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개혁의 정치라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일단 뭔가를 바꾸자고 하는 이야기에 동의를 얻는 것 자체가 어렵다. 대의명분으로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내더라도 그걸 실제로 현실로 만들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개혁의 동력을 상실한 권력은 기성의 해법으로 회귀한다. ‘기성의 해법’이란 것은 늘 준비되어 있다. 즉, 이것은 ‘준비된 퇴행’이다.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권력의 움직임도 정해진 공식대로다. 전당대회 레이스 중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여러 대책을 짚어보는 중인데, 내용을 보면 하나 같이 집값이 오른 현실을 인정하고 ‘빚 내서 집 사는’ 해법으로 돌아가자는 것뿐이다. 재보궐선거 패배 요인이 부동산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가는 게 안 된다면 대안은 뒤로 가는 것 뿐이라는 얘기인 듯도 한 느낌이다.

한 번 오른 서울 집값은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는다. 이 정권에서 집값이 올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종부세 납부 대상자가 늘었다거나 부동산 소유주들의 재산세 부담이 커졌다는 진단은 근거 있다. 다만 종부세 과세 대상이 늘어난 게 어느 정도인지, 개별 사례를 떠나 실제 재산세 부담은 또 얼마나 늘 것인지에 대해선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가령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9일 대정부질문에서 “사실상 13~14억원 수준의 민간 주택까지는 종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종부세를 내는 계층은 전 인구로 봤을 때 많지 않다”고 했다. 종부세 부과 기준을 높이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 태도인 것이다. 재산세의 경우 “일정 주택 가격에 대해서는 재산세를 인하하고 있는데 그 기준이 합리적이었느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대목은 지난해 11월 당정청이 재산세 인하 기준을 놓고 대립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여당은 재보궐선거를 의식해 재산세 완화 기준을 9억원 이하 1주택자로 넓혀야 한다고 했으나 청와대와 정부는 6억원 이하를 고집했고 결국 여당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쨌든 세금을 깎아주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은 이 정도 수준의 부동산 가격이 앞으로도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집값 안정’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 여당이 또 하나 고려하는 카드는 대출 규제 완화이다. 이 문제는 당권주자들도 거론하고 있는데 DTI와 LTV규제를 90%까지 풀자는 송영길 의원의 제안이 대표적이다. 다른 주자들도 정도에 있어선 차이가 있고 서로 갑론을박을 벌이는 모습을 연출하고는 있으나 큰 틀에서는 유사한 제안을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과거 정부의 ‘빚내서 집사라’는 취지와 거의 같은 내용이다. 특히 DTI 규제 완화는 ‘약탈적 대출’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은 후퇴가 아닌가?

이 정권이 그간 대출규제를 강화해온 것은 다주택자와 ‘투기 세력’의 자금줄을 차단해 시장 과열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권이 상정하는, 전문적 수준의 수단까지 동원하는 투기세력이라면 대출규제 강화를 비켜갈 다른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리가 없다. 오히려 대출규제 강화로 실질적 피해를 본 것은 처음 내집 마련에 나섰거나 집을 넓혀가려고 하는 이른바 ‘실수요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부동산 불안에 그나마 최소한의 현금 동원력을 가진 사람들이 ‘영끌’과 ‘패닉바잉’에 나서면서 ‘벼락거지’들이 양산되었다. 이게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연합뉴스)

그런데 이건 현실의 단면을 잘라서 돋보기로 들여다 본 결과일 뿐이다. 좀 멀리 떨어져서 전체를 조망해 볼 필요도 있다. 사실 세 부담 경감이나 대출규제 완화 등은 보수정치와 기성언론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들이다. 이건 어떤 음모의 차원이 아니라, 당연한 결론이다. 사람이 자기 명의의 집을 가져야 하는데, 자기 돈만 갖고 집을 살 수 없다면 결국 대출을 받는 것 외엔 답이 없다. 또 누구나 집을 가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데, 집을 가졌기 때문에 내야 할 세금이 있다면 소득이 적은 사람은 고통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이런 저런 감면책이나 청년, 무주택자 등에 대출규제를 완화하는 샛길을 열어 놓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걸로 모든 경우를 다 커버할 수는 없다. 결국 ‘집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빚내서 집사라’와 일부 계층에 대한 재산세 완화는 불가피한 길인 것이다.

만일 ‘빚내서 집사라’는 게 잘못된 길이라면 ‘집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를 바꿀 대안이 있었어야 했다. 이 정권의 개혁 정치가 애초에 그 길을 모색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정권 초기 임대사업자 등록 유도를 통한 민간임대시장 활성화를 추진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대안은 ‘투기세력’이 임대사업자 등록의 혜택을 고리로 ‘갭투자’에 전면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귀결돼 폐기됐다. 여기에 화들짝 놀란 집권 세력이 공급만능론으로 방향을 틀면서 오늘의 이 사태는 예견되었다.

대안이 아닌 것을 대안이라고 고집했던 것인지, 아니면 대안은 옳았으나 추진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는 충분히 고민하고 판단해 볼 문제이다. 우려되는 바는 이렇다. 이런 상황에, ‘개혁’을 부르짖는 세력이 어떤 방식으로든 집권하게 된다면, 이렇게 해서 등장한 정부가 과연 ‘빚내서 집사라’ 이상의 대안을 제출하는 게 가능할까? 가령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주택’ 등 장기임대주택 정책에 힘이 실릴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이건 부동산 문제뿐만이 아니라 이 정권이 손을 댔다가 실패한 거의 모든 주제에 적용해볼 만한 얘기다. 그렇기에 개혁은 잘하는 것만큼이나 실패하더라도 의미 있게 실패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혁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것도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겠지만, 이 정권이 개혁에 어떻게 실패하게 되었는지 복기해야 한다. 애초에 실제로는 개혁을 믿지 않았기 때문인가, 신심은 있었으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인가? 혹여나 배신자 때문이라는 답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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