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가 순식간에 절반이 지났다. 지금까지 뿌리깊은 나무는 주로 인물들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워낙 짧지만 굵었던 젊은 이도 송중기의 열연이 좋았고, 젊은 이도의 열연을 예고편으로 만들어버린 한석규의 본격 세종 연기는 시청자의 모든 관심을 독점하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그 모든 것이 배우의 역량 이전에 작가가 짜놓은 대본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작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상당히 많지만 새삼 놀란 것이 소이(신세경)이 왜 이 드라마의 주연 중 하나인지를 알게 된 때문이다.
먼저 훈민정음 서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절차로 어린백성이 니르고져 할빼이셔도 비로서 제뜻을 시러 펴디 못할노미 하니라”
소이의 역할은 지금까지 사건의 모티브 바깥에 방치되었다. 비록 아주 초기에 세종이 보낸 편지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 똘복이 가족사의 비극을 야기했다고는 하지만 이후 궁녀로서 생활하면서 세종을 돕는 천재인 기능적 부분만 강조됐을 뿐이다. 그리고 세종을 죽이기 위해 살아온 똘복이에게 결정적인 반전의 계기를 줄 것으로 기대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지만 훈민정음이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러서도 정작 소이는 똘복이의 복주머니에 정신이 팔려 세종의 깊은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 그러다가 역시나 글을 모르는 꺽쇠를 만나 자기를 알리기 위해서 비로소 세종의 발성법을 적극적으로 따라하게 되고, 가까스로 어릴 때 자기 이름을 발음하게 된다. 이것은 비록 소이와 채윤을 드라마틱하게 상봉시키려는 작가의 기교겠지만 그것이 한글의 완성단계에서 소이가 17년간 잊었던 소리를 찾게 된다는 교차점을 찾은 것은 기교 이상의 치밀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2화의 최대 화두였던 계언산의 상징성도 흥미롭다. 똘복과 담이는 어린 시절 말잇기놀이를 즐겼기 때문에 그 놀이를 하던 산이라는 암호가 가능했다. 그런데 그 산에서 채윤과 만나면서 소이는 그 어느 때보다 말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꺽쇠를 만나 어렵게 뱉은 한마디 자기 이름만이 아니 좀 더 말다운 말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말이 이어지는 산’이라는 의미에서의 계언산도 된다. 물론 술술 말을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하고 싶은 마음이 극대화되는 동기가 되는 것만으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마음이 장차 채윤에게도 이어져 글을 몰라 아비를 잃어야 했던 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장면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