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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빌레라’- 엔드게임을 대하는 자세, 끝나지 않은 삶에 대한 오롯한 사랑[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4.13 18:46

[미디어스=이정희] tvN <나빌레라> 7회, 심덕출(박인환 분) 씨가 '알츠하이머'였음이 드러났다. 기승주가 데려간 발레단에서 잠시 공연을 선보이며 자신감을 되찾은 덕출 씨는 때문에 아내와의 약속에 늦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덕출 씨가 흘리고 간 수첩. '할아버지는~'하며 채록이 집어 든 수첩 제일 앞장에는 심덕출 씨의 사진과 연락처 그리고 '나는 알츠하이머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74살, 더 나이 들기 전에 자신의 꿈을 향해 '날아보고 싶다'던 노인의 소원은 7회를 통해 국면을 달리한다. 그저 더 나이 들기 전이 아니라,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그리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닫고 나선 길이었던 것이다. 그간 왜 그렇게 덕출 씨가 조급해했는지, 비지땀을 흘리며 홀로 연습했는지가 보다 명확해진다. 나이가 들어 시간이 없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알츠하이머'라 시간이 없는 건 다른 것이니까. 

엔드게임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엔드게임, <나는 나답게 나이 들기로 했다>의 저자 이현수 씨의 말처럼 어벤져스 시리즈의 부제가 아니다. 처음 '늙음'을 감지한 그 순간부터 시작돼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각자의 게임이다. 

기억, 운동, 감각, 언어, 신체 등에서 예전에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오류’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우리는 엔드게임에 들어선 것이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공간이 ‘시간’으로 재단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자동적으로 들어선 이 게임의 시간에 그 누군들 억울하지 않으랴. 더구나 그 엔드게임의 ‘엔딩’은 공평하지 않다.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것도, 가진 재산이 많다는 것도, 엔딩은 불공평해서 공평하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공원 벤치에 앉은 덕출 씨 눈앞에 살아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의 마음은 처음 발레 공연을 보고 혼자 거리에서 다리를 쭉쭉 뻗던 그 어린 시절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치매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74살 덕출 씨가 울먹인다. '아버지, 어머니, 나 어떻게 해요.'

엔드게임의 노년기는 불가항력일까? <나는 나답게 나이 들기로 했다>는 이에 대해 '태도'를 말한다. ''못 먹어도 고'의 상황에 놓인 자신을 충분히 자각하고 아쉬워하고 나면, 오히려 용감해지고 단단해진다고 한다. 선택의 폭이 좁아지면 훨씬 더 집중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더 치열하게 밀도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치열하고 밀도 있게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야심 차게 발레를 시작하는 노년의 심덕출 씨를 보며 막연하게 그 꿈의 앞길이 그리 밝지만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말 그대로 '엔드게임'의 여정에서 심덕출 씨에게 무슨 그리 밝은 미래가 있겠는가. 거기에 조금씩 무언가를 잊는 모습을 보여주는 덕출 씨의 일상을 통해 <나빌레라>가 결국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구나 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7회 마지막, 수첩에 적힌 '나는 알츠하이머입니다'를 통해 <나빌레라>는 지금까지 치매를 다뤄왔던 다른 드라마와 다른 '화법'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게 된 덕출 씨는 공원에 앉아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자신에게 들이닥친 병마에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암보다도 더 무서운 진단인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덕출 씨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발레를 시작한 것이다. 자신에게 닥친 병에 충분히 안타까워하던 덕출 씨는 남은 생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 ‘집중’의 결과물이 발레였다. 알츠하이머에 걸렸지만 밀도 있는 삶을 향한 여정이다. 

동네 아줌마가 '춤바람'이라고 하는 발레를 74살 노인이 선택하는 게 어디 쉬웠을까. 당장 7회에서 '주책'이라는 말에 덕출 씨가 움츠러든다. 채록이는 연습만 해도 빛이 나는데, 덕출 씨는 연습복을 입은 모습부터가 스스로 '무안'하다. 나이 듦은 추레하다. 스스로를 위축시킨다. 그저 존재만으로 빛나는 젊음과 다르게 무엇하나 뽀대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덕출 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운전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따라 차도 손녀에게 선사한 덕출 씨다. 그래도 식전 댓바람부터 연습실로 나선다. 선생님 채록이가 없어도 온종일 땀을 흘리며 연습을 한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제 아무리 연습해도 구부러지지 않는 허리와 천근만근인 다리, 하지만 덕출 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저 나이가 들어 꿈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아서이다. 알츠하이머란 그 속수무책의 시간, 덕출 씨는 그냥 앉아서 당하는 대신 평생의 ‘로망'에 자신을 던진다. 엔드게임의 시간을 맞이하는 덕출 씨의 태도이다. 엔드게임의 시간은 우리에게 공평하지만 그 시간이 어떤 시간이 되는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렸다고 드라마는 전한다. 

거기에 더해 나이 듦의 미덕도 놓치지 않는다. 나이가 드는 건 모든 게 다 나빠진다는 것이다. 신체적 기능도, 정신적 기능도 약화된다. 하지만 딱 하나 좋아지는 게 있다고 한다. 바로 '지혜'이다. 다리를 다쳐 다가올 콩쿠르에 나갈 수 없어 좌절하는 채록. 기승주도, 은 교수도 달래보지만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채록의 마음을 달래기가 쉽지 않다. 그때 덕출의 조언이 채록의 불안을 다독인다. 다음이 있다는 말. 그 평범한 말에 실린 덕출의 삶이 주는 '지혜'가 채록에게 한 발 물러설 용기를 준 것이다. 

<나빌레라>가 빛나는 건, 노년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어서이다.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퇴적층이 되어가는 노년층을 삶의 지혜가 있는 사람들로, 여전히 살아갈 꿈을 꾸는 사람들로 그린다. 알츠하이머라는 최종 진단 앞에서도 말이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

나이 듦은 본의 아니게 KTX에서 무궁화호로 갈아타는 상황과도 같다. 심지어 그 갈아탄 열차의 종착지가 아주 다르다.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닌 노년의 열차. 하지만 그 여행길을 어떻게 가는가는 탄 사람에게 달렸다고 <나빌레라>는 말한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과감하게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본인 역시 지난 1, 2년 사이 열차를 갈아탄 듯하다. 덕출 씨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도 무모하게 용감해졌다. 나에게 찾아온 인연을 받아들였고, 그저 '하고 싶어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발레를 향한 덕출 씨의 눈빛에 공감 백배이다. 그건 '사랑'이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이다. 

가파르게 늘어나는 노년층, 사회적 시스템은 나이 듦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저 시스템을 기다리고 있을 일이 아니다. 다가오는 새로운 여정에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빌레라>는 그저 치매 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이 듦의 시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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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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