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SBS 사측이 올해 말 새 사장 선임절차를 앞둔 상황에서 2일 노사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했다. 노사 단체협약의 핵심은 대주주의 소유경영 분리 원칙에 따른 사장 임명동의제다.

박정훈 현 사장 임기는 2022년 3월 26일까지다. 차기 사장은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선임되지만 통상 SBS는 정기주총 전년도에 단행되는 정기인사에서 신임 대표이사 사장을 임명해왔다. 2016년 12월 임명된 박 사장은 임명동의 투표가 처음 시행된 2017년 11월, 두 번째 시행된 2019년 11월 대주주가 단독 후보자로 발표한 뒤 임명동의투표를 거쳐 선임됐다.

2017년 10월 13일 당시 윤석민 미디어홀딩스 부회장, 박정훈 SBS 사장, 윤창현 언론노조SBS본부장이 서명한 합의. (사진=SBS노보)

‘사장 임명동의제’는 대주주의 방송 편성 및 경영 개입을 막을 수 있는 장치로 평가받는다. 2017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윤세영 회장이 2015년 보도본부 간부들을 불러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지 말고 도우라’는 취지의 지시를 거듭했다고 폭로하며 윤 회장 일가의 완전한 퇴진을 요구했다. 윤 회장은 사내방송을 통해 회장직에서 사임한다고 밝혔고, 윤석민 당시 부회장 역시 SBS미디어홀딩스 비상임 이사직만 맡고 나머지 직위를 사임한다고 밝혔다.

그해 10월 13일 대주주의 소유경영분리 원칙을 제도화한 것이 ‘사장·최고책임자 임명동의제’다. SBS 대표이사 사장은 재직 인원의 60%, 편성·시사교양 최고책임자는 각 부문 인원의 60%, 보도 최고책임자는 50% 이상이 반대하면 임명할 수 없는 방식이다. 2년 뒤인 2019년 SBS본부는 '재적 60% 반대를 재적 최소 40% 찬성'으로 바꾸고 투표 결과 전면 공개 등 임명동의제 수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사장 임명동의 투표 결과를 두고 SBS 내에서는 ‘재적 인원의 60% 반대’라는 기준 탓에 박 사장의 연임이 가능했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SBS가 임명동의제를 도입한 뒤 여러 방송사에서 ‘보도국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했다. MBC는 2018년 6월부터 노사단체협약에 따라 보도국장, 시사교양본부장, 라디오본부장, 편성국장 등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시행하고 있다. YTN은 2018년 8월 첫 보도국장 임명동의제를 시행했다. KBS도 노조 주관 하에 통합뉴스룸국장, 시사제작국장 등에 대한 임명동의투표를 시행하고 있다.

규제기관에서도 재허가를 통해 대주주의 방송 개입 여지를 차단해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7년 SBS 재허가 심사 권고 사항으로 “2017년 10월 12일 체결한 노사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명시했다. 지난해 SBS 재허가 조건은 ▲최다액출자자 등에 유리한 보도·홍보성 기사 등을 통해 방송이 사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할 것 ▲SBS 콘텐츠 경쟁력 제고를 위한 최다액출자자 투자 등의 기여방안을 마련할 것 등이었다.

지역민방노조는 SBS의 임명동의제 폐기가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최희택 지역민영방송 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은 “임명동의제는 방송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대주주가 사장을 바로 임명한다면 이는 소유경영분리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어 “SBS가 어렵게 임명동의제를 시행한 뒤 지역 민영방송들은 임단협에 사장 임명동의제를 반영하려고 노사간 협의 중에 있다”며 “SBS의 단협 해지 통고는 이런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지노협 관계자는 “사장 임명동의제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도”라며 “지역민방에서도 보도국장 직선제 도입, 국장 신임평가, 사장 추천제, 사장 임명동의제도 등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일어나고 있지만 쉽지 않아 SBS의 성과가 의미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관리 감독기구인 방통위가 사장 임명동의제를 명문화하고 실무적으로 처리되는지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협 해지 통고는 SBS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SBS에 임명동의제가 도입됐던 상황을 반추해 보면 사주에 의한 방송 독립성 침해, 제작 자율성 훼손 등이 구체적인 사실로 드러났던 때였다. 임명동의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단체협약 형식으로 도입됐지만, SBS가 시청자와 한 약속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SBS는 임명동의제 도입 이후 이전처럼 사주가 SBS 보도에 개입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지 않는 등 개선 효과가 있었다”며 “긍정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왜 폐지하려는지에 대해 SBS 사측은 시청자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고, 방통위는 권고 사안이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지 규제기관으로서 감독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사측의 통고에 이해충돌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 처장은 “박정훈 사장은 임명동의제를 통과해 임명된 당사자로서, 본인의 연임 여부가 달린 투표가 6개월 남은 상황에서 제도를 바꾸는 건 이해충돌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임명동의제를 통해 선임된 사장이 본인의 선출 근거를 폐기하겠다고 했을 때는 이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사측은 2일 노동조합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하며 “단협이 소멸되면 노동조합 활동 보장과 관련된 조항의 효력은 없어지겠지만 이와 상관없이 소유경영 분리와 공정방송에 대한 회사의 원칙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노조는 마치 ‘경영진 임명동의제’가 공정방송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회사 역시 본부장 중간평가제,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과 공정방송 정신에 반하는 행위를 한 자에 대해 징계를 요구할 수 있는 편성위원회의 권한, 보도의 공정방송실천협의회, 전 부문 보직자에 대한 전직원들의 상향평가 등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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