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드라마 제작현장의 장시간 노동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에 따르면, KBS 수목드라마 <대박부동산>(제작사 몬스터 유니온)은 밤 12시 용인에서 촬영을 끝내고 다음 날 오전 8시 30분까지 파주 촬영장에 집합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동하는 시간 등은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았다.

5월 방영예정인 <오월의 청춘>(제작사 '이야기 사냥꾼')의 경우 불합리한 인건비 계약을 강요해 스태프가 불만을 제기하자 교체를 언급하며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태프들에게 개별 업무위탁계약을 맺고 부속합의서를 통해 모든 책임을 대표급(감독급) 스태프들에게 떠넘겼다는 주장도 나왔다. 계약 내용은 68시간 장시간 노동, 이동시간 불인정, 근무시간 임의변경, 4대 보험 미지급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KBS 본사 앞에서 열린 <공영방송 KBS 드라마 제작현장 장시간노동 중단 및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촉구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27일 KBS 본관 앞에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7개 단체가 공동주최한 ‘공영방송 KBS 드라마 제작현장 장시간 노동 중단 및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KBS 드라마 <오월의 청춘> 스탭 계약서’를 검토한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근무시간·휴게시간·이동시간을 문제로 지적했다. 현장 스태프들은 주식회사 '이야기 사냥꾼'과 업무위탁계약서(개별 스태프)와 부속합의서(스태프 대표)를 체결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근무시간은 주 68시간, 하루 16시간(휴게시간 2시간 포함)이다. 이동시간은 근무시간에서 제외했으며 지방촬영 시 전날 휴차인 경우 지방에서 숙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휴게시간은 지방촬영의 경우 여의도 KBS별관 도착시간부터 다음 날 버스 출발 시각까지 8시간을 보장한다.

윤 변호사는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방송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다"면서 "1주간의 근로시간을 52시간이 아닌 68시간으로 정한 업무위탁계약서·부속합의서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 근무시간 14시간’을 명시할 경우 제작사가 일일 근로시간 8시간을 넘겨 14시간 근무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돼버린다”고 지적했다.

해당 계약서는 이동시간을 근무시간에서 제외하고 있다. 윤 변호사는 “촬영시간만을 근무시간으로 보고 있다”며 “지방촬영의 경우 전날 휴무이면 이동해서 숙박하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급여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은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제50조 제3항)으로 보며, ‘해외출장 중 소비한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봐야한다’는 판례도 있다.

윤 변호사는 제작사가 계약서에서 일 근무시간 기준을 임의로 정한 것과 ‘8시간 휴게시간’을 정하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윤 변호사는 “계약서는 근로기준법에 정면 배치되며 제작사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피해가기 위해 업무위탁계약서를 쓴 것으로 보인다”며 “제작현장 스태프가 제작사가 짠 일정에 따라 일하고 제작사에 업무보고를 하는 등 종속적인 노무를 제공하고 있지만 감독급 스태프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 역시 근로계약서 위반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변호사는 “계약을 맺은 제작사가 따로 있지만 KBS는 전체 연출과 관리 감독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기에 책임을 말할 수밖에 없다”며 “KBS 방송제작가이드라인에는 외주제작에 문제가 생기면 KBS 담당자가 바로 연락하고 지시를 내리도록 하고 있다. KBS가 스태프들의 실질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희망연대 방송스태프지부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지목한 드라마

KBS만의 문제가 아니다. tvN <마우스>(제작사 하이그라운드)는 촬영팀을 4개로 늘려 제작하며 노동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vN <빈센조>(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는 장시간 지방이동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지난 15일부터 9일간 쉬는 날 없이 막판 촬영을 진행했다.

MBN <보쌈-운명을 훔치다>(제작 JS픽쳐스)와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제작 초록뱀미디어)도 이동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지방촬영 이동을 노동시간에서 제외하고 개인 도급계약서조차 쓰지 않은 채 촬영에 투입된 방송 스태프 노동자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방송스태프지부는 유야무야된 방송현장 개선 논의를 비판했다. 2019년 6월 지상파 3사, 전국언론노동조합, 드라마 제작사협회,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로 구성된 ‘지상파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공동협의체’가 드라마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서 체결을 골자로 한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하지만 합의 초기에 불참을 선택한 SBS에 이어 지난달 MBC가 협의체에서 빠졌다.

김기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2019년 4월부터 지상파 3사 포함 4자 협의체를 구성해 표준근로계약서 도입 논의를 이어왔지만 2년이 지나도록 드라마 제작현장에 장시간 노동 문제는 여전하고 표준근로계약서 사용은 찾아볼 수 없다”며 “오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MBC, SBS, tvN, JTBC등 모든 드라마 제작현장의 불법적인 실태를 조사하고 법적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방심했던 것 같다. 2년 전 고용노동부로부터 스태프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4자 협의체를 구성하고 표준 근로계약서를 현장에 도입하겠다고 해서 시간은 걸리겠지만 합의안이 도출될 거라고 낙관했다”며 “4자 협의체는 좌초될 위기에 놓여있고 여전히 공영방송 KBS를 비롯한 지상파는 제작현장에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한빛 PD가 열악한 방송 노동환경을 지적하며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장시간 노동이 여전하다. 과잉노동, 하청, 해고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이 절실하다”며 “국회 환노위 위원으로서 무늬만 프리랜서인 방송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 낼 것이며 고용노동부는 모든 드라마 제작사 근로감독을 통해 불법 실태를 바로잡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4자 협의체가 사용자 중심으로 만들어졌기에 이 상황까지 오게 됐다. 방송 노동 관련 시민단체가 포함된 노사정 4자 협의체를 만들어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협의안을 만들 것을 공식 제안한다”고 말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2018년 근로기준법 특례조항에서 방송업이 제외된다는 이야기가 나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좋아했었고, 2019년 6월 4자 협의체가 꾸려지고 드라마 스태프 표준계약서 체결에 합의했을 때 잘됐다고 생각했다”며 “4자 협의체에 참여한 양승동 사장의 임기가 올해 끝난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KBS가 책임지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희망연대노조, 민주노총 서울본부,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대책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 언론개혁시민연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전국불안전노동철폐연대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8일부터 점심시간 전후 KBS 본관 및 후문에서 ‘KBS 드라마제작현장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촉구’ 1인 시위 및 피켓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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