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언론중재위원회 선거기사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부동산 공약을 비교평가한 한겨레 기사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며 '주의' 조치를 결정했다. 한겨레 시민편집인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는 과도한 선거법 규정이 언론의 정책평가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기사심의위는 지난 5일 한겨레 <앞다툰 ‘공급 공약’ 현실성 떨어지고… ‘집값 안정’ 박△ 오X>(3월 30일자) 기사에 대해 '주의' 조치를 결정했다. 한겨레의 기사가 공직선거법과 선거기사 심의기준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심의위는 "한겨레는 서울시장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에 대해 비교평가한 결과를 보도하면서 후보자별로 순위·등급을 정하는 방법으로 서열화하거나, 비교평가 결과를 공표하면서 평가주체, 평가단 구성·운영, 평가지표·기준·방법 등 평가의 신뢰성·객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을 함께 보도하지 않았다"며 "유권자의 판단에 잘못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결정이유를 밝혔다.

심의위는 공직선거법 제8조(언론기관의 공정보도의무)와 제108조의 3(정책·공약에 관한 비교평가결고의 공표제한), 선거기사 심의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5조(객관성 및 사실보도), 제7조(일반 선거기사) 등의 조항을 적용했다.

한겨레 3월 30일 <앞다툰 ‘공급 공약’ 현실성 떨어지고…‘집값 안정’ 박△ 오X>

이에 대해 김민정 교수는 16일 한겨레에 실린 칼럼<[시민편집인의 눈] 유권자는 충분히 똑똑하다>에서 "공교롭게도 이 기사는 ‘2021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미디어감시연대’가 선정한 좋은 보도 중 하나였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왔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미디어감시연대는 해당 기사를 '서울시장 투표 전날 유권자가 봐야 할 4가지 보도' 중 하나로 꼽았다. 미디어감시연대는 이 기사가 '집값 안정', '자산 불평등 완화',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중심으로 거대양당 후보 부동산 공약의 타당성과 현실성을 점검한 동시에, 소수정당·무소속 후보의 주거정책까지 검증했다며 "부동산정책에서 필요한 내용이 충분히 담겼는지 확인할 수 있는 보도"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생태탕과 페라가모 공방을 중계하는 건 쉽다. 정책과 공약을 검증해 비교평가하는 일은 시간과 품이 드는 어려운 일"이라며 "선거법이 언론의 이런 당연한 수고를 오히려 위축시키는 핑계나 구실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 묻게 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판단주체에 따라 엇갈리는 선거법 적용 결과에서 문제를 찾았다. 김 교수는 심의위 결정에 대해 "취지는 알겠다. 특정 후보에게 유리 또는 불리하게 평가단을 구성·운영해서는 안 된다"며 "지당한 말이지만 유불리 여부를 심의위가 전자저울에 올려 무게 재듯 감별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서 100%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평가의 신뢰성·객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을 함께 보도하지 않았다'는 심의위 결정에 대해서는 "한겨레는 해당 기사 첫머리에 평가주체, 기준, 대상, 참여한 전문가 5명의 이름과 소속을 모두 명시했다"며 "심의위는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고 본 모양인데, 어떤 정보가 더 추가되어야 신뢰성·객관성이 입증되는 것일까"라고 따져 물었다. 다음은 '주의' 조치를 받은 한겨레 기사 내용 중 일부다.

"‘집걱정없는 서울만들기 선거네트워크’(집걱정없는서울넷)가 <한겨레>와 공동 기획으로 서울시장 후보들의 부동산·주거 공약을 점검한 결과"

"이번 평가는 지난 26일까지 두 후보가 공식 발표한 공약과 언론인터뷰·토론회 등에서 언급한 공약을 대상으로, △집값 안정 △자산불평등 완화 △세입자 보호 강화 △공공임대주택 확대 등 네가지 기준을 두고 평가했다.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박은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 박인숙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생경제위원회), 김솔아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등이 ‘정책 평가단’으로 참여했다."

한겨레 16일 <[시민편집인의 눈] 유권자는 충분히 똑똑하다>

또 '후보자별로 순위·등급을 정하는 방법으로 서열화'해 문제라는 심의위 판단에 김 교수는 "누가 어떻게 판단했는지 밝힌다면, 점수를 부여하지 못할 이유란 뭐란 말인가"라고 했다. 김 교수는 "가령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체에서, 아니면 반대로 전국철거민연합에서 각 후보자의 부동산 정책에 90점, 75점, 50점을 줬다는 기사가 나오면 유권자의 판단에 잘못된 영향을 미칠까? 유권자를 너무 얕보는 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김 교수는 "게다가 '서열화'의 의미도 불분명하다. 해당 <한겨레> 기사는 두 후보의 공약이 부동산 정책의 방향성(예: 집값 안정)에 부합하는 정도를 ‘대체로 부합(○)’, ‘일부 부합(△)’, ‘상충(X)’, ‘파악 어려움(?)’으로 나눠 표기했다"며 "필자는 항목별 적합성 정도를 표기한 내용으로 읽었는데, 심의위는 ‘후보자별로 서열화한’ 방식으로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책을 검증하는 보도가 더 많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면 법과 제도, 사회 분위기도 그걸 더 할 수 있게 유도하는 쪽으로 형성되어야 할 것"이라며 "누구에게도 책잡히지 않을 ‘안전한’ 기사만 유권자들이 바랄 것 같진 않다. 유권자들은 충분히 똑똑하다. 너무 걱정 마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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