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에서 민폐녀로 놀림 받고 비판받던 여러 다양한 여배우들을 익히 만나왔습니다. 추노의 이다혜가 그런 이유로 끝날 때까지 시달림을 당했고, 최근에도 계백의 한지우, 심지어 공주의 남자의 문채원도 등장 초반에는 민폐녀라는 호칭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의지도 능력도 생각도 없이 그저 별다른 존재감도 없이 화면에서 공간만 차지하고 있으면서, 때마다 상황의 변화에 휩쓸려 주위에 피해만 주는 여자. 그래서 시청자들의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원흉. 뿌리깊은 나무의 여자 출연자 중에서 가장, 아니 여배우 중에서 유일하게 극의 중심에 있는 신세경도 이런 민폐녀라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실 사극에서의 이런 민폐녀라는 아픈 지적은 배우 본인의 연기력 부족이나 사극이란 특이한 대사처리나 연기 방법의 준비와 소화능력 부족의 탓이 큽니다. 평소와는 다른 대사톤, 감정표현은 능숙하게 적응하지 못하면 그 어색함이 두드러지게 나오기 마련이거든요. 민폐녀로 낙인찍혔던 수많은 이들이 우선적으로 지적받았던 것이 연기력이었다는 것은 그녀들이 아예 능력 없는 배우라기보다는 사극에 적합하지 않은 배우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준비가 부족하면서 무슨 염치로 사극에 나왔냐는 비판의 다른 표현이었죠.
뿌리깊은 나무의 신세경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세종대왕, 복수의 강렬함을 뽐내던 똘복이에 비해서 그녀가 맡았던 궁녀 소이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내세울 수 있는 장면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세종의 옆에 가만히 서 있다가, 가끔씩 명에 따라 이리저리 심부름 역할만을 수행하는 모습만 그려질 뿐, 별다른 특징도 개성도 찾아보기 힘든 장면만 이어졌었죠. 게다가 충격에 의해 말도 할 수 없는 설정이다 보니 감정 표현이나 적극적인 활동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어요. 연기력이고 사극 적응이고를 떠나서,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여지가 몹시도 적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통쾌한 반전의 순간은 그동안 차근차근 쌓아온 갈망. 글을 쓰는 것으로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던 그 답답함과 먹먹함을 터트리는 그 1분의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더듬거리며 말하는 그 시간은 그야말로 그녀의 입모양 하나, 발음 하나하나에 심장 떨리는 심정으로 집중하게 했던 순간이었어요. 그것은 단순히 그 장면 하나의 급박함과 간절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녀의 말하고자 하는 의지는 세종의 집념과 의지의 소산인 한글의 발음이 구현되는 것과 겹쳐집니다. 그녀의 입으로 내뱉은 이름 두 글자에는 그녀를 그토록 괴롭혔던 옛날의 악몽 때문에 스스로를 숨기고 살아야했던 참혹했던 과거를 극복하고자하는 의지가 드러납니다. 담이가 아닌 소이로 살아야만 했던 그 괴로움. 힘들게 더듬거리며 말한 그녀의 이름은, 소이의 단 두 글자 이름에는 이렇게 너무나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