듭난다. 

드라마 속 정의로운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계기를 통해 ‘거악’ 바벨의 실체를 깨닫고 자신 속의 '정의'를 일깨워나간다. 정의로운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벌인 복수나 폭력은 악이지만 정의가 된다.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

<빈센조>는 숙제를 남긴다. 과연 잔인하고 무도한 거악에 대항한 정의실현 과정에서 '악'이 용납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폭력적인 방식 또한 수용되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 1조 1항의 문구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통해 운용되는 사회라는 선언이다. 그런데 최근 <빈센조>를 비롯해 드라마들은 거침없이 총을 쏜다. 사적 복수에 가까운 린치와 폭력에 거침이 없다. 심지어 20회, <빈센조>는 다짐하듯이 거악에 대항하여 악을 불사하는 강력한 정의의 구현을 외친다. 

드라마 속 빈센조를 비롯한 사람들은 분명하게 정의로웠고 상대의 악은 분명 악했지만, 과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수많은 예처럼 모호하기 그지없는 사회에서 ’정의'롭다는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물을 수밖에 없다. 저마다 정의롭다라고 하여 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악'을 불사한다면, 과연 사회의 시스템은 존재할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물음이 던져진다. 어쩌면 <빈센조>가 남긴 숙제는 드라마가 선동하듯 남긴 '정의'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서로 피 흘리며 싸우던 자코뱅 당과 지롱드 당이 ‘의회’라는 공간에서 서로 마주한 것은 악의 정의를 몰라서였을까? 영국 의회의 역사 역시 다르지 않다. 흔히 민주주의의 역사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피를 더 이상 흘리지 않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라는 말일 수도 있다.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자본과의 야합으로 인해 더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낙인을 찍는다. 특히 법을 집행해야 할 사법부와, 거대 법무법인이 그 야합의 주범이다. 검찰청에서 나온 최명희는 법이라는 수단 대신 홍유찬 변호사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방식으로 양아치와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인다. 정의의 마지막 수호자였던 검사는 끝내 자신의 입신양명에 정의를 팔아먹는다. 

시스템이 무너진 사회, 그렇다면 결국 기댈 곳은 '정의로운 사람들'의, 악도 불사한 정의가 될 것인가? 그런데 그들이 정말 드라마 속 빈센조처럼 정의롭다고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정의로운 빈센조는 내내 정의로울까? 2014년만 해도 <펀치> 등의 드라마에서 무너진 질서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결의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 2021년의 드라마는 차라리 총을 들어 쏘라고 말한다. 2021년 가장 대중적인 드라마가 우리에게 '정의'에 관한 숙제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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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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