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호흡이 곤란할 정도의 폭풍 웃음을 선물할 수도 있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은 감동과 눈물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뉘우침과 깨달음을 줄 수도 있죠. 하지만 이런 모든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지점은 바로 공감에 있습니다. 이들이 화면을 통해 보여주고,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그 노래가 나의 이야기이고, 그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이 결정에 충분히 납득이 가고, 기꺼이 그것에 참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연결점이 끊어진다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답답함을 넘어 짜증과 분노를 뿜어낼 수밖에 없어요. 소통이 필요하다는 말은 비단 정치권 윗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에요.

장혜진이 명예졸업에 실패했습니다. 지난주 7위를 기록하며 탈락 위기에 놓여있던 바비킴은 이번 주 경연을 2위로 장식하며 기사회생했습니다. 각각 5위와 6위였던 자우림과 윤민수도 위기에서 벗어나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었습니다. 순위와 결과만 본다면 매번 있었던 일이고, 가능한 선택이며, 익숙한 반전입니다. 그동안 나가수에서는 1등을 했던 사람도 다음 주에는 꼴찌로 탈락했던 경우도 있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가수가 상위권을 차지했던 적도 많았습니다. 이런 의외성이 나가수에 긴장을 만들어주는, 출연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중요한 장치인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과연 그 순위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바비킴도 놀라며 말했던 것처럼, 가수 스스로도 당황할 정도의 결과이기도 하구요. 방송이 끝날 때마다 시청자 마음속의 순위와 실제 순위가 다른 것에 대한 불만의 글들이 게시판과 관련 기사 댓글 공간들을 점령합니다. 생각보다 좋은 순위를 받은 특정 가수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도 하고, 심지어 결과가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품기도 합니다. 나가수의 순위와 매주 유통되는 음원 순위도 크게 다릅니다. 소통과 공감의 문제. 이 프로그램과 시청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나는 가수다가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때부터 시작된 문제입니다. 물론 시청자들마다 개인의 취향도 다르고, 선호하는 가수도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좋아보였던 무대, 아쉬웠던 순간이 같을 수가 없겠죠. 모든 사람들의 취향을 다 맞추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지적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시청자들이 TV로 접했을 때 느끼는 감동과 평가가 점점 더 나가수의 실제 순위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에요. 청중 평가단이 선호하는 무대와 시청자들이 감동을 느끼는 지점의 차이가 가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건 지금의 나가수에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요.

물론 나가수에도 공감의 끈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끈은 시청자와 출연하는 가수의 무대 사이를 연결하고 있지 않아요. 그 통로는 철저하게 현장에서 순위를 결정하는 500명의 청중 평가단에게만 열려져 있죠. 과감한 퍼포먼스와 참여 유도로 관객들과 함께 즐기며 호응을 이끌어내고, 라이브에서의 풍부한 성량과 고음을 자랑하는 이들이 매번 높은 순위를 차지했었구요. 순위에 위기를 느끼거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출연 가수들이 이번 주 바비킴처럼 곡의 원래 의미와도, 그 느낌과도 전혀 다른 무리한 편곡이다 싶은 변형으로 활기찬 무대를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가수용 무대와 편곡을 양산하는 문제가 생긴 이유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시청자인 우리는 그 완결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제공받을 뿐입니다. TV를 통해 호흡 하나에도 숨죽이며 집중하면서 현장에서는 느끼기 힘든 가수들의 섬세한 표현과 감정에 마음이 움직이고, 잔잔한 노래와 편안한 분위기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화면을 보며 그들의 노래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환호와 지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전혀 순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차분하게 정돈된 노래로 무대를 꾸민 이들은 어김없이 하위권 점수를 받습니다. 나가수를 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혹시나 스마트TV나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복권놀이 비슷한 문자보내기 뿐이에요.

억울하면 평가단으로 선정돼서 직접 무대를 보고 순위를 정하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500여 명의 행운아들을 위한 방송이 아니라 집에서 그 무대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제공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렇다면 그 공감의 문은 시청자를 향해 보다 활짝 열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매번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생기는 잡음은 시청자들이 유난스럽고 까탈스러운 고집쟁이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그 막막함과 답답함 때문에 생기는 한숨소리죠. 가수들의 노력과 재능이 만든 훌륭한 무대에 미치지 못하는 연출. 나가수는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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