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유재우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이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관련된 법 개정을 단행할 시간이 얼마 없다”면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절실한 관심이 없다"고 토로했다.

발의된 개정안이 꽤 있지만 논의가 없다는 것으로 유 본부장은 "통과 키를 쥔 민주당에 비판의 화살이 가야 한다"고 밝혔다. KBS는 오는 8월 이사회 이사진 교체와 12월 차기 사장 선임이 예정돼 있다. 사실상 7월 시작되는 이사 선임절차는 1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유 본부장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공영방송을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언론개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꼽는 언론개혁 과제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찾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가짜뉴스 규제 등으로 현장의 목소리와 달랐다. 유 본부장은 "당내 일정, 시장 보궐선거, 원내대표 선출, 정권 재창출 움직임에만 신경 쓸 뿐 진짜 언론개혁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유 본부장은 "국회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사회단체와 연대 투쟁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행 방송법상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의 권한은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에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은 관행적으로 국회 추천 여야 7대 4 비율로 이뤄져 왔다. 21대 국회에서는 그동안 관행으로 이뤄진 정치권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배제·완화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이 발의됐다.

민주당 정필모, 정청래, 전혜숙 의원과 국민의힘 박성중, 허은아 의원이 각자 다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지난 2월 국회 공청회가 한 차례 열렸을 뿐 논의는 사실상 멈춰있다.

지난달 KBS·MBC·EBS 구성원들은 6월까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라며 요구안을 만들어 발표했으며 언론노조는 13일 국회 앞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입법을 위한 총력투쟁을 선포했다.

미디어스는 12일 유재우 KBS본부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일문일답이다.

미디어스는 12일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실에서 유재우 본부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사진=미디어스)

Q. 6월까지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KBS는 올해 8월 이사진이 바뀌고 12월 사장을 뽑는다. 사실상 이사선임절차가 7월에 시작되는데 시간이 얼마 없다. 혹자는 올해 논의를 거쳐 내년 대선 당선자가 추진토록 하겠다는 계획을 말하지만, 올해 아니면 안 된다. 지금 못하면 대선 이후 한다는 보장도 없다.

Q. KBS 경영진이 수신료 현실화를 추진하고 있다

사측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수신료 현실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지배구조 개선 이슈가 맞물려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수신료 인상 논의 때마다 공영방송의 공정성 시비는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KBS를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게 만드는 이사회와 사장 선임 구조를 바꾼다면 공정성 시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저항을 보더라도 KBS가 공정성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할 시점이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배구조 개선이다.

Q. 주요 쟁점은 무엇인가

정치적 독립성이다.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이 방송통신위원회가 정당추천을 받아 이사를 추천해 온 관행을 깨뜨리자는 게 핵심이다. 정치적 독립성 강화를 법 개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사장선임 절차에는 국민 참여로 이를 담보할 수 있다. 정당이 포기한 이사추천 권한을 국민에게 주고, 사장 선임 절차에 국민을 참여하게 해야 정치적 입김이 줄어들 수 있다고 본다.

Q. 현재 이사추천 방식의 문제는

일각에서는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는 게 왜 나쁘냐고 질문한다. 주어가 틀렸다. 국회가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는 게 아닌, 정당이 여야 몇 대 몇으로 배정하고 있다. 국회가 추천한다고 하면 상임위 의결 등 투명한 과정을 거치는데 이런 과정 없어 ‘누가 물망에 올랐다’는 식이다. 자연스레 각 당에서는 KBS 이사로 들어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스피커를 추천한다. 적어도 이사 후보를 내는 과정을 투명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Q. 정치권 추천으로 구성된 이사회의 문제점은

전 세계적으로 공영방송 이사를 정당에서 전적으로 추천해 뽑는 사례가 없다. 또한 정치적 후견주의에 기반해 이사회가 구성된 뒤 KBS 고난의 역사가 시작됐다. 정연주 전 사장을 해임시킨 2008년 8월 8일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이사회 구성이 바뀌었다. 청와대 의지에 따라 이사회가 공영방송 사장을 해임하는 도구로 쓰인 것이다.

이사회가 직접 방송·뉴스프로그램에 개입하는 일도 있었다. 2015년 이인호 전 이사장의 경우 프로그램 ‘광복 70주년 특집프로그램-뿌리깊은 미래’를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하려 했고,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의 일본 망명 요청설’ 관련 보도를 문제 삼으며 이사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이사들이 최고의결기관이라는 빌미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정당에 따라 삼각편대를 이뤄 KBS를 갈라놓는다. 갈등을 겪을 때마다 신뢰가 떨어지고 보도는 기계적 균형에 머물게 된다. 정당의 눈치를 보고 교감하는 이사, 이사 앞에서 꼼짝 못 하는 사장, 사장의 지시를 따르게 되는 보도본부장. 정치후견주의가 만든 구도다.

Q. 지난달 26일 언론노조 지상파 3사 조합원은 ▲정치적 독립성 ▲선임과정 공개 ▲사장 임명제청 국민참여 ▲지역·환경·노동·교육·사회적 약자 등 공영방송 이사 자격요건 명문화 등이 담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요구안을 발표했다

KBS, EBS. MBC 본부장들이 언론노조와 함께 합의한 문구다. 법안 세부 운영 방안에 대해 각자 ‘어떤 법안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상파 3사가 각자 원하는 안을 말하다 보면, 공영방송에 대한 지배권을 놓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좋은 빌미가 될 수 있다. 또한 세부적인 법안 논의는 우리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세부 내용에 논의가 함몰되다 보면 진전이 없다.

Q. 지배구조가 다른 지상파 3사가 하나의 요구안을 발표했다

모두 사장, 이사 추천과정에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투명성’을 꼽았다. 물론 각사마다 사정이 다르다. KBS와 MBC는 보도기능이 중요하기에 ‘정치적 후견주의 배제’가 상당히 중요한 반면, EBS는 이사회가 아닌 방송통신위원회가 EBS 사장을 임명한다. 사장, 감사 선임 전부를 방통위가 하는 셈이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교육방송 사장임명에 방통위가 전권을 가지고 있는 건 문제다. 세 언론사 모두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최대한 공통점을 살려 요구안을 냈다.

Q. 발의된 개정안 중 KBS본부가 지지하는 안이 있는가

6월 말까지 개정돼야 8월 이사회 구성에 반영할 수 있다. 의원들이 내놓은 법안에 대해 사소한 이견, 구체적인 실현수단에 집중한다면 신속한 공감대를 만들기 어렵다. 의원들이 각 법안의 공통 요소를 뽑아 논의하는 방법을 기대하고 있다.

정필모 의원 법안에는 국민이 참여하는 사장 추천과정이 있다. 이는 전혜숙 의원 법안에도 있다.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정 의원 법안에는 이사 후보 의무 추천 분야로 여성, 청년, 방송·기술·경영 분야 각 1명(3명), 지역방송 분야 2명을 명시했다. 전 의원은 방송에 관한 전문성, 지역성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해 13명의 이사 중 시민단체의 방송미디어분야 추천 몫 2명을 명시했다. 특별다수제도 마찬가지다. 야당인 박성중 의원 안도 주장한다. 국민 참여, 특별다수제 도입 등은 여야를 넘나드는 공통 요소로 꼽을 수 있다.

Q.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안과 전혜숙 의원 안이 퇴보했다는 성명을 낸 바 있다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법안이기 때문이다. 박성중 의원안은 국회 여야 7대 6 추천 비율을 명시하고 있고 허은아 의원안은 여야 6대 6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지금의 방송법보다 후퇴하는 법안이다. 방송법 제46조에는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해 방통위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되어있지 정당에서 추천하라는 문구가 없다. 법에 근거하지 않은 관행을 공고히 하자는 건 퇴보다. 민주당 전혜숙 의원안도 이사회에 정치권 추천을 4대 3 비율로 추천하도록 명시해서 비판성명을 냈다.

Q. 국회 개정안 논의가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절실한 관심이 없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과 소통하다 보면 우려스럽다. 정필모 의원에게 발의한 법안 관련해 당내에서 가장 반대하는 대목이 뭐냐고 물었다. 당차원에서 논의된 바가 없기에 반대를 겪지 않았다고 답하더라. 이게 현실이다. 의원들은 당내 일정, 시장 보궐선거, 원내대표 선출, 정권 재창출 움직임에만 신경 쓸 뿐 언론개혁에 관심이 없다.

KBS본부는 앞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있어 집권 여당을 강력히 비판할 거다. 여당은 언론노조에 ‘야당이 협조하지 않기 때문에 법안 논의를 진전 못 시킨다’고 말하지만, 여당이 먼저 내려놓겠다고 하면 야당이 반대할 근거가 없다. 의지의 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고 이용마 기자를 만나서, 방통위 논의에서도, 정책위의장 협약에서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고 있다. 개정안 법안 통과 키를 가진 민주당에 비판의 화살이 가야 한다고 본다.

Q, 국회 앞에서 총력투쟁을 예고했다

국회 과방위가 한가지 착각하는 게 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논의는 과방위가 하지 않으면 비판받을 일이다. 국회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과방위원장, 과방위 간사들을 차례로 만나 시급성, 방향성을 얘기할 계획이다. 과방위 의원들 지역구에 현수막을 걸고, 각 사회단체와 연대 투쟁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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