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언론인권센터가 책 ‘비극의 탄생’에 대해 “기자로서 가져야 할 취재윤리를 어긴 책이자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피해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2차 피해의 집약체”라는 논평을 냈다.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는 지난 19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 주장과 상반되는 내용을 담은 책 ‘비극의 탄생’을 출간했다. 해당 책은 발간 전부터 우려를 낳았다. 성추행 피해자는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인정받은 피해 사실과 개인이 저서에 쓴 주장의 힘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으며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등 여성 단체들은 “증인 50명을 근거로 객관적인 척하며 진실을 부정하는 말을 책으로 발간한 건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책 <비극의 탄생>

언론인권센터는 25일 “손 기자는 출간 전부터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목격자들의 증언을 담았다고 밝혔지만 취재원의 증언을 동의도 받지 않고 책에 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손 기자는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을 남긴다는 소명을 위해 최종 동의를 구하지 않고 증언을 책에 옮겼다고 밝혔지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취재원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인용을 하는 일은 기자윤리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언론인권센터는 “기자가 다른 시각을 갖고 진실을 취재하는 것과 자신이 믿고 있는 내용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은 명백히 다르다”며 “일반 사회 여론과 동떨어지고 검증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사안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없으며 취재 행위로는 더더욱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늦은 밤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낸 사실이 인정된다”며 “성희롱이 인정 여부는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업무 관련성 및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가 관건으로 사실 인정만으로도 성희롱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손 기자는 해당 책에서 대화의 빈도, 목적, 내용이 모두 ‘베일에 싸여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피해자가 받은 사진이 성적인 의미를 내포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언론인권센터는 “이미 성희롱으로 판단된 사안이지만 본인이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검열하려고 하는 태도는 매우 폭력적”이라며 “마치 내용물이 공개된다면 사건의 반전이 있을 것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언론인권센터는 가장 큰 문제로 “기자가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꼽았다. “기자란 취재를 통해 객관적인 내용을 보도해야 하지만, 손병관 기자의 글은 개인 의견을 취재기로 둔갑시킨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또한 “진실 추구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침해되는 인권이 없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며 “우리 사회에 여전히 배제되고 차별받는 존재들을 찾아 이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오늘날 언론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언론인권센터는 “‘비극의 탄생’이 언론의 관점에서 신뢰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언론인권적 관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라고 판단한다”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22일 손 기자 책과 관련해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오마이뉴스는 해당 책에서 박 전 시장 관련 기사화를 두고 손 기자와 편집국장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위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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