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유럽의약품청(EMA) 고위관계자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과 드물게 보고된 특이 혈전증과의 인과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개인 의견'을 전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게 '명백하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언론은 AZ 백신-혈전 부작용 연관성에 대해 "명백하다" "분명하다" 등의 제목을 뽑아 보도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백신이 영국의 일상을 돌려줬다며 "부럽다"고 한 조선일보의 경우 1면과 2면을 통해 AZ백신과 혈전 간 연관성이 분명하다는데 대량 국내 접종이 예고돼 있다며 정부 '백신전략 실패'를 거론하고 있다.

4월 7일자 조선일보 1,2면 갈무리

6일(현지 시각) EMA 백신 전략 담당자 마르코 카벨레리는 이탈리아 현지 언론 '일 메사제로'와의 인터뷰에서 "AZ 백신과 매우 드물게 보고된 특이 혈전증과의 인과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제 의견으로는 (혈전증과) 백신과 관련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무엇이 이런 반응을 일으켰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면서 향후 EMA가 연관성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원인은 모르지만 연관성은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카벨레리 인터뷰 직후 EMA 대변인은 안정성위원회가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다며 7~8일 중 검토가 완료되는 대로 관련 브리핑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카벨레리 인터뷰 발언을 인용한 국내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EMA 공식 입장은 '미결론'이라는 부분을 제목에 함께 기재한 기사들도 있지만, 대체로 이들 기사 제목은 '연관성이 명백하다'는 카벨레리 발언을 큰 따옴표로 처리했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7일자 지면 1, 2면에 해당 소식을 보도하면서 '정부 백신전략 실패'를 거론했다. 조선일보는 1면 기사 <"아스트라와 혈전 연관성 분명하다">에서 카벨레리 발언에 대해 "일부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AZ백신을 맞은 후 혈전 부작용 사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어서 주목된다"며 "최근 영국과 독일 등 유럽에서는 AZ백신을 맞은 후 혈전 부작용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면 <아스트라 접종 비상, 2분기 대상자만 770만명>(온라인 기사 제목 : 아스트라, 혈전과 연관있다는데… 국내 2분기 770만명 맞는다)에서 "코로나 '4차 대유행' 기로에 놓인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백신 전략'이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며 "특히 EMA 고위 관계자가 AZ백신과 혈전 생성과의 연관성을 인정했다는 취지의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AZ 백신 의존도가 높은 국내에서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AZ 백신을 개발, 수천만 명에게 대규모 접종을 한 영국에서도 30세 미만 젊은층에 대한 AZ 접종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며 "문제는 우리도 2분기에 상당수 젊은 층이 AZ 백신 접종 대상자라는 점"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국내에서도 20대 남성 구급요원 한 명에게서 AZ 백신 접종 후 혈전 증상이 나타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선일보는 AZ백신과 혈전증에 대한 EMA측 발표에 근거해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조은희 코로나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후관리반장 발언을 인용, "우리 백신 접종 계획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영국처럼 아주 제한적으로만 AZ 접종을 멈추되 다른 연령층에 대해선 접종을 계속할지, 독일·프랑스 등 일부 국가들처럼 55~60세 미만 전체에 대해 접종을 중단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나라는 충분한 물량의 백신을 조기 확보하는 데 실패해 2분기 접종 대상자의 70% 가까이가 AZ 백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EMA는 지난달 AZ 백신 접종 유지를 권고하면서 "백신의 이득이 혈전 위험성보다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EMA는 50대 이하 접종자에서 파종성 혈전 7건, 뇌혈전증 18건이 발생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혈전증의 원인이 백신이라고 가정하더라도 혈전 위험성이 0.000085%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득이 훨씬 크다"고 밝힌 것이다.

지난달 18일 한겨레는 기사 <왜 유독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만 문제삼을까>에서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 자료에 따르면, 2월 28일까지 화이자 백신과 AZ 백신이 접종 후 혈전증 통계에서 100만명당 2건대(화이자 2.15건, AZ 2.78건)로 통계상 유의미한 차이가 없고, 이는 백신을 맞지 않은 일반인 중에서 혈전증이 발생하는 비율에 견줘봐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7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언론이 백신에 대한 이해가 너무 없는 상태로 계속 기사를 낸다"며 "보통 백신 이상반응 인과관계가 증명되더라도 10만명에 1명 내지 발생하고, 조기진단 시 회복이 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일단 접종을 하고 주의깊게 살펴보라고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다만 지금 상황은 대규모 접종을 하다보니 숫자가 많아 보이는 것인데, 10만명당 1명 꼴이라면 접종을 하는 게 이득이 훨씬 크니까 주의하면서 접종하라 권고하는 것"이라며 "백신 이상반응에 대한 통상적 접근방식에 대해 언론이 접근해줘야 한다. 누구 한 명 얘기했다고 벌써 백신접종이 잘못됐다, AZ에 문제가 있다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어떤 '이익'과 '위해'에 대한 저울을 재서, 이익이 훨씬 상회한다면 당연히 접종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교수는 "국내에서는 아직 1명밖에 발생 안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100만명당 1명인 것"이라며 "한국은 혈전 발병률이 높지 않은 국가이기도 하니까, 한국 통계를 가지고 다시 한 번 분석을 해야되는 것이다. 외국에서 얘기 나올 때마다 무턱대고 이런 식으로 보도하는 건 비판을 위한 의도적 기사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엄중식 가천대 의대 감염병과 교수는 "아직 EMA의 공식 의견 표명이 없고, 접종 전략 수정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짚었다.

2일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 <[특파원 다이어리] 백신이 돌려준 영국의 일상… 부럽네요>

한편, 지난 1일 조선일보는 기사 <부럽네요, 백신이 돌려준 영국의 일상>에서 "코로나 3차 유행 조짐에 봉쇄령을 강화하고 있는 유럽 대륙 국가들과 달리 백신으로 무장한 영국이 일상을 되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영국인들에게 평소의 삶을 되찾아준 건 백신"이라며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을 시작해 3090만명(전체 인구의 46%)이 최소한 백신 1회 접종을 마쳤고, 잉글랜드 인구의 54.7%가 코로나 항체를 갖고 있다는 영국 통계청 발표를 보도했다. 영국에서 지난달 24일까지 AZ 백신을 접종받은 인구 수는 1800만여명이다.

이 기사는 '부럽다'는 제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온라인상에서는 영국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통해 상황의 반전을 이룬 건 맞지만, 확진자 통계나 통제 상황 등에 비춰볼 때 '부럽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는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일었다.

해당 기사가 지면에 실린 2일 기준으로 영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4백 35만여명, 누적 사망자 수는 12만 6천여명이었다. 일일 신규확진자는 4천4백여명이었다. 같은 날 한국의 누적 확진자 수는 10만 4천여명, 누적 사망자는 1천 7백여명이었다. 일일 확진자 수는 550여명이었다. 2019년 기준으로 영국 인구수는 6천 6백만여명, 한국 5천 1백만여명이다.

4일 케빈 그레이(Kevin Gray) 영국 서섹스대 교수(정치경제학·한반도정치 연구)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조선일보는 영국의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나는 영국에 있는 것보다 한국에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촌평했다. 같은 날 영국 출신 프리랜서 기자 라파엘 라시드(Raphael Rashid)도 트위터에 "이 기사는 너무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물론 영국 내 백신 상황은 좋은 소식이지만, 기사에서처럼 영국이 '일상' 생활로 돌아가는 길은 사실 꽤 멀다"며 "영국 가족과 모든 친구들은 내가 한국에서 비교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음을 부러워한다"고 밝혔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