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인정하는 성군입니다. 그의 가장 위협적인 적 밀본의 정기준도 이도는 성군이어서 더 위험하다고 합니다. 북방에서 피에 물든 삶을 살았던 똘복이도 남쪽으로부터 들려오는 풍문으로 그의 치세가 태평성대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공포와 피로 통치했던 조선은 성군 세종을 맞이하여 건국 100년도 되지 않아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 위대한 업적은 조선의 어떤 왕도 취할 수 없었던 ‘대왕’이라는 호칭을 후대의 자손들이 수여하게 해주었구요. 반만 년의 기나긴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왕들이 통치했던 우리네 역사에서 대왕으로 불리는 통치자는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이 유이해요.

그런데 뿌리 깊은 나무는 발칙하게도 이런 위대한 군주를 전혀 다른 시점으로 들여다보며 세종을 그리는 순간 곳곳에 치명적인 비밀을 불어 넣습니다. 그것도 군주라는 자리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위대함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특성을 그 인물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성격으로 묘사하면서 세종이 취했던 선택들, 그의 업적들을 모두 다른 원인에 따른 결과로 바꾸어버린 것이죠. 게다가 이 이유가 너무나도 타당해보여서 쉽게 반박할 수도 없어요.

엄청난 겁쟁이. 두려워하고 벗어나려하고 힘겨워하는 너무나도 나약한 인간. 이것이 뿌리 깊은 나무가 그리고 있는 세종 이도의 실체입니다. 그의 천재성, 강고한 의지, 따뜻한 심성 모두 빛을 발하며 한석규의 세종을 포장해주고 있지만 이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바로 두려움, 무서움입니다.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세상에서, 그는 조선 최고의 겁쟁이였어요.

아버지가 무섭습니다. 이방원이 뿌렸던 피의 잔혹함과 어두움에 겁이 납니다. 그래서 군주의 폭력은 필요악이라고 부추기는 아버지의 오랜 충신 조말생의 조언에 가슴을 뜯으며 괴로워합니다. 그가 살리지 못했던 희생자들의 비명에 여전히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방진의 한 가운데 오직 왕이 있을 뿐이라는 이방원의 말이, 왕좌와 권력이 내뿜는 독기가 온 몸에 채워 넣으며 삶을 갉아 먹을지라도 그 무서웠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무슨 일이 있어도 몸부림치며 피하려 버팁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치던 아들이었어요.

밀본이, 정기준이 무섭습니다. 너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정기준의 지적이 무력감으로 남아 여전히 머리 한 구석을 지배합니다. 그는 이런 올가미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반발심에서 노력하고 또 노력합니다. 자신이 조선의 왕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는 농지거리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왕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애달픈 호소입니다. 나는 왕이다. 내가 조선의 왕이다. 그는 자신의 통치로 이것을 입증받고 싶어 했고, 수많은 것들을 이룸으로서 이 무력감의 공포에서 해방되고자 했습니다. 밀본은, 정기준은 그들이 단지 왕권을 위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도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무섭고 위험한 것이었어요.

소이가, 똘복이가 무섭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던 속내를 꿰뚫어 보는 소이의 존재가 무척이나 의지가 되고 고맙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녀 앞에서는 점점 더 암담해지는 이상과 목표, 노력해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현실에 분노를 뿜어내고 절규하며 괴로워합니다. 자신의 대의 앞에서 지랄이라고 말했던 첫 번째 백성 똘복이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무력함을 일깨우고, 자신의 길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를 확인시켜 줍니다. 너무나 아끼기에, 지키고 싶기에 이들이 무섭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성이 무섭습니다. 세종은 통치자이고 만인의 위에 서 있는 절대자입니다. 그의 말 한 마디면 어떤 이의 재산도 지위도 생명도 모두 마음대로 취하고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백성이 무섭습니다. 자신의 호통 한 마디에 살려달라는 백성들의 말에 부들부들 떨며 뒤로 물러서고, 하루에 두 시간도 잠을 이루지 못하며 창제한 한글이 백성의 마음에 들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똥지게를 지고, 역병지역을 돌아다니고, 대신들과 맞서 싸우고,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면서도 오직 백성에게 인정받고자, 백성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온 힘을 쏟습니다. 그가, 세종이 겁쟁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종이 그립습니다. 백성 무서운 것을 알았던 지도자. 자신을 믿지 않았던 겁쟁이. 권력이 품고 있는 폭력의 위험함을, 그 독기를 겁내하며 결코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던 소심쟁이. 이런 치명적인 약점들, 우둔함, 바보스러움이야말로 세종을 위대한 군주. 우리의 대왕으로 만들어준 귀한 마음이었습니다. 드라마는, TV는 민심을 읽고 현실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위로해 줍니다. 우리가 바보상자라고 무시하는 그 안에 가장 치열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금 우리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드라마 속 세종에게도 우리의 마음 조각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세종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처투성이, 치명적인 약점의 소유자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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