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명작 드라마가 그렇듯이 뿌리깊은 나무에도 명대사가 즐비하다. 14회에는 뿌리깊은 나무 짝수회 공식에 따라 아마도 이 드라마 전편을 통해서 최고의 명대사라고 해도 좋을 명대사가 나왔다. 그 한 마디를 위해서 세종은 군왕의 목숨마저 버릴 각오로 똘복과의 만남을 기다렸다. 그토록 중요한 세종의 한 마디는 정작 똘복에게는 큰 반향이 없었지만 그 안에는 뿌리깊은 나무 전체를 관통하는 세종의 모든 이유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권력자들에게 주는 뼈저린 교훈과 질책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똘복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세종을 찾아왔다. 그리고 칼을 뽑아들어 세종의 목을 겨눴다. 아무리 임금의 명이라 할지라도 무휼이 그냥 두고만 볼 리는 없었다. 농담할 분위기는 아니지만 세종이 똘복을 제지하지 않은 이유에는 무휼에 대한 신뢰도 없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세종의 의도를 알고 있는지 칼을 내려놓으라는 명에도 무휼은 아랑곳 않고 똘복의 칼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그 칼은 기실 세종이 아니라 똘복을 구하게 된다. 세종은 똘복이 자신을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 죽으러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지하지 말라 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침묵 속에 숨겨두었던 모든 이유를 똘복에게 설명하고자 했다. 세종의 길, 똘복의 길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동참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인 상태에서 들으면 기절이라도 할 것 같은 명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죽고자 달려들 정도로 격동적인 똘복의 귀에 그것이 통할 수는 없었다.

똘복은 세종에게 겨눴던 칼을 자기 목에 대고 자결을 시도했지만 무휼의 멋진 칼사위로 막아냈다. 그리고 세종과 똘복은 피 끓는 논쟁을 벌인다. 세종은 세종의 이유를, 똘복은 똘복의 이유를 절규하듯이 내뱉지만 아직은 타협할 지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만다. 똘복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악귀처럼 살아왔는데 지나치게 착한 아비는 죽음의 목전에서도 고작 주인마님 잘 모시라는 말을 남겼으니 똘복의 집념은 허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종의 이유도 너무도 타당하다. 세종의 말은 그리고 이 세상을 쥐고 흔드는 권력자들이 반드시 듣고 새겨야 할 말이었으며, 그를 평가하는 후손의 가장 정확하고도 존경을 담은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임금이 태평한 태평성대를 보았느냐? 내 마음이 지옥이기에 그나마 세상이 평온한 것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이 말 한 마디에 왜 세종이 성군이며, 그가 반만 년 역사 속에 가장 위대한 발명인 한글을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담겼다. 세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의 독백과도 바꾸지 않을 우리 마음속의 명대사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똘복에 대한 세종의 마음은 몇 년 전 세종을 다뤘던 드라마에서 장영실을 대하는 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관노였던 장영실에게 관직을 내리고 이에 반대하는 조정신료들의 연좌에 맞서 세종은 단식으로 버텼다. 이에 장영실이 스스로 관직을 고사하겠다는 의미로 관복을 들고 세종에게 반납하고자 편전 앞마당에 부복하고 있었다. 세종과 신하들과는 또 다른 의미의 시위였다. 그러다 밤이 되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종은 내관들이 들고 있던 우산을 빼앗아 직접 장영실이 비를 맞지 않도록 하며 말한다. “나의 치세는 길어야 30년이나 너의 기술은 백년 아니 오백년 아니 어쩌면 더 길게 살아남아 이 나라를 지탱할 힘이 되어줄 거다”

똘복의 칼에 목을 드민 세종과 관노 장영실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가 비에 맞지 않도록 우산을 받치고 선 세종은 다른 상황임에도 마음만은 같아 보였다. 세종이 천재이며 그에 못지않은 노력과 끈기를 가진 왕이었지만 그런 모든 것들보다 더 위대한 성군의 마음, 성군의 자세를 읽게 해주는 장면들이다. 지금의 위정자들에게 그런 세종의 마음이 깃들 수만 있다면 21세기 한국은 보다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시대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세종의 마음을 배신할 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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