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프레임입니다. 사물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볼 것인가. 그것을 어떠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선택이야말로 중요한 시대입니다.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주제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속 알맹이보다는 포장이 중요하다는 얄팍한 눈속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약점보다는 가치를 증명하는 방향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것. 자신을 알리고 장점과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에 있어서, 어떻게 의제를 설정하고 다른 이와 경쟁시키고 우월함을 증명하느냐의 전략에 대한 이야기이죠. 정치인들이 여론을 주도하기 위해 힘쓰고, 기업들이 제품을 알리기 위해 광고 전략을 짜고, 연예 기획사들이 홍보 회의를 하며 고민하고, 하다못해 호감 있는 이성에게 자신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생각하는 것도 결국 같은 고민에서 출발하는 것이거든요.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MR제거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원더걸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 진출에서 돌아와 새롭게 시작하려는 그녀들이 빠져버린 위험한 함정. 그리고 결코 해결하기 쉽지 않은 프레임이 이미 만들어진 것에 대한 우려이죠. 원더걸스와 JYP로서는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나가고 있거든요. 바로 가창력 논란.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무수히 많은 장점들을 단번에 무시해버릴 수 있는 논란의 틀에 다리가 묶여버린 거에요. 원더걸스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와 매력적인 퍼포먼스를 구사하는 아이돌 문화의 선도주자로 바라볼 것인가, 가수의 기본인 노래도 제대로 못하는 자격미달의 시시한 아이돌 그룹으로 볼 것인가 하는 구분이죠.

문제의 중심은 그 MR 제거 영상이 문제 제기의 출발이라고 의심받던 연예가중계에서 방송된 것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방송사 쪽에선 그런 영상을 방송한 적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었고, 방송 내용을 확인해보아도 원더걸스에 관한 내용에서 MR제거나 그와 연관된 내용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논란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실제로 여러 곳에서 유포되고 많은 이들이 확인한 영상이 일부러 원더걸스에게 불리하게 조작된 것인지, 이 영상과 출처가 과연 어디인지를 따지는 것 역시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영상이 사실이냐 아니냐, 이 정보가 정확한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호응하거나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는 이유와 그 방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바로 원더걸스에 관한 모든 기사나 화제의 중심이 가창력으로 쏠린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죠. 누가 그 동영상을 제작하고, 악의적으로 유포하고,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는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런 과정의 부당함을 밝히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은 결국 이를 둘러싼 모든 소란의 핵심을 확실하게 극복하는 방법밖에는 없어요. ‘원더걸스는 노래를 못한다.’는 이번 MR논란의 핵심을 넘어서는 또 무언가의 틀을 제공하는 것밖에는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원더걸스는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그룹이 아니거든요. 굳이 나가수급의 가수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활동하고 있는 많은 아이돌 그룹들 중에서도 원더걸스의 노래 실력은 여전히 의문부호가 잔뜩 찍혀있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메인보컬인 선예와 예은이 있다고 하고, 다른 멤버들의 실력도 좀 더 성장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녀들이 한때 대한민국의 가요계를 평정하고 아이돌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힘은 가창력에 있지 않아요. 그 말은 즉 비교의 기준, 장점을 판단하는 것에 있어서 가창력을 우위에 둔다면 원더걸스는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둘 수 없다는 거죠. 이건 반박을 위한 또 다른 MR 제거 영상을 제공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겁니다.

하물며 아쉽게도 그러기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이번 MR 논란이 시작되면서 원더걸스가 복귀를 위해 공들였던 수많은 포인트들이 힘을 잃고 있어요. 미국생활에서 얻었던 소중한 경험들, 해외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얻은 앨범과 무대의 완성도, 복고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변신 등등. 많은 장점들을 이미 복귀와 함께 다양하게 제시하고 했지만 결국 그래봐야 너희는 노래 못하는 아이들일 뿐이라는 지적으로 묻혀버렸어요. 아이돌이 다 그렇지라는 씁쓸한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동안의 준비와 노력을 가창력의 약점을 덮고자 하는 꼼수로 다운그레이드 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JYP와 원더걸스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었던 프레임에 갇혀 버렸어요.

게다가 나가수를 필두로 아이돌이 지배하는 가요계에 대한 대중의 지겨움과 피로도를 호소하고 있는 현 시점은 이런 류의 가창력 논란은 더욱 치명적입니다. 가수란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로 돌아가고자 하는 흐름은 불후의 명곡 시즌2가 만들어지며 내세운 명분처럼 이제 아이돌도 노래를 잘한다는 것을 증명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고, 이번 MR 논란과 함께 원더걸스는 이런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대표적인 노래 못하는 아이돌로 지적받고 있거든요. 그나마 같은 방식으로 비난받았던 카라는 일본에서의 활약으로 그 충격을 완화시키며 무난하게 국내활동을 마무리했지만, 원더걸스의 미국에서의 아쉬운 성과는 이런 도피처조차도 제공해주지 못해요.

이제 남은 것은 팬덤을 중심으로 하는 지긋지긋한 편들기와 편가르기밖에 없습니다. 이미 어디서 MR 영상을 조작했는지에 대해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고, 각종 영상과 방송 내용으로 노래가 늘었는지 오히려 퇴보했는지를 따지고, 미국에서 뭘 하고 온 것인지 폄하하고 비꼬는 이들도 다시 눈에 띄고 있죠. 그러는 와중에 원더걸스가 준비한 앨범 내의 다양한 시도들, 그녀들만의 매력을 발견하기 위한 긍정적인 에너지는 감소하고 있어요. 어떻게 이 난제를 해결할 것인가. JYP와 원더걸스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오랫동안 미루었던 피할 수 없는 문제이구요. 미국진출도 좋고, 색다른 컨셉과 무대도 좋지만 원더걸스는 이것부터 확실하게 해결했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지금의 논란은 이 숙제를 소홀히 했던 벌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