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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암스테르담’- 공공의료의 본령 찾아 한발씩, 고전적 휴머니즘과의 재회[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3.29 22:49

[미디어스=이정희] 내게 처음 '미드'란 신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 드라마는 SBS에서 방영된 <ER>이었다. 1994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NBC를 통해 방영된 <ER(Emergency Room)>은 시카고 카운티 종합병원 응급실 배경의 의학드라마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드라마 속 의사들은 돈을 많이 버는 특별한 사람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ER>의 의사들은 달랐다. 그들은 고달픈 직장인들이었고,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자신의 직업적 이상을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내 눈길을 끌었던 건 부강한 국가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로 인해 의사들이 '도덕적'인 고뇌에 빠지는 모습이었다.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가 당연한 사회에 사는 사람에게 비춰진 '부'의 이율배반적인 민낯이었다. 

<ER>로부터 20년, 미국 사회는 달라졌을까? 

넷플릭스 <뉴 암스테르담>

그간 미국의 의료 현실은 달라졌을까?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뉴 암스테르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뉴욕 한복판에 있는 공립 병원 <뉴 암스테르담>. 그런데 왜 뉴 암스테르담일까? 영국 점령 이후 새로운 요오크라는 명칭의 '뉴욕'이라고 불리기 전, 네덜란드가 점령하여 네덜란드의 수도 이름을 따서 새로운 암스테르담이라 불렸다던 뉴욕. 즉 오래된 뉴욕의 지명이 병원 이름인 것처럼, 드라마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 병원인 벨에뷰 병원의 원장이었던 에릭 만하이머(Eric Manheimer) 박사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ER>로부터 20여 년 지나도록 미국 사회는 나아지지 않았다. 공공병원은 있지만 그곳에서 '공공 의료'는 쉽지 않다. 여전히 가난한 자들에게 의료보험은 그림의 떡이다. 항생제만 있어도, 기본적인 인슐린만 있어도 해결될 병고가 다리를 절단하고 응급실에 실려오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학교 기간제 교사가 가장 기본적인 당뇨병 치료제를 구하지 못해 쓰러지고, 의료 체계에서 방치된 환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교통사고를 내서 보험혜택을 받는 불법을 자행하기도 한다. 

여전히 <뉴 암스테르담> 응급실에 실려 오는 환자들의 첫 마디가 '보험이 없는데요'이다. 20년 전에도 보험이 없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던 환자들은 21세기에도 의료의 치외법권 지대에 놓여있다. <뉴 암스테르담>을 통해 우리가 확인하는 미국의 현실이다. 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이 그토록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에피소드들이 드라마의 시즌1, 2를 채운다. 

그렇게 돈이 있어야 치료도 받고 목숨도 보장받을 수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그것도 미국의 심장이라는 뉴욕 한복판에 오래된 공립병원이 있다. 하지만 말이 공립병원이지 이른바 '합리적 경영'을 앞세운 뉴 암스테르담은 영리 추구를 우선으로 하는 병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데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새로운 의료팀장으로 맥스 굿윈(라이언 이골드 분)이 부임한다.

새 의료팀장이 부임하자마자 한 일은 돈이 되는 수술에만 골몰하던 의료진을 '해임'하는 것이었다. 대신 병원장과 이사장이 대놓고 '그건 사회주의야'라며 난색을 표명하는 실질적인 조치들을 과감하게 실천해 나간다. 

공공의료의 본령, 뉴 암스테르담

넷플릭스 <뉴 암스테르담>

공공병원은 말 그대로 '공공의 의료'를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병원이다. 하지만 경영이란 목적이 내세워지며 공공 의료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사회주의라며 병원 운영진의 항의를 받은 맥스 굿윈의 시도는 사실 심플하다. 공공의료기관으로서 뉴 암스테르담의 본령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거리를 지나던 맥스 굿윈의 눈에 상처를 치료받지 못해 곧 썩어들어 갈 것 같은 다리로 고통받는 노숙자 여인이 눈에 띈다. 맥스는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 병원으로 데려오려고 한다. 치료비가 없다는, 보험이 없다는 그녀에게 말한다. 뉴 암스테르담은 공립병원이라고. 치료비, 보험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공립병원이지만 사람들은 보험이 없이는 치료받을 수 없는 미국 의료 체계에 길이 들어 공립병원인 뉴 암스테르담조차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맥스 굿윈은 뉴 암스테르담 카드를 만들어 뉴욕 곳곳에 돌린다. 그러자 이사회장은 반대한다. 뉴욕 시민들이 뉴 암스테르담이 공립병원인 걸 알면 병원이 망한다며. 

맥스 굿윈이 극중 에피소드를 통해 벌이는 일들은 사실 공립병원으로서 상식 차원의 일이다. 아픈 사람들에게 치료의 기회를 주는 그 ‘상식’이 이상주의가 되고 사회주의가 되며, 병원을 망하게 할지 모를 일이 되는 게 오늘날 미국의 현실이다.

물론 맥스 굿윈의 상식이 도발적이긴 하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지만 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당뇨 치료제인 인슐린을 구할 수 없는 상황, 맥스는 그 원인을 인슐린을 비싸게 공급하는 거대 제약회사에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제약회사와 담판을 짓고자 하는 맥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자 맥스는 병원 내 실험실에서 인슐린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내고자 한다. 물론 반대에 봉착한다. 이번에는 인슐린을 상대적으로 싸게 파는 캐나다에서 인슐린을 공급받고자 한다. 그 시도도 인슐린 구입 트럭이 국경을 넘지 못해 실패한다. 그러자 방송을 통해 인슐린조차 구하지 못하는 환자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맥스의 시도는 성공했을까? 거대 제약회사의 인슐린 가격을 내리려고 했던 그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럼 실패일까? 인슐린을 공급받지 못해 쓰러졌던 기간제 교사에게는 무료로 평생 인슐린이 공급되었다. 겨우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맥스는 자신의 환자를 우선 살렸다. '인간의 얼굴’을 한 맥스의 공공의료는 이런 식으로 한 발씩 앞으로 간다. 

넷플릭스 <뉴 암스테르담>

그의 무모하고 맹목적인 시도는 늘 병원을 파산으로 이끈다고 위협받는다. 비효율적이라 비판받는다. 하지만 그럴까? 병원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앙케이트에 냉소적인 직원들의 상황을 살피던 그는 오랜 출퇴근 시간으로 피로에 시달리는 직원들을 위해 통근버스를 마련한다. 통근버스를 시행함으로써 업무 효율성을 올리는 방식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오래된 관행적 업무로 인해 실제 업무를 하지 않으면서 월급을 받는 비효율적인 직원들을 재배치한다. 휴머니즘이 비효율적이거나 무능하지 않다는 반례를 만든 것이다. 

에릭 만하이머 박사의 원작을 기반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뉴 암스테르담>에는 21세기 미국에서 저런 일이 가능할까 싶은 '이상주의적'인 사례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몽상적이라 할만한 에피소드들이다. 그래서 <뉴 암스테르담>은 신선하다. 여전히 21세기에도 '인간의 선의'가 보다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는 서사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적'이다. 

사이코패스와 좀비 등 강력하고 자극적인 범죄들이 드라마적 요소가 되어가는 시대에, 여전히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과 그걸 통해 공동체적 삶을 실천해 나가는 모습. <뉴 암스테르담>은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상실되어가는 듯한 낯선 휴머니즘을 오랜만에 재회한 기쁨을 느끼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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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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