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24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의 바람직한 정책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MBC가 공영방송인지, 지자체 방송 TBS는 공영방송이 아닌지, KBS 2TV는 공적 역무에 속하는지 등을 놓고 논란을 벌이는 일 자체가 우리나라 공영방송 제도의 후진성을 증명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다양해진 미디어 환경을 담아내지 못하는 오래된 방송법 체계를 폐기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조화해야 할 시점”이라며 “법 조항 몇 개를 고쳐서 구조화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IPTV, OTT 등장으로 현행 방송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업무계획 중 하나로 방송과 OTT 등을 포함하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 개념을 신설하는 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공영방송의 책임과 특별책무를 규정, 평가하고 동시에 수신료 제도개선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24일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미디어 공공성 강화를 위한 토론회' (사진=한국방송학회)

이 교수는 새롭게 공영방송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공적 목적’을 정하고 방송사업자가 제공해야 할 ‘공적 역무’를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사업자가 수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먼저 제시한 뒤, 이를 수행하는 방송사업자를 공영방송사로 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영국의 공영방송 제도에 따른 분류법이다.

영국의 공영방송은 BBC 외에 ITV, STV, C4, C5, S4C 등이 있다. 공적 지배구조를 갖춘 BBC뿐 아니라 상업적 사업자들도 공적 책무를 수행하면 공영방송으로 분류한다. ITV는 “높은 품질과 다양한 편성의 제공” 의무를 수행하고, C4는 “프로그램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혁신, 실험, 창의성을 드러낼” 의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공영방송이지만 서로 다른 임무 수행을 부과받고 각사에 부여된 조건에 따라 심사를 받는다.

이 교수는 매체 사업자를 분류하는 방법으로 “먼저 ‘매체의 공적 책임과 의무’를 규정해야, 법과 정책으로 의무(remits)를 부여할 수 있는 매체 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으며, 해당 매체 사업자가 누릴 자율적인 권한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지금까지는 규제 그물망을 촘촘하게 짜서 방송사업자가 이를 어길 때 어떻게 처벌할지를 주로 논의했다면 이제는 발상을 바꿔 사업자들이 스스로 책무를 부과하고 이를 어떻게 수행할지 논의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자에게 자율적인 책임성을 부여하고 사업자들이 스스로 의무와 책임을 명시함으로써 규제기관은 사업자들이 제대로 이를 시행해나가는지 살펴보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이준웅 교수가 제안하는 '사업자별 목적과 역무에 따른 의무와 책임 수행의 예시' 자료

최선욱 전 KBS 공영미디어연구소장은 “소관책임영역(remits)은 유럽연합의 기본법에 명시돼 있는 개념으로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공적 재원을 부여한다. 의무를 어떻게 이행할지는 공영미디어가 스스로 정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거버넌스와 관련된 제도적 협치는 2012년 유럽평의회의 미디어 거버넌스와 관련된 내용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동준 공공미디어 연구소장은 공영방송사가 공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소장은 “현 방송법에는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도 없다”며 “미디어 구조개편을 통해 방송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해야 이용자들은 차별성을 느끼고, 방송사업자들은 책임의식을 갖고 콘텐츠를 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영방송사들이 공적 영역을 수행할 수 있도록 수신료 등 재원마련 논의를 이어가는 동시에 상업적 영역의 방송사들은 자율적인 영역을 확대해주는 방향으로 규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당장 실현 가능한 미디어 공공성 강화 대책이 나왔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보도의 공공성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독립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며 “시청자인 국민에 의해 이사회와 사장이 선임돼야 비로소 공영방송의 공공성이 회복된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탄탄한 재원구조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국회의장 직속의 수신료위원회를 세워 수신료 관련 논의를 이어가야한다”고 했다.

정준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 겸임교수는 공영방송사가 콘텐츠를 통해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MBC가 코로나 상황에서 비대면 공연을 보여주거나 KBS가 한국의 공공문화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착수하거나 ‘팽수’ 캐릭터화에 성공한 EBS가 교육 게임콘텐츠를 만드는 것 등이 공공성을 강화하는 좋은 시도가 될 수 있다“며 ”눈에 띄는 공영미디어의 공적인 역할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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