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등장은 시작부터 신선했습니다. 양복을 입은 채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고 90분 내내 선수들을 독려한 모습은 강렬했습니다. 선수들과 격의 없는 모습, 때로는 선수 못지않은 열정적인 세레모니로 팬들을 즐겁게 했던 그였지만 강렬한 카리스마로 위기에 빠진 팀을 한순간에 장악했던 그는 웬만한 베테랑 감독 못지않았습니다. 시즌 중반에 갑작스런 감독 사퇴로 자리를 맡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감독직을 잘 수행했던 그에게 '감독대행'이라는 꼬리표를 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용수 FC 서울 감독대행을 두고 하는 얘기입니다.

▲ FC서울 최용수 감독 대행 ⓒ연합뉴스
FC 서울이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 챔피언십 6강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현대에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올 시즌을 마쳤습니다. 서울은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 곽태휘, 김신욱, 고슬기에 연속골을 내주며 울산에 1-3으로 패하고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지난해 10년 만의 K리그 정상에 성공하며 최고의 한 시즌을 보냈던 서울은 아무런 타이틀을 거머쥐지 못하고 2011 시즌을 아쉽게 마무리했습니다. 자연스레 최용수 감독대행의 지도자로서의 첫 시즌도 마무리됐습니다.

비록 무관(無冠)에 그친 서울이었지만 최용수 감독대행의 첫 시즌은 유쾌하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수 생활 몸담았던 친정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임시로 팀을 맡았지만 웬만한 감독 이상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팀을 이끌었습니다. 목표했던 성적을 내지는 못했어도 훗날 많은 것을 기대하게 했던 건 많은 팬들이나 시즌 내내 지켜본 사람들 모두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기대와 우려 공존 속 부임했던 최용수 '감독대행'

선수 생활을 마치고 FC 서울에서 코치직을 수행하다 지난 4월 감독대행을 맡았던 최용수의 등장은 신선함과 기대감, 그리고 걱정과 우려가 공존했습니다. 아직 30대인 그가 '젊은 팀'인 FC 서울을 잘 맡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엇보다 컸습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FC 서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감독대행을 맡은 것에 특히 서울팬들의 기대는 남달랐습니다. 반면 초보 감독에게 늘 따라붙은 약점이라 할 수 있는 경험 부족, 이렇다 할 색깔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특히 최 대행이 팀을 맡았을 당시 서울의 분위기를 과연 감독 경험이 없는 자가 제대로 반전시킬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습니다.

지난해 우승을 차지한 서울이었지만 넬로 빙가다 감독을 황보관 감독으로 교체한 선택은 시작부터 미덥지 않은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됐습니다. 나름대로 야심찬 출발을 위한 선택이었다지만 개막전 라이벌 슈퍼매치 수원전에서 0-2로 완패당하면서 서울의 분위기는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3,4월 두 달 동안 전북 현대를 이긴 것을 제외하고는 1승 3무 3패의 부진에 빠졌고, 무엇보다 서울의 뚜렷한 색깔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결국 7라운드 광주전 패배 후 서울의 순위는 16개 팀 가운데 15위로 추락했고, 황보관 감독은 사퇴했습니다. 분명히 최대 위기였고, 누구든 그 분위기를 어떻게든 살려내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상황에 최용수가 감독대행을 수행한 것입니다.

시작부터 강렬했던 독수리, 색깔을 드러내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가운데 최용수 감독대행은 4월 30일 제주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감독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은 사라지고 시작부터 깔끔하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습니다. 장대비가 내리던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양복을 입고 나타난 최 대행은 어디서 뭔가 모르게 어색함이 많이 묻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에 아랑곳 않고 그는 비를 흠뻑 맞으며 90분 내내 선수들과 함께 했고, 그런 감독, 아니 서울의 레전드 모습에 자극받은 선수들은 달라진 경기력을 보였고 결국 제주 유나이티드에 2-1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최용수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는 드라마틱했습니다. 3,4월에 보였던 패배 의식은 온데간데없었고 짜릿한 승부를 펼치는 근성까지 보여주며 순위가 하나둘씩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최용수 감독대행의 퍼포먼스는 서울을 넘어 K리그 전체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감독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아예 경기장에 들어가 선수들과 세레모니를 펼치기도 했고, 심지어는 코너 플래그(코너킥 차는 부분)가 있는 부분까지 가서 슬라이딩해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선수들 그리고 팬들과 격의 없는 모습을 보인 것은 30대 감독다운 신선함과 편안함, 그리고 패기도 묻어있었습니다. 승부조작 여파로 침체돼 있던 K리그였지만 최용수 대행 덕분에 희망을 갖는 시선도 늘어났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발맞춰 서울의 상승세도 이어졌습니다. 올 시즌 최다 연승인 7연승을 달리기도 했고, 순위는 어느새 챔피언십 출전권을 넘어 3위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1위 전북 현대와는 차이가 났기에 어려웠을지 몰라도 2위 포항 스틸러스를 잡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가져볼 만했을 정도로 서울의 상승세는 눈에 띄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분명 최용수 감독대행이 있었습니다.

▲ K리그 상주-서울전에서 서울 최용수 감독대행이 3-3의 균형을 깨는 결승골이 터지자 선수들을 부둥켜안으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쉽게 이루지 못한 꿈, 그래도 즐거웠다

하지만 아쉽게 거기까지였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방점을 찍을 만 한 뭔가가 필요했지만 FC 서울은 7-8월의 상승세를 좀처럼 잇지 못했습니다. '아시아 챔피언'에 오르겠다는 포부로 나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2년 전에 이어 또다시 8강까지만 진출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또 개막전에서 패했던 수원을 상대로 또다시 0-1로 져 올 시즌 한 번도 수원에 이기지 못하는 결과를 냈습니다. 이후 팀 분위기를 잘 추스려 정규리그 3위로 마쳤지만 울산 현대에게 1-3으로 패하며 목표했던 3위 이상의 성적을 내는데 실패했습니다. 마지막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이 FC 서울, 그리고 최용수 감독대행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최 대행은 울산전이 끝난 뒤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상당히 어려운 시기에 감독을 맡아 내 자신에게도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많은 경기를 했고 소중한 추억이었다.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면서 "내 자신이 부족함이 많은 것을 느꼈다. 내게 점수를 주자면 49점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며 지도자로서 시즌을 치른 소회를 밝혔습니다. 스스로 49점 감독이라고 했어도 분명히 최 대행은 FC 서울에 맞는 색깔을 보였고, 최대 위기에 직면했던 팀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하며 비교적 성공적인 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서울을 응원하든, 그렇지 않든 최 대행의 신선함에 많은 축구팬들은 주목했고, 즐거워 했습니다.

아직 그의 거취는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감독대행이라 어디까지나 임시로 팀을 맡은 상황이었기에 앞으로 그의 행보가 어떻게 될지 자연스레 관심이 갑니다. 하지만 많은 축구팬들은 가능한 FC 서울 '감독대행'이 아닌 '정식 감독'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위기에 빠진 팀을 4년 연속 챔피언십에 올려놓는 데 큰 공을 세운 것만은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신선한 색깔이 향후 FC 서울의 팀 발전, 미래에도 좋은 영향을 줄 거라는 시각도 많습니다. 스스로 첫 시즌을 '49점'으로 평했던 최용수 감독대행. 훗날 나머지 51점을 채울 수 있는 완벽한 감독으로 거듭나는 그의 미래를 기대하고 응원해 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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